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설 연휴가 끝난 뒤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물론 가끔 보는 녀석들도 있었지만,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보는 녀석도 있었다. <div>대학 다닐 때는 여자친구 있는 놈과 없는 놈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서는 전방인 놈과 후방인 놈, 갓 졸업을 한 뒤에는 취직한 놈과 취직을</div> <div>준비하는 놈으로 분류되었다면 나이가 들어 만나니 머리가 아직 있는 놈과 없는 놈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div> <div>물론 나는 모두 후자였다. (여자친구 없고 군대를 후방으로 다녀오고 취직도 못 한 머리 없는 놈...)</div> <div><br></div> <div>오랜만에 만난 친구 중에 유일한 미혼은 한 명 이었다. 자주 만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녀석의 현재 별명은 '마흔까지 못해 본 남자' 였다.</div> <div>뭐를 못해 봤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런 녀석의 대학 시절을 회상해보니 대학 때 그렇게 인기가 없던 녀석은 아니었다.</div> <div>녀석은 수업이 끝나면 항상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던 농구를 좋아하는 녀석이었고, 봉사동아리를 다니며 나름의 선행도 많이 베풀었던 것으로</div> <div>기억된다. </div> <div>나는 남자가 결혼하면 신데렐라 된다고 생각한다. '귀한 아들' 소리를 들으며 세수할 때 빼고 손에 물을 묻히지 않다가 설거지를 비롯한 각종 </div> <div>집안일을 도맡아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하게 되고, 12시가 되면 마법이 풀려 집으로 귀환해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일정 시간이 되면 초조하게 핸드폰을 살펴보고 마초,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위엄있는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가장이라는 마법이 풀리면서 허둥지둥 집으로 귀환하게 된다. 심지어 신발 한 짝을 놓고 집에 간 신데렐라처럼 다급하게 집으로 향한</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녀석들은 핸드폰 또는 지갑, 목도리, 장갑 등 자신의 흔적을 하나씩 남기고 돌아간다. 마치 신데렐라가 다음에 왕자님을 만날 장치를 하나 만드는 </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것처럼 녀석들은 "너 목도리 놓고 갔더라~" 라고 하면 "다음에 만나서 줘." 라고 훗날을 기약한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날 역시 그랬다. 10시가 되자 친구 몇몇 놈은 안절부절 핸드폰을 바라보다 한 놈은 장갑을 놓고 갔고 다른 한 놈은 목도리를 두고 갔다.</span></div> <div>10시 이후 그 자리에 남은 건 나를 포함한 4명이었다. 2세 이야기, 회사 이야기, 정치 이야기 등이 오갔다.</div> <div>그리고 자연스럽게 '마흔까지 못해 본 남자'가 최근에 여자를 만나는지로 대화의 주제를 옮겨가려 할 때 녀석은 단 한 마디로 주제를 전환했다.</div> <div><br></div> <div>"여자친구가 왜 없냐고 물어보지 말고 너희가 소개 좀 해봐.."</div> <div><br></div> <div>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나도 신데렐라로 변신할 알람이 울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div> <div><br></div> <div>며칠 후 회사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한 후배 녀석이 나이가 드니 소개팅도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한탄하는 것을 들었다.</div> <div>그 후배의 성별은 여자였는데, 같이 오랜 시간 일을 하고 편하게 지내다 보니 남자 후배보다 아니 마치 친동생처럼 편하게 느껴지는 후배였다. </div> <div>순간 내 머릿속에 '마흔까지 못 해본 남자'가 떠올랐다. 친구 녀석은 농구를 좋아하고 후배 녀석은 등산을 좋아하니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녀끼리 </div> <div>둘이 잘 어울릴 수 도 있겠다는 그릇된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후배에게 바로 소개팅을 할 것인지에 관해 물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아 너 소개팅 해줄까?"</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선배 안 속아. 지난번에 연하 꽃미남 소개해준다고 하면서 삼삼이 소개시켜줬잖아. 나를 며느리 삼을 생각이었어?"</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아.. 그때는 네가 하도 삼삼이 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한 거고 이번에는 진짜로 내 친구 한 명 소개해주려고.."</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됐어요. 안 해. 말로만 그래 본 거에요."</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후배 녀석은 나의 소개팅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리고 오후 몰려오는 잠을 깨며 일을 하고 있는데 후배에게 메시지가 왔다.</div> <div><br></div> <div>"선배, 그런데 아까 소개해준다는 친구 괜찮은 사람이야?"</div> <div><br></div> <div>"당연히 괜찮지. 내가 너한테 이상한 아저씨 소개팅 해주겠냐? 직장도 괜찮고, 운동 좋아하니까 같이 등산하면 되겠네."</div> <div><br></div> <div>"흠.. 선배가 봤을 때 내가 한 번 만나봐도 될 거 같아?"</div> <div><br></div> <div>"야! 일단 만나봐. 네 살 차이면 나이차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니까."</div> <div><br></div> <div>바로 '마흔까지 못 해 본 남자' 에게 소개팅 의사를 묻는 문자를 보냈다. 정확히 3초만에 </div> <div><br></div> <div>"콩" 이라는 최고의 식물성 단백질 식품이라는 문자가 왔다. 그리고 내가 "콩"이 뭐지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콜" "콜" 이라는 문자가 왔다.</div> <div><br></div> <div>후배 녀석이 원하는 조건은 단 한 가지 "너무 아저씨 같은 사람만 아니면 돼요.." 였고 '마흔까지 못 해 본 남자' 는 "무조건 + 그리고 감사" 였다.</div> <div><br></div> <div>소개팅 주선의 진행속도는 빨랐다. 장소는 건대 입구로 결정되었고, 나는 친구 녀석에게 후배가 좋아하는 것 (등산, 나이들어 보이는 모습과</div> <div>언행 금지 등) 을 이야기해줬고, 후배 녀석에게는 평소 네가 나한테 하는 것처럼 하면 친구 녀석이 매우 좋아할 것이라 이야기해줬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둘은 만났다. 어렸을 때 같았으면 만나서 서로 이야기 잘하고 있는지 첫인상이 어땠는지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전화나 문자를 보냈을</div> <div>건데, 둘 다 애들도 아니고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3시간 후 친구 녀석에게 좀 전에 헤어졌다면서 전화가 왔다.</div> <div>친구는 후배가 외모는 물론 유머감각, 그리고 사람을 편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면서 마음에 들어 했다. 이번 소개팅 주선은 '절반의 성공'이구나</div> <div>하는 생각을 할 때 후배 녀석에게 카카오톡이 왔다. </div> <div><br></div> <div>"선배... 선배 친구 등산복 입고 왔더라.. 심지어 등산화에..."</div> <div><br></div> <div>나는 바로 '마흔까지 못해 본 남자' 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 </div> <div><br></div> <div>"너 설마 소개팅 자리에 등산복에 등산화 신고 갔냐?"</div> <div><br></div> <div>"응! **씨 등산 좋아한다면서 그래서 잘 보이려고 깔맞춤 하고 갔지.." 이 새끼.. 아무리 지상보다 높은 2층 커피숍에서 만났다고 하지만 등산복 입고</div> <div>소개팅 자리에 나간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계단을 등정했냐.. 이 자식아..</div> <div><br></div> <div>"야! 아무리 상대방이 등산 좋아한다고 초면에 등산복에 등산화 신고 가면 어떻게 해! </div> <div><br></div> <div>"그런가?"</div> <div><br></div> <div>녀석이 왜 '마흔까지 못 해본 남자' 인지 조금 이해가 됐다. 아니 녀석은 지금 '오십까지 못 해본 남자'가 되기 위한 진행형이 아닌가 하는 </div> <div>생각도 들었다. 그 후 후배 녀석과 통화를 했는데 후배는 친구 녀석이 분명 좋은 분인 거는 같은데 확신이 서질 않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등산복과 </div> <div>썰렁한 분위기를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극복하기 위한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아재 아재 등산 아재'의 개그가 그녀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span></div> <div>나는 후배에게 일단 내 친구 녀석은 너에 대한 호감이 있는데, 네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담되면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 때 후배는</div> <div>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div> <div><br></div> <div>그리고 다음 날 후배에게 카카오톡이 왔다.</div> <div><br></div> <div>"선배, 선배 친구 부담돼서 못 만나겠는데 선배가 나 대신 최대한 정중하게 말 좀 전해줄래요? 아니면 제가 직접 말할까요?"</div> <div><br></div> <div>"왜? 생각해보니 도저히 안 되겠어? 내가 직접 만나서 녀석에게 말할게."</div> <div><br></div> <div>후배의 이야기로는 토요일 아침 7시에 데드풀을 보자는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후배가 이번 주는 야근을 계속했더니 피곤해서 좀 쉬어야</div> <div>겠다고 정중하게 거절을 했는데 (이번 주 내내 후배가 야근한 것은 사실이다.) 친구 녀석은 한술 더 떠서 "피곤해요? 그럼 저랑 병원 가요!" 라며</div> <div>찾아간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 시간 간격으로 "괜찮아요? 아직도 아픈 거 아니죠?" 라는 문자를 집요하게 보냈다고 했다..</div> <div>아.. 이 육십까지도 못 해볼 녀석아... </div> <div><br></div> <div>결국 소중한 황금 같은 주말 시간 녀석을 만나기로 했다. 돌려서 말하는 것보다 직접 말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 소주 한잔을 마시면서</div> <div>녀석에게 그녀가 너한테 부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녀석은 '내가 오랜만에 여자를 만나서 그런지 너무 들이댔나..' 하며 후회하는 눈치였다.</div> <div>위로해주고 싶었다.</div> <div><br></div> <div>"야.. 그렇게 데드풀이 보고 싶으면 나랑 볼까?"</div> <div><br></div> <div>"너랑은 안 봐. 데드풀은 사랑이래.."</div> <div><br></div> <div>"그래.. 술이나 마시자.."</div> <div><br></div> <div>풀이 죽어있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한 단어가 떠올랐다. 데드풀.. 풀이 죽었어...</div>
출처
친구와 후배 저한테는 모두 소중한 사람입니다.
개그는 개그일 뿐 그 이상은 확대하여 해석하시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