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을 처음 만난 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였다. 녀석은 자기소개 시간부터 적극적으로 자신을 동기와 선배들에게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어필했으며, 게임이면 게임, </span>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얼차려면 얼차려에 가장 먼저 나서 적극적으로 임했다. 지금도 가장 잊히지 않는 녀석의 강렬한 첫인상은 바로 사발식 때였다.</span> <div>우리 때도 사발식이라는 게 존재하긴 했는데 큰 양동이에 맥주, 소주, 막걸리를 잔뜩 부은 뒤 신입생 전체가 줄을 서서 마시는 오리엔테이션</div> <div>첫날 밤의 최종 보스 같은 행사였다. 선배들은 "동기를 사랑하는 만큼 마셔라! 너희가 얼마나 동기를 사랑하는지 지켜보겠다!" 라며 만일 남기면</div> <div>달빛 아래에서 밤새도록 다 같이 체조를 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div> <div>소심한 나는 '조금만 마셔도 되겠지' 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뒤쪽에 섰는데 앞쪽에 있는 동기들을 바라보니 80명 중 여자는 단 5명</div> <div>75명의 풋내기 남학생을 보고 사랑해야겠다는 욕구는 전혀 생기지는 않았다. 다른 동기 녀석들도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양동이를 들고 </div> <div>마시는 척하고 내려<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놓는 녀석들과 아주 조금 마시는 녀석들이 대다수였다. </span></div></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젠장 괜히 뒤에 섰네..' 나의 순진한 선택을 후회했다. 뒤에서 세 번째에 서 있는 내 차례가 왔을 때 거의 2/3 정도 가득 차 있는 양동이를 들었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고향의 소똥, 개똥, 닭똥, 토끼똥을 섞은 것을 먹었으면 먹었지 이 정체불명의 역한 향기를 풍기는 술은 도저히 목에서 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도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뒤에 긴장하고 있는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두 명의 가련한 동기를 생각해 있는 힘껏 마셔보기는 했다. 그리고 내 뒤에 있던 5명 중 한 명의 여자 동기는 양동이를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들지도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못하고 바닥에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놓은 채 냄새만 맡는 척을 하고 마지막에 있는 동기에게 양동이를 넘겼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리고 가장 마지막에는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큰 소리로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을 외치고 양동이를 거침없이 들었다. 녀석은 자신 있게 양동이를</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입에 대고 '꺽꺽' 대며 마셨다. 처음에는 '저 많은 걸 마실 수 있겠어~' 하는 생각이었는데 녀석의 열심히 꿀렁거리는 목젖과 그 사이로 흐르는</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술을 보며 '저 녀석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희망이 생겼다.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하지만 잠시 후 녀석은 잠시 술을 마시는 걸 멈추고 양동이를 들고 바라보고 있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우리들의 기대와 다르게 양동이의 술은 많이 줄어있지 않았다. 녀석은 뭔가 고민하더니 갑자기 양동이를 들더니 자신의 머리 위로 부어버렸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마치 아이스버킷챌린지를 술로 하는 모습을 연출했고 선배들을 향해 "제가 몸으로 다 마셨습니다!" 라고 외쳤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리고 녀석의 앞에 서 있던 조신한 얌전히 공부만 했을 거 같은 외모의 여자 동기가 '야 이 미친 새끼야! 술 튀잖아!' 라고 하는 걸 들었다.)</span></div> <div><br></div> <div>그 모습이 병신같지만 멋지게 보였다. 선배들은 녀석의 기개에 '아 시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하는 표정을 지었고 우리 동기들은 녀석을 향해</div> <div>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녀석의 몸에서는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는 순간까지 쉰내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녀석은 오리엔테이션의 </div> <div>새내기 아니 쉰내기가 되었다.</div> <div><br></div> <div>1학년 과대를 뽑는 선거에 녀석이 출마를 선언했을 때 나머지 79명의 동기는 녀석을 과대 후보로 단독 추대하는 후보 단일화라는 아름다운 양보의 </div> <div>미덕을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보였다. 그래도 할 건 다 해야 한다고 녀석은 우리 앞에서 자신의 공약을 연설했다. 녀석의 출마한 분야가 과대인지 학생회장인지 아니면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대학 총장인지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구분하기 힘든 파격적인 공약들을 들으며 감격한 건 아마 초등학교 4학년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회장 선거 때 중국집 아들내미가 '내가 회장이 된다면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한 달에 한 번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자장면을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돌리겠다!'라는 파격적인 공약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나는 동기 중에서 군대에 일찍 간 편이었는데 환송회 때도 녀석은 남자다운 기개를 내게 보였다. 술에 약간 취한 녀석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성성아 군대는 말이다. 너를 남자로 만들어줄 거야! 아니 진정한 사나이로 만들어줄 거야!" (취사장의 국자와 삽을 들고 진정한 사나이가...)</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리고 녀석은 먼저 군대 가는 친구를 그냥 보낼 수 없다</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래를 한 곡 부르겠다고 했다. 나는 옆에서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하지 마! 이 미친놈아!"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라며 말렸지만 이미 숟가락이 들어있는 소주병을 들고 일어선 녀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포기하고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제발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입영 열차 안에서, 이등병의 편지 두 곡은 피해 주길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간절히 기도했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봄이 오는 캠퍼스 잔디밭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편지를 쓰네.. 중략.... 나도야 간다~~ 나도야 간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녀석이 우리 말고 다른 손님들도 많이 있는 술집에서 열창한 곡은 김수철 아저씨의 "나도야 간다"였다. 그리고 녀석은 내가 입대한 지 정확히 </div> <div>한 달하고 4일 후 입대했다고 한다. 이 새끼.. 나를 보내서 서운한 게 아니고 아마 자신도 입대해야 한다는 현실이 서러웠던 것인가..</div> <div><br></div> <div>녀석을 다시 본 건 제대한 뒤 복학했을 때였다. 역시 예상대로 녀석은 과에서 하는 일 없이 모이면 술만 마시던 이름만 거창한 예비역 모임 </div> <div>회장으로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단독 추대되었고, 녀석은 예비역 아저씨들이 모인 자리에서 여학우가 많은 과와 단체 미팅을 실현하겠다는 허황된 공약을 선포했다.</span></div> <div>술자리의 예비역 아저씨들은 마치 군대에서 위문공연 온 무명의 여가수를 본 것처럼 환호했지만 그 이후 단체 미팅은 우리가 졸업할 때까지</div> <div>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녀석이 여성 학우의 비중이 높은 인문대와 식영과 등을 다니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과도 우리 과와 </div> <div>미팅하겠다는 나이팅게일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아니 우리를 구제해 줄 미팅게일같은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헌신적인 여학생 무리는 없었다.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지금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4월이면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온몸에 술을 뒤집어쓰고 쉰내를 풍기던 녀석의 모습이 떠오른다.</span></div> <div>때로는 녀석을 이해했던 만큼 미움도 커졌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저씨가 되고 보니 젊은 시절의 즐거운 추억이었던 것 같다.</div> <div>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남겨줘서 고맙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