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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_36165
    작성자 : 루.살로메
    추천 : 31
    조회수 : 2997
    IP : 59.20.***.239
    댓글 : 40개
    등록시간 : 2017/09/23 23:26:17
    http://todayhumor.com/?love_36165 모바일
    결혼하고 싶다는게 이런 거려나.
    요 몇일 엄청 힘들어하던게 느껴졌다.

    몇달전부터 자취를 시작하고 부쩍 살이 빠진게 보인다.
    냉동밥이나 잔뜩 시켜서 대충 먹는게 맘에 걸렸다.

    나도 이번주는 몸살 감기에 몸이 안 좋았다.
    진짜 죽을 것 같아서 반차를 내고 5만원짜리 영양제를 맞았어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오늘은 하루 종일 잠이나 자려고 했다.

     '밥이나 한끼 잘 먹여야지.' 이 생각에 6시 반에 눈이 떠졌다.

    우리 집 사람들도 몸 상태가 이번주 다 안좋았다.
    집이 말도 안되게 더러웠다.

    굴러다니는 세탁물을 세탁기에 돌리고 청소를 시작했다.
    마른 걸래질로 머릿카락을 1차로 치우고
    청소기를 돌리고 다시 물걸래질을 했다.
    그리고 밀린 설거지를 하고 나서 빨래를 널었다.

    나는 내가 청소를 이렇게 빨리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몇 평 되지도 않는 내 방 치우는 것도 몇일이 걸리는데
    참 사람이 하려고 하니까 되더라.

    나는 쌀밥 섭취를 거의 안한다.
    거기다 어쩌다보니 밥을 거의 혼자 먹기에 차려 먹지도 않는다.
    못된 편식습관에 게으름의 콜라보로 이동중 대충 때울 수 있는
    군것질 거리와 인스턴트를 달고 산다.
     
    그런데 압력밥솥으로 갓 만든따끈한 냄비밥을 먹이고 싶어서
    일부러 밥을 새로 했다.
    엄마가 반찬을 해줘도 밥을 거르던 내가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굽고 큰 통에 있던 김치를 다듬어 담고.
    이 과정들이 놀랍게도 귀찮은게 아니라 행복했다. 
    귀찮아서 있는 반찬도 안 꺼내 먹던 내가 말이다.

    몇일 전 먹고 싶다던 옥수수가 생각나서 따끈하게 찌고 
    후식거릴 생각하다가 후다닥 마트에 가서 과일도 샀다.

    맛있다고 먹어주는데, 뭔가 명치쪽이 따끈해졌다.
    꽤나 간간하게 만든 된장찌개를 행복하게 두그릇을 먹더라.
    내 기준으로 꽤나 많이 밥을 퍼 줬는데, 밥이 참 맛있다고 
    내가 준 것 만큼 한그릇을 더 먹었다.  
    소불고기 한 것도 괜히 너무 많이 해서 남길 줄 알았는데,
    양념으로 한 당근 한 줄기도 안 남기고 다 먹더라.
    배가 터질것 같다더니 내가 깍은 정성을 생각해서
    배도 두조각 더 먹더라.

    실컷 먹이고 약도 챙겨줬더니 제 집 안방마냥 
    누워있더니 금새 코까지 골면서 잠들었다.

    잠든거 보고 있는데 좋더라.
    하도 맛있게 먹고 편하게 자길래
    매일 밥 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매일 잠들기 전에 등 토닥토닥 해주고 싶더라.

    아침부터 동동거리고 준비한거 알아봐준게
    고맙고 이뻐서 그런지, 매일 해주고 싶더라.
    정리하기 귀찮아서 물건도 잘 안사는 내가
    너 올거 생각하니까 집안일이 물 흐르듯 되더라.
    너랑 사는 집이면 내가 이렇게 계속 살림이 재밌으려나?

    자고 있는게 하도 예뻐서 구경하다가
    필요할 만한 물건들을 이것저것 챙겼다.
    청소도구라든가 간단한 식재료라든가.
    밥먹고 바로 네가 바로 잠들어서 식어버린 옥수수도 챙겼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견과류를 볶아 강정을 만들었다.

    재밌더라. 

    곤히 자는거 깨울까봐 조심조심 움직이는데
    아무것도 아닌데 재밌더라.
    그렇게 게을러 빠진 내가, 너 해주고 싶으니까
    이런걸 하고 있다는게 너무 신기하더라.

    더 재우고 싶었는데 곧 가족들 올 시간이 되서 깨웠다.

    강정이 아직 덜 식어 바삭한 맛이 떨어지는데도
    넌 언제 이런걸 준비했냐고 또 맛있게 먹어줬다.
    냉동실에서 더 굳혀 먹기로 하고 통에 담아줬다.

    너 자는거 구경은 실컷 했는데
    너 재운다고 이야긴 실컷 못한거 같아서
    집앞까지 데려다 주고 오는데



    싫더라.
    집 보내기 싫더라.

    그냥 우리 집에 살았음 좋겠더라.
    저녁에 또 내가 맛있는거 해주고 싶은데.
    나 맛사지도 엄청 잘 하는데 어깨 좀 풀어주고 싶은데.

    해주고 싶은게 아직 남았는데 보내기 싫더라.

    집으로 돌아오니 다른 가족들이 놀란다.
    집이 왜 이렇게 깨끗하냐고.
    밥이랑 반찬한거 먹고는 더 놀라드라.

    나는 내가 살림을 잘 할 자신이 없어서
    참 죽어라고 열심히 회사를 다녔다.
    난 내가 살림을 전혀 못 할 줄 알았다.
    근데 너 편하게 해주려고 하는건 좀 재밌을 것 같다.
    너 먹여 살린단 이유가 들어가면
    회사 생활도 좀 더 책임감이 들 것 같다.

    나 결혼하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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