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아래 qefx 님이 쓰신 글 말미에서 지적하셨듯이 허무주의야 말로 인간의 투쟁의 끝판 대장인것 같습니다.</div> <div> </div> <div>저는 Invisible 님과 같이 과학도입니다.</div> <div> </div> <div>그래서 세상은 사실 기본입자들과 그 매개 힘들의 상호작용일 뿐이라는 환원주의에 심취한 적이 있었죠.</div> <div> </div> <div>세상은 단지 물질과 그 상호작용일 뿐이지 어떤 근본적인 의미라는 것은 없다는 말. 동의합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저는 허무주의와 싸우는데 있어서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의 정신승리법은 이랬습니다.</div> <div> </div> <div>'아무 절대적인 의미도 없으므로, 어떤 의미를 부여하던 그것은 나의 자유이다.'</div> <div> </div> <div>그리고 인간은 분명 행복한 상태를 추구하므로, 인간의 최대다수의 행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의미를 부여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자기만 만족하면 그만인데 왜 남의 행복을 생각해야 할까?</div> <div> </div> <div>왜냐면 인간은 개미나 벌과 같이 대규모 군집생활을 하는 유기체입니다.</div> <div> </div> <div>인간은 분명히 경쟁보다는 협동으로써 살아남았습니다.</div> <div> </div> <div>초기 원시인류들이 모여살고 있을 때, 만약 곰이라는 문제상황에 직면했다고 가정해 봅시다.</div> <div> </div> <div>그러면 '네가 발이 빠르니 곰을 유인해라.' '나는 함정을 파겠다.' '너는 함정속의 미끼를 구해와라.' </div> <div> </div> <div>등의 역할을 나누어 협력함으로써 곰이라는 문제상황을 해결했지.</div> <div> </div> <div>어떤 인간도 '네가 우리 마을의 64강전 토너먼트 최종 승리자이므로 네게 식량과 무기를 몰아줄테니 곰과 맞짱떠서 이겨라.' </div> <div> </div> <div>는 식의 문제해결을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있었다면 곰을 이기지 못하고 사멸했을 겁니다.</div> <div> </div> <div>집단이나 국가간의 경쟁에서도 마찬가집니다. 1명의 개인이나 1개 집단의 힘은 여러 집단의 네트워크의 힘에 당할 수 없습니다. </div> <div> </div> <div>언론에서 자꾸 아이폰 VS 갤럭시라고 기사화 하는데, 삼성이 맞서싸워 이겨야 할 진정한 적은 아이폰이 아니라 </div> <div> </div> <div>애플이 구축해 놓은 막대한 규모의 앱스토어, 아이튠즈 스토어의 네트워크입니다. </div> <div> </div> <div>어플이 없는 스마트폰을 누가 삽니까? 아이폰이라는 하드웨어는 이것을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이 네트워크가 진정한 애플의 자산입니다. </div> <div> </div> <div>어찌되었든 인간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렇듯이 협력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 무엇도 협력의 힘 앞에서는 당할 수 없으니까요.</div> <div> </div> <div>구둣공이 셋 모이면 제갈량보다 낫다는 말은 괜히 나온게 아닙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래서 다른 개체를 위했을때 기분이 좋다는 행복감은 거의 본능처럼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은 것입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저는 환원주의자가 됨으로써 오히려 보편적 법칙으로써의 도덕성과 인간애에 더 강한 확신을 얻었습니다.</div> <div> </div> <div>맞습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으로써 살아남기 위해 도덕성과 인간애라는 개념을 발명해 냈습니다.</div> <div> </div> <div>그러므로 인간은 인간을 위해 인간을 사랑하면 되는 겁니다.</div> <div> </div> <div>이것은 절대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이것을 반드시 어떻게 해석해야 한다는 기준은 없습니다.</div> <div> </div> <div>어떻게 해석하든 무슨 상관입니까? 좋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div> <div> </div> <div>왜냐면 좋게 받아들이는 것이 결국 최종적으로는 어떻게든 자신에게 이익이거든요.</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지구온난화, 환경보전과, 동물보호 같은 생태계적 문제도 마찬가집니다.</div> <div> </div> <div>솔직히 인간이 멸망하고 각종 동식물들이 모조리 멸망한다 해도 미생물적 차원의 생명체들은 결국 살아남습니다.</div> <div> </div> <div>환경보전은 결국 인간을 위한 일입니다. 조금씩 누적되는 생태계 파괴를 막음으로써 인간이 살아남자는 것입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어차피 인간은, 모든 생명체들은 우연히 부모로부터, 또는 모세포로부터 복사된 DNA 분자들의 조합과 복사로써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div> <div> </div> <div>절대적인 의미라는 것은 없습니다.</div> <div> </div> <div>그러니까 각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던 어쨌던 상관없지 않나요?</div> <div> </div> <div>왜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으려는 거죠? </div> <div> </div> <div>마크 트웨인이 말한 것 처럼 우리는 태어나기 이전의 영겁의 세월동안을 죽은 채로 있었습니다.</div> <div> </div> <div>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을 저주로 여기던, 축복으로 여기던, 그건 전적으로 자기 자유입니다.</div> <div> </div> <div>그런데 왜 그걸 저주라고 여기는지 저는 잘 모르겠군요.</div> <div> </div> <div>축복이라고 여길 만 하다, 저주라고 여길 만 하다ㅡ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은 저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뭐가 달라지죠? </div> <div> </div> <div>어찌되었던 간에 축복이라 믿고 자신의 주변환경을 최선을 다해 이용하고 남을 도우며 남들 역시 삶이 축복이라 여길 수 있도록 돕는것.</div> <div> </div> <div>그렇게 믿는 편이 인간이라는 종에, 자신의 최대 이익에 도움이 되니까요.</div> <div> </div> <div> <div>"인생이란 축복이다. 이 좋은걸 너도 해봐라. 힘들다고? 그러면 내가 좀 도와주겠다. 우리 같이 즐겁게 살자."</div> <div> </div></div> <div> </div> <div> </div> <div>쓰고보니 왠지 제 28년 인생의 정신세계의 요약인것 같군요.</div> <div> </div> <div>빨리 답변할 수는 없지만 태클 환영합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