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class="area_tit"> <h2><a target="_blank" href="http://js.ourchurch.kr/m/post/31" target="_blank">중용(中庸)의 지혜</a></h2> <span class="owner_info"> makarios <span class="txt_bar">|</span> <span class="datetime">2012/07/10 20:38</span> <span class="txt_bar">|</span> <span class="category_info"> <a target="_blank" href="http://js.ourchurch.kr/m/post?categoryId=380886" target="_blank">목양칼럼</a> </span> </span> </div> <div class="area_comment"> <div class="post_header"> </div> </div> <div class="area_post_header"> </div> <p>2012-07-01 목양칼럼</p> <p> </p> <p>요즘 中庸(중용)이라는 고대의 철학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 </p> <p>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子思(자사)의 책으로 공자의 철학을 후대에 집대성한 것이다. <br></p> <p>그 핵심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b>執其兩端, 用其中於民(집기양단, 용기중어민)</b>이라 할 수 있다. <br></p> <p>'집기양단'은 어떤 주장에 있어 양쪽의 극단을 다 취하라는 것이고, <br></p> <p>'용기중어민'은 그 양단에서 가운데를 취하여 백성(사람)을 위하라는 뜻이다.</p> <p><br></p> <p>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옳다. <br></p> <p>더구나 편이 갈라지기 시작하면, 사실 옳고 그름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br></p> <p>내편은 위하고 내편이 아니면 막무가내로 공격한다. <br></p> <p>그 맹목적인 적대감은 이성보다 훨씬 강해서 배운 사람도, 못배운 사람도 바바리안(야만인)이 되게 한다. <br></p> <p>그래서 미움이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언제나 논리와 설명이 부질없다.</p> <p>설명한다고 오해가 풀리지 않는다. 이성적인 논리를 전개한다고 하여서 이해받게 되는 것도 아니다. <br></p> <p>서로 말이 안 통한다고 하는데, 이유는 처음부터 상대방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br></p> <p><br></p> <p>그래서 양단을 취하라는 '집기양단'은 쉽게 실천할 가르침이 아니다.</p> <p>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르침이 오늘에 다시 조명되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br></p> <p>지금 우리의 시대가 極端(극단)의 폐해에 질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p> <p>신약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종교적 열심이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br></p> <p>그런데 그 특별한 열심이 극단으로 작동하니까 결국에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보다 못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br></p> <p>그들의 손에 의하여 예수님이 불법적인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은, <br></p> <p>두고두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이 아닐까?</p> <p><br></p> <p>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언한다. <br></p> <p>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다. <br></p> <p>결국 우리들이 주장하는 正義(정의)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 <br></p> <p>때문에 定罪(정죄)는 사람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숙고하고 반성할 뿐이다. <br></p> <p>혹시나 죄를 정하여 누군가를 處罰(처벌)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br></p> <p>하나님의 일이 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에 극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해야 할 것이다.</p> <p><br></p> <p>그런 점에서 중용의 지혜는 아름답다. <br></p> <p>특별히 兩端(양단)을 다 버리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취하고 소화해서 가운데(中)의 길을 찾아내 <br></p> <p>(양편의) 사람들을 모두 이롭게 하라는 가르침은, 정말 탁월한 교훈이 아닌가!</p> <p><br></p> <p>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사 구원하시기 위하여 직접 사람이 되셨다. <br></p> <p>그리고 그 하나뿐인 사람의 몸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서 모든 사람을 위하셨다.</p> <p> 이것이 복음이다. <br></p> <p>때문에 복음을 이해하면 '사람'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br></p> <p>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감히 왜람되어 그렇게 주장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사람이 귀하다고 선택하신 것이 십자가의 의미가 아니겠는가!</p> <p><br></p> <p>사람을 죽이고, 불행에 빠뜨리고, 극단으로 몰아가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p> <p> 화려한 수사와 군중들의 감정적 흥분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소용없다. <br></p> <p>아무리 편이 많고 다수의 견해라 하더라도 그것이야말로 異端(이단)이다.</p> <p>어리석은 사람들아, 언제까지 사람을 희생시켜 하나님을 섬긴다 詐欺(사기)질 할 것이냐! <br></p> <p>사람이 귀하다 하는 성경을 정녕 모른다는 말이냐? <br></p> <p>부디, 성경을 모르겠으면 中庸(중용)이라도 배우라. <br></p> <p><br></p> <p>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 하셨는데 상식도 없으니 오죽하랴!</p> <p><br></p> <p><br></p> <p>출처 : <a target="_blank" href="http://js.ourchurch.kr/m/post/31" target="_blank">http://js.ourchurch.kr/m/post/31</a><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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