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style="margin:1em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666666;">그의 서른부터 나의 서른까지(엄간지, 190508)</p> <p style="margin:1em 0px 0px;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666666;">그는 서른하나인 나보다 어릴 때 아이를 낳으셨다지<br>월세 계약도 무서웠을 갓 서른의 나이 때.<br>퇴근 후 부랴부랴 뛰어온 강서구의 작은 산부인과에서<span class="text_exposed_show" style="display:inline;font-family:inherit;"><br>간호사 품에 안긴 2.8kg의 작은 나와 처음 만나셨다지</span></p> <div class="text_exposed_show" style="display:inline;font-family:Helvetica, Arial, sans-serif;color:#666666;"> <p style="margin:1em 0px;font-family:inherit;">어린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br>작은 단칸 옥탑 방의 크리스마스 아침<br>차가운 철제 문을 열고 가쁜 숨을 몰아 쉬던 그.<br>산타 할아버지가 집 문이 잠겨있어 밖에다 선물을 두고 가셨다는 귀여운 변명<br>누가 봐도 급하게 사온 포장도 안된 그 변신 로보트, 그 크리스마스 아침<br>선물을 건네주던 그의 차가운 손이<br>왜 2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생각나는지 모르겠어</p> <p style="margin:1em 0px;font-family:inherit;">힘들었었지 우리 집<br>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던<br>하루를 넘기는 것이 긴장되고 버거웠던 나날들<br>혹시 내가 고쳐야 될 게 더 있다면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빌었던 수많은 밤들<br>이제는 씁쓸하게나마 웃으며 이야기하는 날들이 됐지만<br>다만 그 무렵 말 없이 식탁에서 소주를 따르시던 그의 뒷모습<br>말 없이 휘청거리던 너무나도 싫었던 그의 뒷모습이<br>지금은 왜 이렇게 가슴이 아릿한지</p> <p style="margin:1em 0px;font-family:inherit;">그는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잘 하지 않으셨어<br>본인이 분명히 잘못한 것들도 그저 멋쩍게 웃으며 넘어가려고 하셨지<br>난 그게 참 싫었어.<br>다만 한 번, 그 말을 해 주셨던 적이 있었지.<br>엄마가 없어졌던 그 다음날<br>새벽 두 시에 취한 모습으로 돌아와<br>자는 척 하는 내 어깨를 붙잡고<br>몇 분 동안 계속 말씀하셨지<br>미안하다. 아빠가 미안해. 미안하다. 미안해.<br>처음 보는 표정, 한껏 젖은 음성</p> <p style="margin:1em 0px;font-family:inherit;">그는 나와 술 한잔 할 때면 가끔 말씀하시곤 해<br>어린 너는 참 귀여웠어<br>퇴근 후 아빠, 하면서 달려오는 너를 안으면<br>너무 행복했었다. 라고.<br>이젠 나를 안던 30대의 그와 내가 비슷한 연배가 되어<br>이제는 안기는 내가 아닌<br>나를 안아주던 그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고<br>나의 내일이 보여.</p> <p style="margin:1em 0px;font-family:inherit;">그래. 너무나도 미워했고 원망했던 그를<br>한때는 너무나도 싫어 피하고 싶었던 그를<br>흐릿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br>나를 보던 그의 눈빛을<br>힘이 듦에도 결연했던 그의 등을</p> <p style="margin:1em 0px 0px;font-family:inherit;">그리고<br>그의 핸드폰에 아직도<br>‘나의 희망’이라고 저장 되어있는<br>나의 삶이,<br>어쩌면 온전히 나만의 것만은 아님을.</p></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