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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판도 문화다." 그렇습니다. 자동차 번호판에는 차량과 소유자의 등록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고유 기능 외에도 차가 소비되는 지역의 문화도 스며들어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번호판은 운전자 개성에 맞게 화려한 색상으로 꾸밀 수 있고, 반대로 유럽연합의 번호판은 하나의 유럽을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차별성보다 통일된 디자인 형식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유럽연합 번호판도 기본 틀 안에서 국가별 차별성을 꾀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핵심은 통일성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 자동차 번호판에는 색다른 것이 하나 존재합니다. 'H' 번호판이 그것인데요. 오른쪽 끝에 알파벳 'H'가 들어가는 순간, 그 자동차는 문화와 역사의 옷을 한 겹 더 입게 됩니다.
H 번호판 장점과 자격 조건
독일은 클래식카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흔히 올드 타이머(oldtimer)라 합니다. 첫 출시 후 (혹은 등록된 후) 30년째가 되면 그때부터 올드 타이머로 분류되죠. 또 올드 타이머까지는 아니어도 20년 정도 된 자동차는 영타이머(youngtimer)라는 젊은(?) 명칭이 부여되기도 합니다.
올드 타이머의 경우 'H 번호판'을 달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이 번호판에는 여러 장점이 있는데요. 배기량과 연식 등에 상관없이 자동차세를 1년에 191.74유로(약 2십4만 원)만 내면 됩니다. 바이크의 경우 46.02유로죠. 또 보험사들이 이 번호판을 좋아합니다.
차를 잘 관리했을 거라는 게 전제되어 있고, 또 주행거리가 대체로 짧기 때문에 저렴하게 보험료를 낼 수 있게 했습니다. 보험사에 따라 1년 주행거리를 1만 km로 제한하는 경우도 있죠. 또 촉매장치가 없어도 되고, 친환경 지대 역시 유로 6가 아니어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독일에서 큰 혜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자동차가 오래됐다고 해서 무조건 이 번호판을 부착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H 번호판'을 달 수 있는 자격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출시된 지 30년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차량의 상태가 담당 기관이 정한 기준을 충족해야 하죠. 사고가 잦았거나 너무 상태가 좋지 않으면 H 번호판을 달 수 없습니다. 또 튜닝이 많이 된 경우도 제외됩니다. 될 수 있는 한 원형 그대로, 관리가 잘 되어 있을 때 H 번호판이 주어집니다.
H 번호판 비용
1997년부터 적용된 H 번호판 장착에는 우선 등록비용 28유로가 들며, 원하는 알파벳이나 숫자를 적용하고 싶다면 11유로(약 1만 3천 원)를 추가로 내면 됩니다. 또 유럽연합의 규격 번호판이 아닌, 자동차의 형태에 어울리는 H 번호판을 달 수도 있는데 그때는 100유로를 추가로 내야 합니다. 또 H 번호판을 달기 위한 올드 타이머용 전용 차량 검사비가 100유로 정도 소요됩니다.
이처럼 처음에만 비용이 좀 들지 그 이후에는 자동차세와 보험료 등이 저렴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H 번호판이라는 별난 제도를 만든 것일까요?
클래식카의 문화적,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는
H는 독일어 historisch의 머리글자에서 나온 것으로, '역사적', 혹은 '역사적 의의가 있는' 등으로 해석합니다. H 번호판을 장착함으로써 자동차는 역사,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죠. 오래된 자동차를 잘 관리하는 것을 큰 즐거움이자 자랑으로 여기는 문화, 그리고 이런 차를 운전하는 것을 로망으로 여기는 문화가 H 번호판 제도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날씨 좋은 주말, 올드 타이머를 꺼내 아이, 혹은 부부가 함께 드라이빙을 즐기는 것은 자동차 문화가 오래된 나라에서는 익숙한 풍경입니다. 제가 사는 독일 동네에서도 어렵지 않게 H 번호판을 단 자동차를 볼 수 있는데요. 아빠와 아들이, 엄마와 딸이, 노부부가 함께 올드 타이머에 몸을 묻고 숲길을 달리는 모습은 낭만 그 자체입니다. 가끔씩 젊은이들이 오래된 카브리오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얼굴에 여유가 묻어납니다.
클래식카를 탄다는 것은 치열한 현실에서 벗어난다는 걸 의미하고, 부모님 세대가 누린 문화를 이어간다는 문화적 연속성을 경험하는 것이 됩니다. 또 옛날 자동차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클래식카 시장 또한 작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인데요. 수백억씩 하는 빈티지카들이 경매를 통해 거래되고, 도시마다 마련돼 있는 올드카 매장에서는 끊임없이 거래가 이뤄집니다.
고급 휴양지에서 클래식카를 뽐내기도 하고, 자연 좋은 곳에서 도로 경주를 즐깁니다. 그리고 꼭 비싼 차일 필요 없습니다. H 번호판을 단 자동차라면 무엇이든 경주대회에 참가해 실력을 겨루고, 또 누구와도 자신의 자동차에 얽힌 히스토리를 이야기합니다.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어떤 이들에게 H 번호판이 달린 클래식카는 투자의 대상일 것이고, 어떤 이에겐 어린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한 대상일 것입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옛날 자동차들이 첨단의 시대에 이처럼 소비되고 있다는 것은 자동차 문화가 미래만 바라보는 게 아닌, 지난 시절을 온전히 품고 달리는 것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클래식카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마이너 문화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거기다 올드카에 대한 관심이라면 미국이나 유럽 자동차에 국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므로 먹고 살기 척박한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동차를 쓰다 되팔아 버리는 물건쯤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추억, 그리고 시대를 담고 있는 자동차이기에, 그것을 즐기는 그런 마음으로 자동차를 바라본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풍요롭고 낭만적인 올드카 문화가 대한민국에서도 뿌리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331284&memberNo=33180239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0331284&memberNo=33180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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