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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2010년 하반기 무렵, 드라마 대본을 쓰는 방송 작가가 되기 위해서 6개월 동안 KBS에서 주최하는 방송 작가 기초반에 등록하고, 여의도에 있는 금산 빌딩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부지런히 출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와 같은 조에 편성된 한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10년 전 중국 연변에서 우리나라로 이민오신 조선족이더군요. 연세는 이제 40대 후반이고, 역시 조선족 남편과 함께 한국에 정착했다고 했습니다.
이 분의 성격을 한 마디로 압축하면 진짜 "억척스럽다"입니다.
알고 보니 KBS말고도 MBC에서 주관하는 방송 작가 공부도 다녔고, 그 밖에도 거의 1주일에 한 번씩 계속 드라마 시나리오와 대본을 써서 아는 방송국 PD들에게 부지런히 보내는 게 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같이 방송 작가 수업 들으면서 강사(SBS 드라마 '식객' 허영만 화백 원작의 그 드라마 대본을 쓰신 분이라고 하더군요.)에게 하는 소리가 "왜 여기 KBS에서는 MBC에서처럼 빡세게 안 시킵니까? 이왕 비싼 돈주고 방송 작가 수업을 들을 거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여기서는 과제도 많이 안 내주고, 수강생들이 하는 과목도 제대로 안 봐줍니까?"라고 자주 요청하시더군요.
저도 이제까지 글을 많이 써봤지만, 저 분처럼 저렇게 열성적으로 글을 쓰지는 못했습니다.
또, 말이 굉장히 빠릅니다. 말할 때마다 마치 기관총처럼 쏘아대는 게, 처음 들으면 거의 갈피를 못 잡을 정도로요. 중국인들 말하는 속도가 빠르다고 하는데, 중국에서 사시다 온 분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저도 말을 상당히 빨리 하는 편인데, 같이 대화하면 제가 도저히 못 쫓아 갑니다.
그 분과 알게 되면서 놀란 점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조선족에 대한 저의 고정관념이 어느 정도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여태까지 저는 조선족들은 전부 중국에 동화되어서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는 "한국말 잘하는 중국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분은 전혀 아니더군요. 자기가 중국에서 대학 다닐 때, 중국 한족들과 틈만 나면 자주 싸웠고, 심지어 한족과 조선족들이 심하게 폭력 사태까지 벌인다는 소식까지 들려주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조선족들이 한족들한테 차별을 많이 받는다고 하더군요.
일례로 조선족 세 명이 중국 만주에 보관되어 있는 고구려 시대 벽화?를 몰래 떼어내서 한국으로 가져온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구려는 한국 역사이니 한국의 유물이고, 중국 것이 아니라면서요... 그런데 이 사실을 중국 정부에서 알고는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해서 그 고구려 유물과 조선족 세 명을 중국에 돌려주라고 요구했고, 중국에 굴복한 한국 정부가 그들을 중국으로 보내자 세 명은 모두 처형되었답니다.
이 분이 그 사건을 저한테 들려주면서 자기가 언젠가는 그 일을 가지고 드라마로 써보겠다고 하던데, 무척 놀라면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조선족 중에서도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도 있었구나, 하고 말이죠...
그리고 둘째는 어떤 일이건 절대로 대충대충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매사에 굉장히 깐깐한 사람이라서 자기가 보기에 이건 아니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따지고 들면서 지적하더군요. 특히나 돈 문제에서는 그야말로 철두철미했습니다. 돈 한 푼도 허투로 계산하는 적이 없었죠.
아울러 제 생일 날, 그 분이 다른 사람들과 돈을 모아서 저한테 도금된 네잎 클로버 책갈피를 사주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날,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수업이 모두 끝나는 4월 무렵에 마지막으로 만났는데, 작별 선물로 저와 다른 조원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수제 비누 2개씩을 주더군요. 알고 보니, 남편과 함께 자그마한 중소 기업을 한다고 했습니다.
비록 이 자리에서 볼 수는 없겠지만, 저보다 더 열성적이고 열심이신 분이니 꼭 훌륭한 드라마 작가가 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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