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몇 년전 겨울이었다. 피시방에서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만두고 피시방 단골 손님 소개로 C를 배웠다.</p><p><br></p><p>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프로그램 언어 C를 배웠다.</p><p><br></p><p>역시 학원에서 6개월 과정으로 배우는 걸로 현업에 바로 뛰어들기는 무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좀 한심한 결정이었다.</p><p><br></p><p>몇 년이나 하고 있던 WOW를 하러 내가 일하던 피시방으로 여느때 처럼 발걸음을 옮겼고,</p><p><br></p><p>아이언포지 앞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면서 채팅이나 하고 레이드 준비나 했다.</p><p><br></p><p>당시 고정 공대 메인탱커였던 나는 레이드 끝나고 집에 가봐야 눈치나 보이니까 가족들 모두 잠든 후에 들어가려고 시간을 더 때우는 중이었다.</p><p><br></p><p>우리 공대장이 막공을 모았고, 골드나 벌겸해서 메인탱커로 들어가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탱힐만 있으면, 딜러는 어디서든 주워올 수 있는 시절이었으니까, 인원을 금방 모아서 후다닥 돌고 오자며 출발 했다.</p><p><br></p><p>그날만큼 힘든 막공이 있었을까.</p><p><br></p><p>25명중에 우리 공대원이 몇 명 있었고, 오며가며 눈에 익은 아이디들이 몇 명 더 있었으며, 나머지는 생판 초보였던 것이다.</p><p><br></p><p>정공이었으면, 큰소리 내며 진행했을 공대장은 애써 침착하려는 노력이 목소리를 통해 들려왔고, 듣다못해 내가 마이크를 잡고 진행했다.</p><p><br></p><p>수 년간 와우를 하면서 온갖 발컨들을 만나왔지만, 그 공대는 발컨의 완전체였다. 10명 가량이 레이드 자체가 처음이었던 막공.</p><p><br></p><p>일반몹 구간에서도 전멸을 해가면서 차근차근 설명 해가면서, 네임드 하나당 10분 이상씩 설명을 해주면서 새벽 두 시나 되어서 막공이 끝났다.</p><p><br></p><p>귓말이 왔다. 3파티인가에 있던 흑마.</p><p><br></p><p>어마어마한 사고가 곁들여진 막공이었는데도, 차분하게 진행하는 내 목소리가 맘에 들었단다. 물론 그 사람은 여자.</p><p><br></p><p>며칠 동안 접속해서 귓말도 하고 인던도 같이 다니고 그렇게 친해졌다.</p><p><br></p><p>그리고 얼마 후 내 생일이 코앞이었는데, 밥먹자는 걸 내가 밥이나 한끼 사달라고 했다. 내 생일날.</p><p><br></p><p>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궁금했었다.</p><p><br></p><p>그녀가 보내준 사진은 뭐랄까....</p><p><br></p><p>사람을 외모만 가지고 판단을 하면 안되지만, 정말....정말 못생긴 여자가 사진속에 있었다. 몇 백년 혹은 몇 천년 후엔 미의 기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때는 단연코 아니었고, 내 취향은 커녕, 알고 지낸 짧은 기간 자체를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다.</p><p><br></p><p>그렇다고 이미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못생겼다는 이유로 취소 할 수는 없지 않은가?</p><p><br></p><p>그건 사람이기 전에 한 남자로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p><p><br></p><p>약속날.</p><p><br></p><p>아침부터 피시방에 나와있다가, 약속 시간에 맞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보다 너무 이른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보며,</p><p><br></p><p>단골 손님들이 무슨일이냐고 물어봤고, 나는</p><p><br></p><p>"형...저 오늘 인신매매 당할지도 몰라요. 나 안돌아오면 원양어선에서 고기 잡는 줄 아세요."</p><p><br></p><p>라고 유언을 남기듯 말하고 출발했다. </p><p><br></p><p>그 무시무시한 사진은 그 형들도 이미 봤었고, 형들은 좋다며 키득거렸다.</p><p><br></p><p>약속장소에 5분 정도 먼저 나가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되어 전화를 했다.</p><p><br></p><p>금방 도착 한단다. 서성서성이다가 전화가 온다.</p><p><br></p><p>그녀였다. 어디있냐고 물어보는데, 사진과 전혀 다른 사람이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p><p><br></p><p>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안심이 되었다고 해야하나? 밥을 같이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어봤다.</p><p><br></p><p>아는 동생이랑 같이 있었는데, 사진을 보내려다가 장난을 치고 싶었다고 했다.</p><p><br></p><p>그래서 인터넷으로 사진을 퍼와서 나에게 보냈다고, 그런데 그 사진을 보면서도 무덤덤하게(사진 보내주던 당시 음성 채팅중이었음) 밥먹자고 하니 내가 되게 궁금했었다고 했다.</p><p><br></p><p>그 뒤로 3년 조금 넘게 연애를 했었다.</p><p><br></p><p>지금은...ㅠ_ㅠ</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