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동안 내 인생의 라이벌로 군림하고 있는 암내가 심하게 나는 그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다섯 살 되던 해 미술학원에서였다. <div>어른들 말로는 녀석과 나는 첫 만남에서부터 이미 인생의 라이벌이 될 조짐을 보였다고 한다. 나보다 먼저 미술학원에 자리 잡고 있던 녀석의 작품은</div> <div>일반인들은 해석이 불가능한 아니 전문 미술교육을 받은 선생님조차 해석할 수 없는 "앤디 워홀" 같은 독보적인 존재였다. </div> <div><br></div> <div>그리고 나는 부모님이 고추밭에서 일하실 때 땅바닥에 열심히 낙서를 했는데 그 형이상학적인 그림을 본 어머니께서 재능을 발견하고 미술학원에 </div> <div>보내셨다.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사실... 작은 형이 초등학교 입학하게 되면서 밭농사하실 동안 함께 놀아주고 돌봐 줄 사람이 없어서 보냈다고 얼마 전에 들었다.)</span></div> <div>내가 미술학원에서 기억하는 (아니 거의 유일하게 기억하는..) 녀석의 첫 모습은 바지를 내리고 성난 코끼리를 쭈뿌쭈뿌하며 깽판을 치는</div> <div>모습이었다. 녀석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불만이 있거나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어디서든지 성난 코끼리를 앞세워 인류 최강의 권법인</div> <div>섹시 코만도를 했는데 내 눈에 그 성난 코끼리는 작고 귀여웠다. 물론 그 귀엽던 코끼리는 커서 머리털 나고부터 징그러운 요물이 되었지만..</div> <div><br></div> <div>미술학원에서 녀석이 앤디 워홀이었다면 나는 바스키아 같은 존재였다. 바스키아와 외모를 닮은 것은 물론이고 내가 인상을 쓰며 정성껏 그린 </div> <div>그림들은 선생님 사이에서 "이건 우리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그린 벽화에 버금가는 그림이다! 그냥 다섯 살 아이의 낙서네..." 라는 평가를 </div> <div>받았다. 우리의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공통점은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시대를 너무 빨리 앞서나가 창작의 자유가 제한받던 군부정권 시대였던 1980년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다.</span></div> <div><br></div> <div>녀석과는 그 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니며 꾸준히 우리는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녀석이 나이키 운동화를 산 뒤 자랑하면</div> <div>다음날 나는 아디다스 운동화를 사서 자랑했고, 녀석이 내게 달달한 암내를 풍기면 나는 며칠간 씻지 않은 시큼한 발 냄새로 응수했다. </div> <div>그래도 우리는 고등학생 시절 선의의 라이벌 관계여서 비겁하게 성적으로 비교는 하지 않았다.</div> <div><br></div> <div>우리가 고3이 되어 대학 진학을 상담할 때 희망대학으로 내가 존경하는 마이콜 조던 선생님이 졸업하신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를 지원하겠다고</div> <div>해서 선생님께 두들겨 맞은 뒤 교무실 한쪽 벽에 무릎 꿇고 손을 든 상태로 참회하고 있을 때 잠시 후 녀석이 내 옆으로 왔다. </div> <div><br></div> <div>"너는 왜 왔는데?"</div> <div><br></div> <div>"선생님이 니 옆으로 가서 손들고 있으래.."</div> <div><br></div> <div>"넌 어느 대학 이야기했냐?"</div> <div><br></div> <div>"남자라면 군대.."</div> <div><br></div> <div>"맞을 만 했네..아주 뒈지게 맞을만 했네.."</div> <div><br></div> <div>우리는 무릎 꿇고 반성할 때 그제야 둘이 진지하게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div> <div><br></div> <div>"사람은 제주도로 말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잖아.. 우리도 대학은 서울로 가야 하지 않겠냐?"</div> <div><br></div> <div>"말이 제주도고 사람이 서울이겠지.. 그리고 너랑 나는 사람이 되려면 아직 멀었어. 그리고 우리 성적에 서울로 갈 수 있겠냐.."</div> <div><br></div> <div>"우리 큰 형이 그러는데 서울 가면 우리같이 남성미 넘치는 시골 출신들에게 여자들이 줄을 선 데. 그리고 우리 큰 형도 서울 가자마자 </div> <div>여자친구가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생겼고.."</span></div> <div><br></div> <div>"너희 큰 형?? 여자 친구 있어?"</div> <div><br></div> <div>녀석은 서울에서 촌놈이 인기 많다는 당시로써는 확인 불가능한 유언비어보다 우리 큰 형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던 것 같았다.</div> <div><br></div> <div>"헐.. 역시 사람은 외모보다 능력이구나.."</div> <div><br></div> <div>그 뒤 우리는 외로운 서울의 젊은 여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둘 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단번에 합격했으면 좋았으나 녀석은 재수하게 되었다.</div> <div>노량진의 재수학원에 다니는 녀석을 보며 '이번에는 내가 완벽하게 이겼다!' 라고 잠시 착각을 했으나 촌놈이 인기 많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div> <div>유언비어였다는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것은 몸으로 확인</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했고 (물론 잘생긴 촌놈은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모르겠지만...) 재수학원에서 스터디 그룹을 빙자해 또래 여자아이들과 어울리는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모습을 보며 내가 완벽하게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졌다는 것을 인정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 후 우리는 학교는 달랐지만 군대도 비슷한 시기에 갔고, 제대 후 둘 다 여자친구가 뭐에요? 세상에 있긴 한 건가요? 라며 여성을 멀리하는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금욕적인 수행자 생활을 하다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파문하여 결혼도 비슷한 시기에 했고, 2세도 비슷한 시기에 녀석은 딸 그리고 나는 아들을 낳았다. 같은 날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한강공원에서 같이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자전거를 타다 둘 다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셀프 정관수술을 할 뻔도 했다. 흠.. 녀석은 왠지 그날 이후로 고자가,... 난 절대 아니지만..</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가끔 싸우고 술마시면 서로 먼저 도망가려 눈치보는 사이지만, 태어난 날은 달라도 웬만하면 녀석과는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나고 싶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만일 둘 중 하나만 세상에 남는다면 남은 놈은 참 심심할 것 같다.</span></div> <div><br></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