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씻고 청결히 하는 것을 권장하는 세태에서 사람들은 안 씻는 것을 혐오하다 시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기술임을논하고자 한다.
유랑 중 습득해야할 가장 난이도 있는 기술 중의 하나가 바로 ‘안 씻고 버티는 능력’이다.씻고 닦을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이 상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보니 최대한 더러움을 참고 버텨내는 기술은 슬기로운 유랑생황을 위해 필수이다.
1주간 배낭 짊어지고 삐질 땀 흘리며 원주에서 횡성, 횡성에서 홍천까지 이동해 왔다. 각 지역 시멘트 바닥,흙바닥, 풀밭에서 텐트치고 생활하다보니 몸에는 땀 냄새가 풀풀이다.
과거에는 6,7월에도 안 씻고 2주는 버텼었다. ㅠㅡ 이런 때는 때가 밀려서 들고 일어나곤 하는데, 한번 밀리면 대책이 없기에 일어나는 때를 다독이고 진정시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곤 했다. 2주쯤 안 씻는 거야 뭐 그리 대수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루 종일 배낭짐 짊어지고 삐질 땀을 흘리며 2주 사는 것은 인간계의 범인들이 일상생활하며 2년 사는 것과 비슷하다 할 것이다. 킁.
하여간 그렇기에 2주쯤 지나면 목욕탕 가서 한번 씩 때를 벗기는데, 이때 나오는 때를 모아 뭉치면 소시지 한꼬다리 양은 될 것이다.
하지만 씻은 후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갈아입은 의관을 세탁하는 건데, 공중 화장실 등을 찾아 사람 안다니는 시간을 이용해 하는 ‘눈치 빨래’는 유랑스킬의 정점이다. 빨래라고 해봐야 세제도 없이 물에 한번 적셔서 휘적휘적 하는 것이 전부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빨래를 하는 일이 아니라 말리는 일이다. 빠는 것은 5분이면 하지만, 말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장소와 햇볕과 시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의 건물 뒤편에 ‘도둑 널기 스킬’의 연마가 필요한데, 이는 익스트림 스포츠인 도심 속 유랑 특유의 스릴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빨래를 널은 후, 그 앞에 죽치고 있을 수 없기에 한나절 돌아다니다 와야 하는데, 자칫 잘 못하면 빨래 줄 주인이 걸레인줄 알고 걷어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빨래를 널은 곳으로 돌아올 때마다 ‘조마조마’하는 스릴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러한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관공서 빨래 다이에 널기도 했다.
[진해 중앙동사무소 옆 빨래다이에 널은 빨래와 안내 표시 / 이날 저녁 빨래가 무사히 달려 있기에 진해시청 게시판에 중앙동사무소장 1계급 특진 상신문을 올렸다.]
이러한 번거로움이 싫을 때는 지나는 길 계곡에 빨래를 해서
배낭을 빨래 다이로 만들어 주렁주렁 달고 다니기도 한다.
그나마 이 스킬은 볕이 좋을 때라야 구사가 가능하지 비가 계속 내릴 때는 며칠 씩 젖은 빨래를 배낭에 달고 다녀야 할 때도 있다.
하여간 그간 이렇게 유랑 다니며 빨래해 말리는 일에 큰 노고를 겪다보니 머릿속에는 온통 ‘빨래해서 말릴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중...
쿠궁!!!
셀프 빨래방이라는 신기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세탁기,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 없이 생활을 해왔다. 그렇다보니 집에서도 그냥 바께스에 빨래를 담가 놨다가 후비적 거려 빨아서 물을 뺀 후에 빨래 건조다이에 말린다. 이런 삶을 살다보니 평소 걸어 다니면서도 개나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것에 관심을 가질 뿐, 이런 시설이 있고, 이걸 사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여 지나는 사람들 눈치 보며 공중화장실에서 빨래를 해서 도둑건조를 하고, 혹시나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걷어서 버리지 않을까 공포에 짓눌려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빨래만 가지고 가면 30분 만에 세탁해서 건조까지 되는 이런 획기적인 시설이 지구상에 있었다니. 후덜덜...
물론 한편으로는 여행다니는 것이 아니라, 대중소비사회에 적응하고 타협해 온 스스로의 삶을 비판하고 자성하기 위해 시작한 유랑캠페인이기에 셀프빨래방과는 결이 맞지 않기는 하다. 따라서, 이런 편리를 이용하는 것이 스스로의 고행과 반성의 기회에 다리를 거는 일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다리를 살짝 들어 조심해서 걷도록 한다. 뭐 하여간.
오. 동전만 넣으면 빨래가 되다니. 오오. 그런데 빨래 비용보다 말리는 건조비용이 더 들다니. ㅠ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