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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Fd4li1rFtlQ
신달자, 어머니의 글씨
일생 단 한 번
내게 주신 편지 한 장
삐뚤삐뚤한 글씨로
삐뚤삐뚤 살지 말라고
삐뚤삐뚤한 못으로
내 가슴을 박으셨다
이미 삐뚤삐뚤한 길로
들어선
이 딸의
삐뚤삐뚤한 인생을
어머니
제 죽음으로나 지울 수 있을까요
박승미, 사과를 그리다
사과를 그리다가
사과의 무게도 같이 그리다
사과를 반 쪼개 놓고
사과의 씨를 중심으로 둥글게 그리다 보면
사과가 활짝 웃는 얼굴이
다 그린
사과의 명암을 그리지 않는 것은
사과는 이미 내게로 와 나의 무게가
사과의 당도는
사과의 무게보다 무겁다
사과의 빨간색은
사과의 자비다
사과를 그리고 싶을 땐
사과의 자비가 그리운 때다
신덕룡, 물때를 읽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이제는 노을이 낸 길을 따라 돌아가야 한다
양 손에 하루치의 품삯을 들고
발목을 잡아끄는 뻘과
뻘을 떨쳐버리는 굽은 등의 싸움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노란 비옷과 물신과 고무줄로
단단히 여미고 조였던 무장이 천천히 해체되는
저 무거운 반복
허리를 뒤틀며 가라앉는 갯벌 위에 쓰는
자꾸만 되감기는
느리고 고된 문장을, 읽을 수 없다
최승호, 봄밤
창호지로 엷은 꽃향기 스며들고
그리움의 푸른 늑대가 산봉우리를 넘어간다
늘 보던 그 달이 지겨운데
오늘은 동산에 분홍색 달이 떴으면
바다 두루미가 달을 물고 날아 왔으면
할 일 없는 봄밤에
마음은 멀리 멀리 천리(千里) 밖 허공을 날고
의지할 데가 없어 다시 마을을 기웃거린다
어느 집 핼쓱한 병자가
육신이 나른한 꽃향기에 취해
아픔도 없이 조용히 죽어가나 보다
아름다운 용모의 귀신들이
우두커니 꽃나무 그늘에 서서
저승에도 못 가는 찬기운의 한숨을 쉬고
인간축에도 못 끼는 서러운 낯짝으로
누가 좀 따뜻이 나를 대해줬으면 하고
은근히 기다리는 봄밤
때에 절은 묵은 솜뭉치처럼
짓눌린 혼(魂)들을 꾸겨 담은 채
저승열차는 내 두개골 속을 지난다
안명옥, 연애
먹는 일이 지루해지기 전에
나는 식탁을 떠난다
한때는 온갖 요리를 상상하고
새롭거나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기도 했다
가끔은 붉은 꽃이 활짝 핀 식탁에서
잔을 높이 쳐들고 건배를 외치며
행복한 미소를 남발하기도 했다
몸이 먹으려해도 영혼은 음식을 거부하고
먹지 못하는 사람 곁엔 친구도 생기지 않고
식탁은 광활해지고
막막해하더니
식탁은 자유를 얻었다
사막처럼 깨끗해서 기분 좋은 식탁은
다른 삶을 준비하려는지
노트북과 신문, 책이 올라가고
엄마 생일에 동그라미 쳐진 작은 달력과
늘어나는 영양제들이 식탁 구석을 차지했다
요리는 진화의 불꽃이라며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요리에 열중하던 나는
요리를 안 하면서 편안해지고
생식을 즐기며 살이 빠지고 있다
예전 생각나, 밥이나 먹자는 전화가 온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린다
혼자 먹는 밥은 양이 줄어들고
텔레비전과 함께 파프리카를 먹으며
많은 별들이 흘러가는 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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