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벌써 세월이 많이 흘러서 기억에서 사라질까봐 여기에 메모를 해둡니다</p> <p>제가 실제로 겪은 100% 실화입니다 그리 공포스럽진 않을 수도 있지만 심장이 약한 분이 읽기엔 좀 부적절한 것 같아서 여기 올립니다</p> <p>육군 사병 중 많은 비율이 전방에 배치되니까 GOP 경계 근무를 하신 분도 많겠지만<br>간략히 설명 드리자면 GOP 경계는 대대별로 로테이션 됩니다<br>현재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군복무할 당시엔 한 대대가 GOP에 투입되고 경계 근무를 하다가 6개월 지나면 <br>FEBA(GOP가 아닌 지역)에 있던 다른 대대가 투입되어 교대되는 형태였습니다</p> <p>해 떨어지기 30분 전, 해 뜨기 30분 전엔 철책 앞 각 초소에 전원 투입되어야 합니다<br>빈 초소가 생기면 안되기에 GOP에 인원을 많이 지원해야 하므로 <br>FEBA 대대에는 몇 개월 간이나 신병이 들어오지 않는 현상도 발생합니다<br>소위 꼬인 군번 풀린 군번이 생기는데, 풀린 군번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이등병 때 온갖 잡일을 혼자 다 해야 했습니다</p> <p>제가 처음 배치받은 중대는 GOP와 몇 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민통선 안에 있는 독립 중대였습니다<br>그 해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막사 뒤에 있던 산에 산사태가 나서 탄약고가 통째로 쓸려 내려가 버렸습니다<br>우리 중대 막사 바로 옆에 수색중대의 FEBA 막사가 있었습니다<br>잘은 모르겠습니다만 GP에 투입되기 전에 몇 달 간 조금 긴장을 푸는 소대인 것 같았습니다<br>어느 일요일 날 빨래터로 자주 이용했던 개울 쪽에서 펑 하는 굉음이 들렸습니다<br>얼마 후 앰뷸런스가 왔고 들것에 실린 사병을 보았습니다<br>발목 위가 잘려서 발이 덜렁덜렁 흔들리고 있었습니다<br>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라 그 순간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는데, 30분 쯤 지나자 그게 얼마나 끔찍한 장면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br>그 사건은 탄약고에서 쓸려 내려간 발목지뢰를 수색중대 병사가 운 나쁘게 밟은 거라고 추정됩니다</p> <p>그 해 여름에 비가 많이 와서 GOP 철책이 무너진 곳이 많았습니다<br>GOP에 있는 인원들은 밤에 경계 근무를 해야 하기에 낮에는 자야 하므로<br>GOP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우리 중대원들이 매일 철책에 가서 무너진 철책을 보수공사하는 임무를 맡아서<br>여름 내내 우리 사단 철책의 모든 섹터를 다 밟아 봤습니다<br>경치 좋은 곳도 많고 왠지 음침한 느낌이 드는 곳도 있었습니다</p> <p>몇 달이 지나 GOP에 투입될 시기가 왔습니다 투입되기 며칠 전 선발대가 인수인계를 받으러 먼저 가야 하는데<br>우리 소대에 있었다가 행정병으로 차출되었던 2개월 선임이 통신대기(?)인지 뭔지 행정반에서 당직 근무를 했고<br>제가 행정반 앞에서 혼자 멍하니 불침번 말번초 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그 선임병이 심심했는지 행정반에서 나와서<br>입대 전 고향에서 있었던 얘기, 여자 친구 얘기, 부모님 얘기를 하염없이 저에게 쏟아냈습니다<br>저는 졸립기도 하고 별로 흥미로운 얘기도 아니어서 건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br>그 고참은 제대 후 뭘 하고 싶고 졸업 후에 뭘 하고 싶다는 얘기들을 끝도 없이 쏟아냈습니다<br>평소엔 그렇게 말이 많지 않던 사람이어서 오늘따라 왜 이리 말이 많을까 속으로 생각할 때쯤 <br>기상 알람이 울렸고 그 고참은 행정반으로 돌아갔습니다</p> <p>그날 낮에는 다른 행정병 고참이 앞산 창고에 볼 일이 있어서 제 동기 녀석과 3인조로 산에 올라 갔습니다<br>일은 금방 끝났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철책 쪽에서 두다다다다다다다다다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br>저에게는 도로 공사 할 때 땅 파는 소리같이 들렸는데 행정병 고참이 심각한 표정으로 <br>'사고났나 보다'하기에 저는 그런갑다 하고 무심코 넘겼습니다<br>산에서 내려와서 내무반으로 들어가니 사람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져 있었습니다<br>분위기가 너무도 낯설어서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br>'동철이(가명)가 죽었단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br>말을 들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는데 한참 시간이 걸렸습니다<br>오늘 새벽에 한 시간 동안 나에게 별 재미도 없는 얘기들을 수없이 쏟아냈던 그 고참이 죽었다는 말이<br>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p> <p>며칠 후 그 장면을 목격했던 선발대 고참에게 들어보니 <br>기존에 GOP에 있던 타 대대 보급계 행정병이 물품 갯수가 맞지 않은 것을 숨기고 있었는데 <br>인수인계할 때 그것이 탄로가 날 것이 지나치게 두려운 나머지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던 모양이라고 했습니다<br>선발대가 오자 대공 초소에 거치되어 있던 M60 기관총을 탈취해서 무차별 난사했다고 합니다<br>저와 새벽에 얘기를 나눴던 동철이 고참은 얼굴을 맞아 뒤통수가 날아가버렸다고 합니다</p> <p>제대 후 우연히 '허원근 일병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br>그 허원근 일병이 죽음을 당했던 바로 그 소초에서 동철이 고참도 죽음을 당했습니다<br></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