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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story_437718
    작성자 : 성성2
    추천 : 36
    조회수 : 3040
    IP : 115.94.***.142
    댓글 : 86개
    등록시간 : 2015/06/15 11:22:15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37718 모바일
    낙천적인 아버지 이야기
    옵션
    • 창작글
    나의 아버지는 심하게 낙천적인 성격이시다. 
    가뭄 또는 장마 등의 천재지변으로 한 해 농사를 말아먹을 때도 "역시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어." 하시며 하늘을 향해 "올해는 내가 졌다! 그래도
    내년에 또 고추 심을꺼여!!" 이러신 뒤 우리 3형제의 학비를 만들기 위한 명목으로 동네 아저씨들을 모아 점당 50원 고스톱을 치면서 학비를 
    조달하려 하셨다. 하지만 결론은 항상 다른 집 자녀들의 학비를 지원해주고 오신 뒤 아랫목에서 누워 계시는 날이 더 많으셨다. 
    내가 반에서 50명 중 48등 한 성적표를 들고 온 날, 어머니께서 분노하시며 싸리 빗자루를 들고 나를 잡으려 하실 때 아버지는 어머니를 말리며 
    "49등 하고 50등 한 애 부모 마음은 어떻겠어. 그래도 성성2는 효자야, 반에서 꼴등은 안 했잖아..."
    내가 드디어 꼴등을 한 날 아버지는 조용히 어머니께 "이걸로 패" 하시며 다듬잇방망이를 건네셨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다듬이질을 당하고 울고 있는 내게 만병통치약 바셀린을 종아리에 발라 주시면서 "네가 내 머리 닮았으면 30등은 하는데, 
    엄마 머리를 닮아서.. 쯔쯔쯔... 앞으로 아빠가 공부 가르쳐 줄게 걱정하지 마." 라고 하시며 며칠간 나를 가리키신 뒤 어머니께 "세 놈 중에 한 놈은
    공부 못해도 반타작 이상은 한 거니까 너무 막내한테 공부 강요하지 맙시다." 하셨지만, 훗날 내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날 나보다 더 좋아하셨던 건 
    아버지셨다. 

    언제나 최강의 농사꾼일 것 같은 아버지는 5년 전 대장암 진단을 받으시고 수술하신 뒤 지금까지 항암치료를 하고 계신다.
    "내가 겨우 암 따위에 지겠어." 하시며 시작한 암 투병 기간 중 아버지는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머리숱이 다 빠지고, 지팡이가 없으면 혼자의 힘으로는 
    잘 걸으시지 못하시지만, 의사와 간호사 선생님은 항암치료를 저렇게 긍정적으로 받으시는 분은 처음 본다고 한다.
    머리숱이 다 빠지셨을 때는 이제 농약 회사 로고가 새겨진 모자가 아닌 멋진 모자들을 많이 쓸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셨고, 다리에 힘이 빠져 
    산악용 지팡이를 사 드린 날 이제 매일 등산하는 기분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좋아하셨다.
    2주마다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실 때 딸들을 만나러 가신다며 좋아하신다. (아버지는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이름을 부르며 딸이라고 
    하고, 간호사 선생님들은 아버지를 보면 아버지라고 부른다.) 딸을 그렇게 바라셨던 아버지께 많은 딸이 한 번에 생긴 게 기쁘신 것 같다. 
    메르스 때문에 그동안 입원을 연기하다 오늘 항암치료를 더 미룰 수 없어 입원했는데, 아버지는 시골에서 직접 들고 오신 망고쥬스를 
    간호사 선생님들께 직접 나눠주며 "우리 할망구가 딸내미들한테 망고주스를 하나씩 나눠 주래. 망구가 주는 망고주스야" 라는 썰렁한 농담을
    날리셨다. 옆에서 민망해하는 나를 위해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들은 웃어주셨다. (자꾸 웃으니까 저런 썰렁한 농담을 하시는 건데....)
    그런 아버지가 유일하게 우울하실 때는 같이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분들이 한둘씩 더이상 항암치료를 받으러 오시지 않을 때다.
    항암치료를 받으실 때 전국 각지의 친구들이 생긴 것 같다고 좋아하셨는데, 그 친구분들이 한 분, 한 분 입원을 하시지 않을 때마다 
    "이제 곧 내 차례구나..." 하신다. 

    얼마전 아버지는 버킷리스트 3가지를 쓰셨다.
    1. 손자와 비행기 타고 여행하기 
    2.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고기 구워서 먹여주기
    3. 할망구(어머니)에게 죽기 전에 재미있는 남자친구 구해주기 
    1번은 얼마전 들어 드렸고, 2번은 작은형이 우즈베키스탄에서 색싯감을 만들어와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와 형들은 3번에 대해 극구 반대했지만, 어머니는 썩 싫은 내색은 아니었다. 

    이제 걸음마를 뗀 아들은 내 손을 잡지 않고 혼자 걸으려 한다. 나는 그런 아들이 넘어지진 않을까 걱정하며 바라본다. 혼자 길을 걷던 아버지는 이제 
    아들의 도움 없이는 걸으실 수가 없다. 내가 없으면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야 하는 아버지가 넘어지진 않을까 걱정된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아버지는 아들이 된다. 
    출처 밭에서는 천재이지만, 고스톱 판에서는 바보가 되는 아버지
    국민학교 때 꼴등을 했지만 기적적으로 대학에 입학한 아들
    매일같이 떼쓰는 손자
    3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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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15 11:27:59  223.62.***.63  롹롹  598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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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5/06/15 12:53:36  106.248.***.186  발사  119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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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5/06/15 14:21:15  211.36.***.185  적당히봅니다  654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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