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994년. <br>그 당시 필자는 지하 작업실과 유사한 환경의, 그러나 훨씬 더 후미지고 좁은 서울 변두리의 단칸 지하실에서 음악 연습을 하며 살고 있었다. <br><br>네평 남짓되는 지하 공간... 난방시설은 물론 창문도 없어 낮밤조차 구별이 되지 않음은 물론, 싸구려 방음벽으로 온 내벽이 시커먼 색으로 도배되어 있었고 수도관마저 파열되어 물만 틀면 천정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던, 말 그대로 음침한 곳이었다. <br><br>자정 무렵이면 잘 닫히지 않는 철문 틈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먹이를 달라던 한마리 굶주린 검은 고양이의 괴괴한 울음 소리마저도 차라리 반갑게 느껴질 정도로 고적함과 음습함이 감돌던 그곳.... <br><br>환경이 이랬던 만큼 이곳에서 살던 1년 남짓한 기간동안 도무지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렸다. 정말 많은, 온갖 종류의 악몽을 그 시기에 꾸었다. 그러나 지금 기억이 나는 것은 별로 없다. <br><br>하긴, 실제로 겪은 무서운 일도 막상 벗어나서 안전해 지고 나면 술자리에서의 농담거리로 전락하기 십상인데, 좁은 방안에서의 악몽이야 뭐가 그리 공포스럽게 기억에 남아 있겠는가. <br><br>열분들의 경우도 아무리 무서운 악몽을 꾼들 불과 며칠밖에 기억되지 못하고 잊혀지곤 할 것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꾼 수많은 끔찍한 악몽과 약간의 음산한 기억들이래봤자 나의 삶이나 정신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을 뿐더러, 이미 다 지워진 채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 말이다. <br><br>그렇다. <br><br>...오직 그 일만 빼면 말이다. <br><br>　 <br><br>- 악몽의 시작 <br><br>그것이 처음 찾아온 것은 어느날 낮잠을 자고 있던 중이었다. <br><br>꿈 속에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조선시대의 장터를 걷고 있었다. </p> <p> </p> <p>흰옷을 입고 상투를 튼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한낮의 장터는 활기로 가득차 있었고, </p> <p> </p> <p>어머니와 나는 점심을 먹으러 국밥집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br><br>그때 한쪽 모퉁이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p> <p> </p> <p>고함소리 같기도 하고 노래 소리 같기도 한 나이든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피하고 있었다. </p> <p> </p> <p>뭔가 이상했다. <br><br>나는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p> <p> </p> <p>그는 시끄러운 쪽을 힐끗거리며 두려운 목소리로 말했다. <br></p> <p><br>"가끔씩 오는 미친 무당년이 또 나타났네..." <br></p> <p><br>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침 나는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틈새로 멀리 무당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p> <p> </p> <p>희고 더러운 소복을 입고 </p> <p> </p> <p>그리 길지 않은 지저분한 머리결을 휘날리는 무당의 얼굴은 </p> <p> </p> <p>멀리서도 한눈에 알아 볼 만큼, 마치 흰 분을 바른 것처럼 허여멀그레 했다. </p> <p> </p> <p>그 얼굴을 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돋았고,</p> <p> </p> <p>불길한 느낌을 받은 나는 어머니를 이끌고 빨리 그곳을 빠져 나왔다. <br><br></p> <p>잠시 후 우리는 국밥집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다. </p> <p> </p> <p>그러나 그곳 역시 뭔가 괴이한 분위기에 싸여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p> <p> </p> <p>비정상적인 시공간에 들어와 있는 느낌... </p> <p> </p> <p>뭔가 뒤틀려 있고 사악한 무엇인가가 숨어 있다는 직관... </p> <p> </p> <p>이런 요사한 기운을 애써 무시하면서 나는 어머니와 함께 국밥이 날라져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br></p> <p> </p> <p><br>바로 그때였다. 그것이 날 찾아온 것은. <br></p> <p> </p> <p><br>내 왼쪽 볼에 갑자기 뜨거운 입김이 와 닿았던 것이다. </p> <p> </p> <p>무엇인가가 내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 </p> <p> </p> <p>뜨거우면서도 역겨운 그 입김. 따듯한 난로불의 온기가 아닌, 마치 썩고 있는 고기가 내뿜는 열기와 같은... <br><br>나는 고개를 돌렸고, 바로 내 얼굴 왼쪽 5센티미터 지점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그 미친 무당의 얼굴을 정면에서 마주보게 되고 말았다. <br><br><br>이 모습과 정말... 비슷한 분위기였다.</p> <p> </p> <p>얼마나 놀랬을지 상상이 될거다. </p> <p><br>아직도 그 얼굴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p> <p> </p> <p>색을 칠한 듯 허연 색에 주름이 많은 얼굴은 퉁퉁 부어 있었고, 눈은 거의 반쯤 감겨 있었다. <br><br>백발이 드문드문 섞인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확연히 드러나는 광기를 표정에 머금고 나를 바라보던 그 얼굴. </p> <p> </p> <p>그 모습은 유령이나 악령이가보다는 오히려 부패하고 있는 시체의 얼굴에 가까운 것이었다. <br><br>그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뜨며 잠에서 깨어나 버렸다. </p> <p> </p> <p>그러나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p> <p> </p> <p>가위에 눌린 것이다. <br><br>사실 가위눌림은 원체 어릴때부터 수백번 겪은 터라 내게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고, </p> <p> </p> <p>그것을 풀어내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p> <p> </p> <p>생각을 털어버리고 몸에 힘을 빼면 대부분의 경우 가위눌림은 저절로 사라지고,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p> <p> </p> <p>따라서 그때도 나는 가위눌림을 풀기 위해 몸을 릴랙스 시키려 했다. <br></p> <p><br>그러나 그날은 뭔가 달랐다. </p> <p> </p> <p>가위가 전혀 풀리지 않는 것이다. </p> <p> </p> <p>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p> <p> </p> <p>바로 그때... 왼쪽 귓전에 난데없이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br></p> <p> </p> <p><br>"어딜가니...? 나랑 놀자..." <br></p> <p> </p> <p><br>입을 귀에 바짝 대고 속삭이는 듯한 그 목소리는 유혹적인 젊은 여자의 것이었다. </p> <p> </p> <p>나는 온몸이 굳은 채 공포보다는 오히려 경악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다. </p> <p> </p> <p>잠시 후 다시 그 목소리가 들렸다. <br></p> <p> </p> <p><br>"나랑 놀자니까... 내가 재밌게 해 줄께..." <br></p> <p> </p> <p><br>순간 정신이 돌아오며, 나는 아주 현실적인 위기감에 사로잡혔다.</p> <p> </p> <p> 뭔가 사악한 것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br></p> <p> </p> <p><br>"나랑 놀자... 호호" <br></p> <p> </p> <p><br>그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그때까지의 황당함과 놀람에서 벗어나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맹목적인 의지가 생겼다. </p> <p> </p> <p>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는 내부의 힘을 끌어내며 거의 반자동적으로 외쳤다. </p> <p> </p> <p><br>"네 이년! 어디라고 감히 이따위 수작을 부리느냐! 빨리 사라지지 못할까!" <br></p> <p><br>이상하게도 조선시대 풍의 호통이 내 입밖으로 튀어 나왔고, 첫 음절이 나옴과 동시에 가위가 풀리면서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p> <p> </p> <p>그리고 나는 내가 하는 나머지 말들을 앉은 채로 들을 수 있었다. <br><br>1분 정도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던 나는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대 피고는 다시 들어왔다. </p> <p> </p> <p>그런 다음 별다른 후유증 없이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다. </p> <p> </p> <p>상당히 괴기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담배를 피며 오후의 햇살을 보고 나니 좀 특이한 가위 눌림이라는 느낌 이상의 것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br><br>나 자신이 원체 그런데 대해서 겁이 없기도 했다. 귀신이 인간을 이길 수는 없다는 평소의 소신 때문이었다. <br><br>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br><br><br></p> <p><br>- 되찾아온 악몽, 그리고 이상한 경험 <br><br>보름여 쯤 지났을까. <br><br>나는 똑같은 꿈을 다시 꾸게 된다. </p> <p> </p> <p>조선시대의 장터...</p> <p> </p> <p>미친 무당... </p> <p> </p> <p>얼굴 옆으로 불어오는 뜨거운 입김... </p> <p> </p> <p>그리고 또다시 그 목소리. <br></p> <p> </p> <p><br>"가지 말라니까... 나랑 놀자구..." <br></p> <p> </p> <p><br>허옇고 퉁퉁 불은 얼굴을 보지만 않았더라도 자칫 유혹에 넘어갈만도 한 섹쉬한 그 목소리. </p> <p> </p> <p>몇번에 걸쳐 들려오는 그 목소리를 뿌리치고 나는 지난번과 똑같이 호통을 치고 가위에서 풀려나면서 일어났다. </p> <p> </p> <p>온 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br></p> <p> </p> <p><br>'이게 또 뭔 일이냐 젠장...' <br></p> <p><br><br>목소리만 들었으면 이 정도는 상상했을거다. </p> <p> </p> <p>꼬실려면 얼굴을 들이밀지나 말던가... </p> <p><br>불쾌한 기분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밖으로 나갔다.</p> <p> </p> <p> 아침 7시경. 이미 밖은 환했고 드문드문 사람들도 보였다. </p> <p> </p> <p>근처의 구멍가게에 가서 오렌지 쥬스를 한잔 사먹고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한대 빼 물었다. <br><br>십분여 정도를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환한 바깥 분위기에 이미 공포감은 다 사라져 버렸고, </p> <p> </p> <p>도로 들어가서 다시 눈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br></p> <p><br>별 생각없이 철문을 열고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가던 나는 중간쯤에서 움찔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br></p> <p><br>그렇다. 이상한 한기와 함께... 이유를 알 수 없는 강한 반탄력이 지하실로부터 느껴진 것이다. </p> <p> </p> <p>그것은 마치 물 속을 걸어들어 가는 듯한 저항력이었다. </p> <p> </p> <p>그리고 이어서 수백개의 바늘이 몸으로 날라오는 듯한,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한 충격이 몸 전체를 휘감기 시작했다. <br></p> <p><br>그 순간에는 정말로 더럭 겁이 났다. </p> <p> </p> <p>당장 돌아서서 여길 나가야 해... 도망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p> <p> </p> <p>그러나 다음 순간, 웬지 모를 오기와 함께, 여기서 도망가면 계속 쫓겨다녀야 할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p> <p> </p> <p>내 힘으로 이것을 물리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확신에 가까운 신념이 생겨나고 만다. <br><br>어렵사리 반탄력을 눌러가며 한걸음씩 떼어 계단을 내려간 나는 지하실 안의 문을 활짝 열고 눈을 부릅뜬 채 방으로 들어갔다. <br><br>그 순간의 느낌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br></p> <p><br>특별한 형체가 보이지는 않았다. </p> <p> </p> <p>그러나 온몸을 거의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압박감과 함께 찬 바람이 지하실 전체를 휘감아 돌고 있었으며 </p> <p> </p> <p>강력한 전기 충격이 계속 몸을 치고 들어왔다. 요기와 광기가 뒤범벅이 된 그곳은 이미 내가 살고 있던 그 방이 아니었다. <br><br>그리고 몇초 후, </p> <p> </p> <p>나는 방 안쪽에 앉아 영혼 가득한 분노를 내뿜고 있는 어떤 존재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p> <p> </p> <p>그 어떤 설명도 없이 오직 분노로만 뭉쳐 있는 듯한 존재를 말이다. </p> <p> </p> <p>그것이 내뿜는 기운은 가히 압도적이었지만, 나 역시 물러설 수는 없었다. </p> <p> </p> <p>물러서면 죽거나 미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br></p> <p> </p> <p><br>이어 나는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시작했다. </p> <p> </p> <p>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내가 한번도 내 본 적이 없는, </p> <p> </p> <p>배 속 깊은데서 올라오는 굵은 저음의 목소리로 문제의 존재에게 호통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p> <p> </p> <p>그것은 사실 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br><br>지금 기억하는 그 말의 내용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br></p> <p> </p> <p><br>"너의 한과 고통은 짐작할 만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려 한들 무슨 한풀이가 되겠느냐? 이제 가야 할 곳으로 가거라...!" <br><br><br>내 속에 귀신쫒는 대감님이 사시나? </p> <p> </p> <p><br>머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한 오분여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지껄인 것 같은데, </p> <p> </p> <p>이때 그런 내 모습을 평소의 내 자아가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p> <p> </p> <p>즉, 내 목소리도 아닌 톤으로 호통치고 있는 나를 보통의 내가 한편에서 흥미를 갖고 관찰하고 있는, </p> <p> </p> <p>자아가 둘로 나뉘어지는 듯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br><br>그렇게 몇분의 시간이 흐른 후, 반탄력과 전기충격이 현저히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다. </p> <p> </p> <p>나는 서서히 걸어들어가 컴퓨터 앞 의자에 앉았고, </p> <p> </p> <p>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또 오분 정도 그 존재를 구슬리고 달래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담배까지 빼 문 채. <br><br>물론 이것도 내 의지가 아니었다. <br><br>그렇게 어느정도 더 시간이 흐르자, 마치 장난같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든 기운이 사라졌다. 이상한 것은 나 역시 마치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 자연스럽게, 아무런 특별한 느낌없이 제 정신으로 그냥 돌아왔다는 것이고, 웃기게도 바로 하이텔에 접속해서 아침 채팅을 하는 등 도무지 그런 일을 방금 겪은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br><br>그리고 잠시 후 도로 잠이 들었다. 그 모든 이상한 일들에 대한 아무런 의심도 없이... <br><br>　 <br><br>- 퇴마사 <br><br>그렇게 잠든 후 점심때쯤 다시 일어난 나는, 그제서야 아침에 겪은 이상한 일이 현실감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br><br>나를 유혹하던 그 분노의 존재하며, </p> <p> </p> <p>거기에 대처하는 나 자신의 낯선 모습들... </p> <p> </p> <p>그리고 증발하듯 자연스럽게 종료되어 버린 전체 상황 등... </p> <p> </p> <p>그 모든 일들이 얼마나 비일상적이고 초자연적인 경험이었는지를 이상하게도 그제서야 인식하게 된 것이다. </p> <p><br><br>나는 때늦은 경의감에 사로잡혔고, 이 일을 어떻게든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p> <p> </p> <p>그래서 하이텔에 다시 접속해서 공포 게시판에 아침에 있었던 일을 요약하여 올렸다. </p> <p> </p> <p>나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br></p> <p><br>그렇게 글을 올린 며칠 후, 기대하지 않았던 한 통의 메일이 내 앞으로 날아왔다. 그</p> <p> </p> <p>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br></p> <p> </p> <p><br>당신이 만난 그 유령은 내가 일년째 쫒고 있는 무당 귀신일 가능성이 큽니다. </p> <p> </p> <p>매우 위험하므로 조심하셔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p> <p> </p> <p>연락 주십시오. <br></p> <p> </p> <p><br>조금의 장난끼도 없는 진지한 필체였긴 했지만,</p> <p> </p> <p>열분도 알다시피 통신이라는 곳에는 별 놈들이 다 있는 만큼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p> <p> </p> <p>그저 '걱정마십시오. 내가 나름대로 쫒은 것 같습니다' 라는 답장을 쓰고 잊어버리고 말았다. <br><br>이후 그 존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p> <p> </p> <p>기타 연습하고 데모 테잎 만들고, 친구도 만나고 술도 마시는 등 완전히 평상시로 돌아온 것이다. </p> <p> </p> <p>무당 귀신의 경험은 그저 특이한 체험으로 남았고, 어쩌면 내가 비몽사몽간에 혼자 오바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점점 희석되어 갔다. <br><br>그러나... 한달쯤 후 도착한 또하나의 메일은 나의 그런 생각을 일거에 날려버리고 말았다. </p> <p> </p> <p>지난번 편지의 주인공이 다시 보낸, 간단한 내용의 메일이었다. <br><br>문제의 그 귀신을 가락동 시장 근처에서 잡았습니다. 이제 아무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br><br>그가 어떻게 귀신을 잡았다는 것인지 나는 모른다. </p> <p> </p> <p>그러나 이 메일을 통해 나는 그때의 내 경험이 결코 혼자만의 착각이거나 잠결의 봉창 두드림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p> <p> </p> <p>그날 분명히 뭔가 내 방에 왔었고, 나와 대결했었다는 사실은 이제 일말의 의심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br><br>왜냐구? <br><br>나는 실제로 가락동 시장에서 열라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br><br>　 <br>--------------------------------------</p> <p><br></p> <p>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br><br>무당 귀신은 정말로 잡혔는지 지금껏 돌아오지 않았고, 나 역시 다시 그런 행동을 할 기회는 두번 다시는 없었다. <br><br>그러나 의문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br><br>첫번째 의문은 무당 귀신의 정체다. 그것은 정녕 조선시대에 억울하게 죽은 한맺힌 원귀였던가? 나를 꼬셔서 뭘 할려고 한걸까. <br><br>두번째 의문은 그날 내가 보였던 이상한 행동이다. 내가 낼 수 있으리라고도 생각지도 못했던 바리톤 성악가와 같은 힘있는 목소리... 그리고 그 호통과 달램의 내용들. 그건 또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실제로 그날 이후 나는 목소리가 좀 트였고 약간 낮은 톤으로 변하기도 했다. <br><br>세번째 의문은, 무당 귀신을 잡았다는 것이 무슨 뜻이냔 말이다. 사실 필자 역시 귀신을 '쫓는' 작업에는 한두 번 참여해 본 적이 있지만 - 담에 함 다뤄주마 - 귀신을 '잡는다'는 것은 좀 다른 차원의 작업인 것 같다. 호리병속이나 부적속에 가두기라도 한단 말인가? <br><br>마지막 의문. 사실 이것 하나만 푼다면 나머지 세가지 의문도 동시에 풀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바로 내게 메일을 보냈던 그 사람의 정체다. <br><br>하이텔에 쓴 글에는 내가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그가 내가 가락동 옆에 산다는 사실을 알 방법은 없었다. 결국 그는 정말로, 뭔가를, 가락시장 근처에서 잡은 것이다. <br><br><br>세상으로 나오시라. 영웅이여! <br><br>정녕 그는 프로페셔널 퇴마사란 말인가?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