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BED height=300 width=400 src=http://pds24.egloos.com/pds/201206/23/71/06_My_Machine.swf wmode="transparent"> <P><BR><BR><BR>딱딱한 병원 침대가 허리를 깨무는 것처럼 불편했다. 허리춤까지 올려져 덮인<BR>누리끼리한 이불을 걷어내며 일어서려는데, 침대를 짚고 일어서는 손에 눅눅한 물기가 흥건했다.<BR><BR>몸을 지탱하는 손을 내려다보니 누가 물이라도 한바탕 끼얹은 것 마냥 물기가 침대 시트에 가득 스며있었다.<BR>의사가 내게 몸을 가까이 들이밀자 의자 바퀴 발에서 끼긱 거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BR><BR>"얼마나 잠들어 계셨는지, 짐작이 가세요?"<BR><BR>또 가식적인 웃음을 짓는 의사 놈이 거슬리고 거슬려서 꽥하고 고함이 치고 싶었다.<BR><BR>요즘 들어 참을성의 한계가 많이 낮아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치밀어 오르는<BR>성질머리를 통제 하기가 어려웠다. 의사는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BR><BR>"왜요?"<BR>"중요한 건 아니에요."<BR>"그럼 물어볼 필요도 없었던 거 아닌가요?"<BR>"그렇네요. 그럼 필요한 질문 좀 해도 될까요?"<BR><BR>웃는 표정이 한 번의 변화도 없는 의사 놈이 능글맞아 보여 정말 이마빼기에 슬슬 열이 차 폭발할 것 같았다.<BR>금방이라도 내가 한마디를 뱉으면 손에 쥔 수첩에 볼펜을 갈겨쓸 준비를 하고 있는 의사 놈은 내가 분명히<BR>불쾌하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에 순순히 적응하는 듯 했다.<BR><BR>"제가 어디 몸이 안 좋은 상태인가요?"<BR>"아니요. 건강하세요."<BR><BR>의사 놈이 또 무언가를 수첩에 적어나갔다.<BR><BR>"뭘 자꾸 쓰시는 거에요?"<BR><BR>대답은 없이 눈만 꿈뻑이는 의사는 내가 앉아있는 침대의 시트에 손을 가져다 댔다.<BR>꿉꿉하게 젖어있는 침대를 슬슬 쓸고 눌러보더니 다시 수첩에 무언가를 적었다.<BR><BR>"장례식장에서 누구를 보고 죽으라고 소리치셨던 거에요?"<BR>"누가 누구한테 소리를 쳤다는 말씀이세요?"<BR><BR>내가 아버지의 귀신을 보고 소리를 쳤다는 미친 소리를 꺼낼 리 없었다. 안 그래도 의사의 요상한<BR>눈초리가 거슬리는 통에 내가 장례식장에서 보고 들었던 아버지 귀신의 이야기를 꺼낸다면<BR>그는 나를 정말로 정신병자 취급할 것이 뻔해 보였다.<BR><BR>"고모님 되시는 분이 그러시던데요. 이제 제발 죽어서 사라지라고 고함치셨다고요."<BR>"그런 기억 없는데요."<BR><BR>의사가 입꼬리를 삐죽 들추며 처 웃었다. 오른손에 베갯잇 한 자락이 슬슬 만져졌다.<BR>당장에라도 그의 머리통을 베갯자락으로 휘갈기고 싶다는 충동이 들어 손이 다 떨리는 듯했다.<BR><BR>"고모님한테 뭐가 보이지 않냐고 물어보셨던 기억도 없으세요?"<BR>"없어요."<BR><BR>의사 놈이 또 무언가를 수첩에 적어나갔다.<BR><BR>"뭘 자꾸!"<BR><BR>내가 손을 뻗쳐 의사의 수첩을 낚아 채려하는데 몸에 하나도 힘이 없었다.<BR>힘차게 뻗쳤다고 생각한 손은 무쇠 추라도 달은 것처럼 무거웠다.<BR>손끝이 허우적거리며 공중을 가르는 모습이 영락없는 천치마냥 굼뜨고 어설펐다.<BR><BR>"환자분은 지금 탈진상태에서 깨어나신 거에요. 너무 무리는 마세요."<BR>"당신 뭔데 아까부터 사람 가지고 노는 듯이 살살거리는 거야?"<BR><BR>내가 언성을 높이자 의사 놈이 검지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가 입술언저리를 만지작거렸다.<BR>내가 그 모습을 위아래로 훑자 의사 놈은 표정을 잠깐 찡그리더니 쓸데없이 천장 모서리를 응시했다.<BR><BR>"환자분 혹시 돌아가신 분의 영령 같은 걸 본 건 아닌가요?"<BR><BR>의자가 나를 향해 자세를 고쳐앉았다. 끼릭 하는 의자바큇소리가 뜨끔하는 내 속내를 들추는 듯 소름이 끼쳤다.<BR><BR>"이곳은 정신병원입니다. 환자분은 오늘로써 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일곱 번째이죠."<BR><BR>바로 좀 전까지 귀신을 봤다는 기억이 뚜렷한 나를 관통하는 듯한 한마디였다.<BR>사실 내가 미쳤다고 사람들이 떠들어도 나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다만 그동안 이 의사 놈과 여섯 번<BR>얼굴을 마주했었다는 것은 전혀 기억에 없었다. 하지만 내가 미쳤다는 것을 자각하게 됨으로써<BR>의사 놈의 말에 작은 신뢰감이 들고 말았다.<BR><BR>"우리는 이전에도 이런 대화를 했었습니다. 이 이전의 여섯 번에도 정확히는 다섯 번이죠. 저와 만났던 일을 기억 못 하신다고<BR>말씀하셨으니, 이번에도 애써 저를 기억해 내려고 하실 필요는 없어요. 괜히 정신적 피로도만 높아집니다."<BR><BR>능글맞던 의사의 표정이 어느새 나를 통찰하고 있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았다.<BR>나보다 낮은 곳에서 나의 시선을 맞추고 있는 의사의 눈빛은 그가 마치 맨발로 내 머리꼭대기에<BR>올라서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깨름직한 압박감이 들게 하였다.<BR><BR>"아버지의 영혼을 보고 왜 죽어 사라지라고 고함쳤는지, 우리 다시 이야기해볼까요?"<BR><BR>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는 의사의 태도는 마치 나를 쪽지시험에 들게 하는 것만 같았다.<BR>이미 서로가 알고 있는 답을 다시 복습하는 이런 행동에 의미를 찾지 못하면서도 나는 술술 의사에게<BR>이야기를 풀어갔다.<BR><BR>"저는 아버지가 싫어요."<BR>"왜 그렇게 증오하세요? 왜 영영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BR><BR>내가 대답이 없는데도 의사는 또 무엇인가를 수첩에 적어 내려갔다.<BR>이제는 궁금해지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반복적인 행동이 지루하게 느껴졌다.<BR><BR>"아버지랑 안 좋은 일이 있으셨나요?"<BR>"..."<BR><BR>이번에는 꼭 대답을 들어야겠다는 듯 의사 놈이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BR>그저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그는 진득한 인내심을 뽐내기라도 하듯 자세한 번 바꾸는 일이 없었다.<BR><BR>"사람은 눈물을 너무 많이 쏟으면 눈물샘이 말라 결국 피눈물을 흘린다고 하죠."<BR><BR>대뜸 영문모를 소리를 떠드는 의사 놈을 돌아보았다.<BR>의사 놈은 나의 주목을 이끌어낸 것에 의기양양한 듯 표정이 밝아졌다.<BR><BR>"환자분은 장례식날 울다 지쳐서 탈진하셨습니다. 오열이라고 하죠? 그건 기억하시나요?"<BR>"제가 그딴 새끼 죽었다고 눈물 한 방울이라도 흘렸을 것 같아요?"<BR>"사실이 그랬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BR>"..."<BR>"아버님을 많이 사랑하셨죠?"<BR>"무슨 개소리야."<BR><BR>내가 욕지거리를 하자 의사가 또 삐죽하고 웃었다. 몸에 힘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다면<BR>온 힘을 다해 그의 뺨을 후려쳤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가슴을 끓어오르게 했다.<BR><BR>"환자분 나이랑 성함 좀 말씀해주실래요?"<BR>"그런 것도 몰라요?"<BR><BR>의사 놈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체 고개를 돌리곤 벽에다 대답을 던졌다.<BR><BR>"김지선, 열여덟."<BR>"지선양."<BR><BR>의사 놈의 꼴이 보기 싶어 고개를 벽에만 향하고 있는데 의사 놈이 수첩에 끄적이는 볼팬소리가 들렸다.<BR><BR>"지선양은 혹시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신 일이 있으셨나요?"<BR><BR>귀신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아버지의 손이 내 허벅다리를 쓸어올리던 일이 일순 머리를 스쳤다.<BR><BR>"그런 일 없어요."<BR>"아버지가 지선양에게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하거나 한 적도 없나요?"<BR><BR>눈에 잔뜩 힘을 주어 뒤돌아 의사를 노려보았다. 의사 놈은 다리를 꼰 체 팔받침을 하여 턱을 괴고 있었다.<BR><BR>"무슨 소리야?"<BR>"아버지가 지선양에게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한 적이 없냐구요."<BR>"이 씨발새끼. 다 알면서 왜 또 물어! 너 이!"<BR><BR>내가 몸을 일으켜 의사 놈에게 손을 뻗는데 몸에 균형이 무너지며 침대 밑 콘크리트 바닥으로 쑥 떨어져 나갔다.<BR>돌 바닥에 넘어지려던 나를 재빠르게 움켜쥔 의사의 양손이 내 어깨를 욱신거리게 했다. 내가 고개를 들자<BR>의사의 얼굴이 주먹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가까이에 있었다.<BR><BR>"지선씨와 아버님께서 성관계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너무 화내지 않으셔도 되요."<BR>"뭐?!"<BR>"지선씨도 아버님도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BR>"이!!!!"<BR>"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BR><BR>의사 놈의 고함 때문에 병실로 한가득 침묵이 찾아들었다.<BR>한참을 말이 없는 우리의 차디찬 공기가 머리를 식혀주는 듯 했다.<BR><BR>"니가 무슨 수로 나를 치료하는데?"<BR><BR>내가 눈을 돌려 의사를 바라보자 의사는 의기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다.<BR><BR>"자살하실 것을 권해드릴게요."<BR><BR><BR><BR><BR>-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