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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lovestory_28314
    작성자 : 주~차뿔라
    추천 : 1
    조회수 : 1069
    IP : 61.38.***.2
    댓글 : 0개
    등록시간 : 2009/11/02 09:13:17
    http://todayhumor.com/?lovestory_28314 모바일
    '취업의 덫'에 갖힌 20대 '백수탐구생활-여자편'
    여자가 잠에서 깨어났어요. 아침 7시네요. 바로 샤워를 마치고 아침을 먹어요. 학교에 가서 도서관에 짐을 풀어요. 오늘은 저녁에 아르바이트가 있어요. 바쁘게 움직여야 해요.

    도서관에 있는 신문을 읽어요. 취업률이 또 줄었어요. 20~30대 여성 실직자가 가장 많네요. 아침부터 등골이 오싹해져요. 그 좋은 스펙을 가지고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몇몇 선배의 얼굴이 떠올라요. 아무리 복불복이 유행이라지만 나까지 그렇게 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아요.

    토익공부부터 시작해요. 남들은 안정권이라지만 10점이라도 더 올려둬야 할 것 같아요. 모의고사 한 회분을 풀고 면접 준비를 해요. 컴퓨터실에 가서 기업 소개와 보도자료, 최신 뉴스를 꼼꼼하게 훑어봐요. 기본적인 사항을 숙지하지 못하면 면접에서 낭패를 볼 수도 있어요.

    점심시간이네요. 삼각김밥과 생수로 끼니를 때워요. 시간도 없지만 면접 때 옷이 맞지 않으면 큰일이에요. 외모지상주의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친구들에겐 부모님이 주신 얼굴에 칼 델 생각이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사실은 돈이 없어요. 성형 미인이 더이상 손가락질 받는 시대는 아니잖아요. 예뻐져서 눈길받고 취업도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 같아요.

     
    ▲ ⓒ뉴시스 

    오후엔 면접 스터디가 있어요. 각자가 준비한 기업분석자료를 취합하고 프레젠테이션 연습 등 모의 면접을 치러요. 하나하나 질문들이 날카롭지만 엷은 미소를 유지한 채 여유 있게 받아넘겨요. 모의 면접은 더이상 두렵지 않아요. 사실 말하는 내용보다 말할 때 어떤 얼굴이 예쁘게 보일지가 더 중요할지도 몰라요.

    아르바이트 시간까지 여유가 좀 남았어요. 컴퓨터실에 가서 채용 정보를 확인해요. 대기업의 정규직 모집 공고를 놓쳐서는 안돼요. 오늘은 새로운 채용이 없네요. 한 군데 있긴 하지만 여자 사원이 없기로 소문난 회사에요. 최종 면접까지 올라가도 어자피 안 뽑아줄 회사에 정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연봉은 그럴싸해 보이니 서류 접수 마감 전에 바쁘지 않으면 한 번 더 들려볼 생각이에요.

    앞자리에서 친구를 발견했어요. 잠시 학교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키고 수다를 떨어요. 잠시 안부를 물은 후 얼마 전에 취업한 한 동기의 '뒷담화'를 까요. 얼굴은 조금 되지만 '스펙'이 딸려도 한참 딸리는 그 애가 자기보다 먼저 취업했다는 게 믿기질 않아요. 그 애 아버지가 연줄이 있다는 데 내 통장을 걸겠어요.

    울화가 좀 풀리면 새로 출현한 아이돌 이야기를 나누고 연애 이야기를 해요. 백수 처지에 남자친구가 끊이질 않는 친구가 부럽지만 내색하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소개팅을 언제 했는지도 가물가물하지만 적당히 '뻥'을 섞어서 지금 남자 만날 처지가 아닌 자신을 숨기려 노력해요. 속으로는 백수끼리 만나 데이트 비용 깨지고 공부할 시간 잡아먹느니 지금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들어가 '간지'나는 연애를 하겠다고 스스로를 위안해요. 친구는 남자친구 만나야 한다고 일어나고 여자는 아르바이트갈 준비를 서둘러요.

    아르바이트는 하루 중 가장 짜증 나는 시간이에요. 점장은 귀찮게 굴고 손님들은 까칠해요. 과외를 하고 싶지만 수요도 없고 중개업소가 첫 달에만 수수료 절반을 떼서 당장 생활비가 모자랄 처지라 엄두가 나질 않네요. 요새 가장 부러운 애들이 등록금 대출금 없고 부모님께 용돈 받아 사는 이들이에요. 어학 연수 한 번 못가보고 장학금 때문에 입학하자마다 열람실에 둥지를 틀고 아르바이트에 매진했던 여자는 그런 애들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와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면 드디어 휴식이에요. 하루 중 가장 평온한 순간이에요. 지친 몸을 이끌고 컴퓨터 앞에 앉아요. 미니홈피에 접속해 다이어리를 적어요. 담담하게 오늘 있었던 일들과 단상을 적어 내려가요. 여유 있게 친구 만날 형편이 되지 않는 현실에서 미니홈피는 거의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에요. 예전 다이어리에 적힌 리플과 방명록을 읽고 창을 닫아요.

    틈틈이 받아놓은 '미드'가 꽤 쌓였어요. 면접 때문에 많이 볼 수는 없지만 첫 에피소드만 보기로 해요. 돈이 있으면 연극이나 공연을 보러 가고 싶지만 현실은 모니터 앞일 수밖에 없어요. 적어도 미드는 재미있고 영어공부도 되니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해요. 다음 에피소드도 보고 싶지만 오전에 면접이라 일찍 자야 해요. 이번이 마지막 면접이길 바라면서 잠이 들어요.

    '이런 젠장'. 가장 중요한 일을 빼먹었어요. 내일이 면접인데 미용실을 예약하지 않았어요. 여자는 다시 컴퓨터를 켜고 미용실 추천글이 올라오는 카페에 들어가요. 까페에 올라와있는 홍보글과 리플을 읽으면서 올라온 사진을 비교해요. 확실히 비싼 미용실일수록 '간지'가 나요. 여자는 메신저에 접속해있는 친구들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결론은 비슷해요. 여자의 화장은 확실히 투자한 만큼 모양이 나오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결정판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은 30만 원짜리 미용실 예약에 가 있지만 현실은 빈 잔고뿐이에요. 하지만 5만 원 하는 동네 미용실에 가느니 그냥 민낯의 청순함으로 승부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하지만 이렇게 밤을 지새우면 내일 얼굴만 부어오를 뿐이에요. 최악의 결과는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여자는 차분히 대책을 고민해요.

    결국 여자는 다시는 빌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엄마의 카드에 다시 손을 내밀어요. 집안 사정을 알지만 면접가기도 쉽지 않는데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읍소해요. 취직하면 두배로 갚아주고 엄마 호강시켜주겠다는 공약도 빠지지 않아요. 아르바이트로 거칠어진 딸의 손을 보던 엄마는 결국 카드를 내줘요. 여자는 면접보다는 미용실에서의 행복한 순간에 가슴이 설레며 잠이 들어요.

    아, '발렸'네요. 미용실에서 20만 원을 넘게 들여 한 화장은 면접장에서 전혀 눈에 띄지 않았어요. 면접을 보러온 모든 여자들이 같은 색조의 화장품에 똑같은 속눈썹을 붙였어요. 요즘 대세라는 스모키 메이크업까지 '질렀는데' 남들은 스모키지만 여자만 다크서클로 보여요. 면접자 중에서 자기가 가장 나이들어 보인다는 생각에 어깨가 움츠러들고 오금이 떨려요.

    게다가 면접장에서 심사위원들은 자기소개서를 들여다보지도 않았어요. 경영학 이론에 나오는 용어만 물어보네요. '왜 경영학을 복수전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이번 면접장에서 또 하게 됐어요. 'EBIT(Earning Before Interests and Taxes)' 같은 용어는 도대체 어느 수업에서 들을 수 있는 얘긴지 모르겠어요. 경영학과 출신 면접자들도 대답하는 애들은 몇 없네요.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향해요. 밀린 서류접수나 빨리 해치워야겠어요. 가는 길에 서점에 들러 최신 시사용어집을 하나 살 계획이에요. 취업을 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큰 패착은 경영학을 공부하지 않는 것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미용실을 너무 급하게 알아본 것이었어요.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다음 면접에는 30만 원대의 미용실을 알아볼 수밖에 없어요. 그땐 정말 합격해서 엄마 호강시켜드릴 자신이 생길 것만 같아요. 
    /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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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5 07:04:10  66.249.***.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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