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r></div> <div>친구와 홍대에서 공연하는 어느 젊은 연주자의 무대를 함께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가 먼저 운을 뗐다.</div> <div><br></div> <div>"놀랍던데."</div> <div><br></div> <div>연주의 감흥에 젖어 있던 나는 그의 반응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들떴던 내 마음을 다시 가라앉히고 말았다.</div> <div><br></div> <div>"그런 실력으로 공연을 하다니 용기가 대단해."</div> <div><br></div> <div>나는 그가 꽤 오랫동안 기타를 연주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름대로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그의 의견에 곧장 공감을 표현하기도 애매했고, 연주를 직접 하는 사람의 관점은 단순한 관객인 내 느낌과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에 나는 할 말을 고르지 못하고 어색한 침묵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말을 이은 것도 그였다.</div> <div><br></div> <div>"사실 원래 저렇게 하면 되는 거였는데."</div> <div><br></div> <div>나는 그가 그들을 비판하려는 줄 알고 약간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시니컬 말은 그의 성격을 감안했을 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에 불과한 듯했다.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div> <div><br></div> <div>"응? 그게 무슨 말이야?"</div> <div><br></div> <div>그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div> <div><br></div> <div>"어린 나이에 뭘 할 때 못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오히려 잘 하는 게 이상한 거지. 그런데 나는 어렸을 때 그걸 몰랐단 말이야. 난 겁쟁이거든. 잘 하든 못 하든 그냥 하면 되는 건데 연주의 완성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느라 그러질 못했어."</div> <div><br></div> <div>그 사이 아주 잠깐동안이지만 내 발걸음이 그의 빌걸음보다 아주 조금 느려졌었다는 사실을 그는 느꼈을까. 우리는 곧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다. 우리의 발은 동일한 지점에 멈춰서서 신호를 기다렸다. 어깨를 부르르 떨며 내가 말했다.</div> <div><br></div> <div>"으, 춥다."</div> <div><br></div> <div>아직 완연한 봄은 아닌 터라 밤이 되면 금세 쌀쌀해졌다. 자켓 하나만 입은 나를 보곤 친구가 말했다.</div> <div><br></div> <div>"이거 미안한데?"</div> <div><br></div> <div>그는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내가 씨익 웃자 그 또한 따라 웃으며 말했다.</div> <div><br></div> <div>"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 더 미안한 짓을 해야겠어."</div> <div><br></div> <div>그는 미소를 띄우며 점퍼의 지퍼를 올렸다.</div> <div><br></div> <div>"몸이 둘이면 하나는 따뜻해야 하니까."</div> <div><br></div> <div>나는 싱겁게 웃었다. 그와 나는 역까지 걸어가서 순대국집에 갔다. 40년 전통의 그 집은 따로국밥을 시키면 머릿고기를 뚝배기의 절반을 넘게 채워주는 곳이었다. 학부 때 선배를 따라 갔다가 4년만에 다시 간 그곳의 맛은 4년 전에 먹었던 기억 속 맛과 똑같았다. 우리는 각자의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나와 지하철을 탔다. 한참을 갔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한 정거장 먼저 내렸다. 닫히는 문 사이로 보이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div> <div>우리는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왔기에 조금 지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날 나는 결국 그 말을 밖으로 내지 않았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별로 소용이 없는 말 같았으니까. 그러나 아마 훗날에도 이 말을 그에게 건네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조금 쉬면서 다시 기운을 차리기만 한다면 누가 뭐라고 안 하더라도 제 길을 향해 묵묵하게 걸어갈 녀석임을 나는 믿기에.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단순히 시간의 문제임을 확신하기에.</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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