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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story_411567
    작성자 : 검은생강
    추천 : 4
    조회수 : 356
    IP : 119.71.***.38
    댓글 : 2개
    등록시간 : 2014/02/15 19:23:31
    http://todayhumor.com/?humorstory_411567 모바일
    비위가 약한 사람과 함께라면 조심해야만 한다..


    때는 바야흐로 춘삼월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이 캠퍼스를 활기차게 돌아댕기던

    학기초였던 걸로 기억한다.


    재대후에 복학하고 맨날 추리닝만 입고 다니고 수염 덥수룩하게 안깍고 다니니

    과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 애들에게 아싸 당하는 건 당연지사..


    다만 동아리<검도> 후배들만 90도 인사만 하고 잽싸게 사라지는 게 그 녀석들 신입생들과 학교에서 엮이는 유일한 순간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거하게 먹고 휴가 나온 동기 놈하고 당구 한게임 치고서 도서실에 가던 중에
    도서관 현관 앞 자판기에서 캔커피 하나 뽑으려고 동전을 넣고 있는데...
    재수강 같이 듣던 신입생 여자애가 다가와 애교를 부렸다..

    "오빠! 나도 하나 뽑아 주면 안되염? 뿌잉뿌잉."

    생긴 건 이쁘장한 아이였지만...
    딱히 내게 말을 걸거나 하지 않아서 별로 친하지 않는 아인데...왜 내게 그날따라 애교까지 부렸는지....지금 생각해보면 그 비극의 시작은 그 아이의 갑작스런 심경의 변덕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그냥 평소처럼 지나쳤으면 될 것을..

    아마도 캔커피 마시고 싶었는데 마침 주머니에 잔돈이 없었을테지...그러다가 우연처럼 내가 동전 넣는 걸 보게 되었고..
    평소처럼 안면이나마 조금 있는 내게 애교라도 부리면 캔커피 하나 정도는 생기겠거니 했을 것이다....<이쁘장하니 생겨서 다른 놈들에게 적당히 여동생 노릇하면 뭔가가 공짜로 생긴다는 걸 배웠겠지..>

    곰, 돼지 같은 여동생들을 서넛이나 두고 있는<사촌동생들 포함> 내 입장에서는 그런 간드러지는 여자들의 애교가 탐탁치 않았으나...뭐 나름 귀여운 애교를 부리려고 더러운 꼴을 하고 다니는 복학생에게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히히덕댔으니 몇 백원 적선해주는 게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해서..

    오백원짜리 두개를 더 넣고는 

    "그래 먹고 싶은 것 있음 눌러라.."

    라고 말하자마자 그 아이는 "잇힝.."이라는 묘한 콧소리를 내면서 폴짝 두발로 뛰어서 자판기 앞으로 가더니만 버튼 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뭘로 마실까나? 요거? 이거? 오빠 이거 맛있어요?"

    그렇게 한참이나 켄커피 버트과 사과 주스 버튼 사이를 오가더니만 덜컥 봉봉<아시는 분들은 아실 거다...포도 알갱이가 졸라 들어 있는 음료 쌕쌕과는 남매 사이..> 버튼을 덜컥 눌렀다.

    차가운 캔을 얼굴에 대고서 히히히 요상한 소리를 내며 웃는 그 아이의 얼굴을 그때서야 자세히 보았다..
    뺨과 콧등이 붉게 물들고..
    눈동자는 반쯤 풀려 있고...
    어설프게 바른 립스틱의 입술에서는 약간 쉰 술내음이 풍겼다.

    씁.. 아마도 대낮부터 퍼마시는 무슨 동아리 환영식에서 막걸리 두어잔 마시고서 정신이 반쯤 풀려서 나온 거겠지.. 

    그 아이는 캔을 들고서 내 팔을 잡아 당기며 도서관 현관 건너편의 벤치로 나를 끌고 갔다..

    아직은 쌀쌀한 밤공기를 쐬니까 이 아이가 술이 약간 깨는지 갑자기 부끄러운 듯 봉봉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자기가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겠지..아무리 술 기운이라지만 별로 친하지도 않는 복학생 아저씨 팔까지 잡고 늘어지고 음료수 사달라고 콧소리낸 게 말이다....
    그렇게 말도 없이 한 10여분을 같이 앉아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 뻘쭘해서 나는 뭔가 웃긴 이야기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들고 있는 봉봉 캔을 보자 얼마 전에 본 스포츠 신문 만화 이야기가 생각나서 그 아야기를 조금 각색해서 해주기로 했다.

    "너 말이야... 봉봉 어떻게 만드는 줄 알아?"

    "응? 어떻게 만드는데요?"

    "원산지 표시가 어디로 되어 있어?"

    "중국이요!"

    "응 중국에 가면 포도만 키우는 거대한 마을이 있어...봉봉 회사는 거기서 포도를 사오지...그런데 봉봉 회사는 껍질과 씨가 있는 포도를 사지 않아...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수확한 포도를 마을 한가운데에 모아놓고서 일일히 한 알씩 입에 넣고서 껍질과 씨를 빼내서 알맹이만 모아서 봉봉 회사에 납품하는 거야...왜냐하면 중국은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기계를 쓰는 것보다 사람이 직접하는 게 싸기 때문이지...그래서 포도 수확철만 되며 남녀노소 모두 모여서 포도를 입으로 한 알씩 넣고........"

    나는 이 재밌는 개그에 여자애가 빵 터지는 걸 기대하고는 그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새파랗게 질렸다.

    그 아이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들고 있던 봉봉 캔을 떨어뜨리고서

    나를 향해..



    오바이트를 내뿜었다..




    그 날 이후...

    그 아이는 2주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하고 같이 듣던 강의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다만 간간히 마주치곤 했는데..
    마치 이문세의 노래라도 흘러 나오는 듯 애잔하게 비껴가곤 했다..

    그리고
    나는 조교 누님의 노예가 되어서 4학년 대학생활 중에 학과실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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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15 20:32:43  112.186.***.54  귀돌이  263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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