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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1325013
    작성자 : 킬라칸
    추천 : 52
    조회수 : 3452
    IP : 164.125.***.39
    댓글 : 20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6/10/23 00:45:52
    원글작성시간 : 2016/10/22 15:38:45
    http://todayhumor.com/?humorbest_1325013 모바일
    [펌] 3인3색 친일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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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v>일반적으로 '친일파'라는 단어를 들으면 기회주의자적인 행태를 보이고 조선인들을 팔아먹었던 모습을 떠올립니다.</div> <div> </div> <div>이번에는 조금 색다른, 친일파 세 사람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10/1477118244e0a1d868327f421a9e1cfa205e9fa924__mn623128__w225__h317__f20357__Ym201610.png" width="225" height="317" alt="다운로드.png" style="border:none;" filesize="20357"></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span style="font-size:9pt;">첫번째 소개할 인물은 박중양입니다.</span></div></div> <div> </div> <div>박중양은 본래 김옥균 등 개화파를 존경하던 인물로, 개화파적이고 일본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던 인물입니다.</div> <div> </div> <div>청년시절 독립협회에도 참여하고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유학갔다오는 등, 지식인이기도 하였습니다.</div> <div> </div> <div>갑신정변과 김옥균의 최후를 보고 연좌제와 가혹한 형벌에 대해서 비판적인 행태와 조선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지니게 되었죠.</div> <div> </div> <div>유학생활 도중, 박영효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 처치하고자 조정이 자객을 보냈는데, 신변위협과 함께 조선에 대한 깊은 혐오감이 올라오게 되었습니다.</div> <div> </div> <div>그럼에도 성실히 공부하다가 이등박문의 아내를 구하는 일로 그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이때 이등박문이 조선인이라 차별하지 않아 감동하였다는 이야기도있습니다.</div> <div> </div> <div>그의 가르침에 따라 서구문물의 유입, 규율, 통제, 질서 등에 대한 필요성을 가지고 귀국하게 됩니다.</div> <div> </div> <div>귀국해서 판관, 군수, 도지사 등을 지냈는데 능력도 능력이고 이등박문이 조선통감이라 빽도 있어서 무리없이 승진하게 됩니다.</div> <div> </div> <div>행정업무도 무난한 편이라 위생사업이나 도로건설, 해로운 동물 구제, 병원건립 등에 힘을 썼고 조정과 마찰이 생겼으나 빽 덕택에 대부분 박중양 뜻대로 되었습니다.</div> <div> </div> <div>또한 조선인에게 횡포를 부린 일본 순사들을 때리고, 백성에게 가혹하게 법집행을 하는 경우에 손을 봐줬으며 '일본인 경찰서장'에게 망신까지 주는 등의 모습을 보였습니다.</div> <div> </div> <div>거기에 더해 뇌물이나 접대 등에 대해 부정적 의사를 내비치며 청렴하게 살아오던 사람이었죠.</div> <div> </div> <div>물론 평안도에 재직중에는 일못한다고 욕을 먹었고, 한일합방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인물이라서 한일합방을 주장합니다.</div> <div> </div> <div>그 덕택인지, 일제강점기시절에 도지사 직위를 가지게 됩니다.</div> <div> </div> <div>도지사 시절에도 도로 철도들을 깔고 무례하거나 조선인에 대해 막대하는 일본인 관리들에게 "응징하는 일"도 계속합니다.</div> <div> </div> <div>3.1운동시기에는 나서는 그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며 이에 대해 진압, 해산을 요구하고 여러 인물들을 신고하는 단체를 만듭니다.</div> <div> </div> <div>다만 이때 주도자를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에 대해서는 "선동당한 사람들"이라며 석방을 요구하고 이를 거절하자 "응징"해서 기어코 석방시키는 모습도 보입니다.</div> <div> </div> <div>이때의 공로로 훈장도 받긴 하지만, 일본인들의 미움을 사고 '청렴'때문에 아부와 뇌물에 서툴러서 총독부에게 단단히 찍혔고 성추문을 겪게 되자 사임합니다.</div> <div> </div> <div>30년대 들어서는 중추원 위원으로 활동하여 내선일체를 주장하였으며 이에 따라 총독부도 다시금 그를 신뢰하기 시작합니다.</div> <div> </div> <div>물론 특유의 당당한 태도는 변함없이, 조선총독 앞에서더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말을 다 하였습니다.</div> <div> </div> <div>2차세계대전 시기에는 창씨개명과 징병제를 지지하고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끌어들였으며 백작 작위를 받게 됩니다.</div> <div> </div> <div>뭐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은 패전하고 한국은 광복을 하게 되죠. 미군도 들어오고요.</div> <div> </div> <div>이때 남긴 명언이 가관입니다. "친일파는 나같은 사람...나같은 사람을 처단하라" "표리부동한 위선자들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싶지 않다. 그러니 죽여라"라는 말을 남기고</div> <div> </div> <div>미군정장관과 이승만을 찾아가 "이런 시기에 친일파를 처단하기보다 그들 능력을 이용하라. 다만 친일파의 대표자인 나를 죽여달라. 어떤 처단이라도 감수하겠다"라는 말을 합니다.</div> <div> </div> <div>나중에 반민특위에서 친일파 명단에 올라갑니다. 그가 체포되면서 했던 말이 "전 국민이 친일을 할수밖에 없지 않았는가?"</div> <div> </div> <div>재판을 받으면서도 "국민의 신변과 안전, 권리를 지키지 못하는 정부에 왜 충성해야하는가?" "이완용, 김옥균, 박영효들은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남기다가 폐렴때문에 풀려납니다.</div> <div> </div> <div>6.25도 겪었으나 대구쪽이라 별다른 관련은 없었고, 이승만 까기에 열중하며 "미국이 나가면 이승만은 봇짐싸느라 바쁠 것"이라며 조롱을 경무대(지금의 청와대)에 보내는 용기도 보입니다.</div> <div> </div> <div>그러다가 나중에 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였고 2002년 친일파 명단에 등재됩니다.</div> <div> </div> <div>그를 정리해보면 말그대로 조선의 참혹한 현실을 보고 신념을 친일로 잡은, 친일이 아닌 '일본' 그 자체를 꿈꾼 사람이고</div> <div> </div> <div>조선인의 민족성을 아주 쓰레기로 보면서, 이 민족은 다른 민족의 치하에 놓일수 밖에 없는 운명이며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는 국가였다면서 개선가능성을 부정해버립니다.</div> <div> </div> <div>아예 조선을 일본으로 만들어야 가능하다 하였으나, 법에 어긋나거나 가혹한 일본인들은 혼쭐을 내는 등, 자신만의 "일본적 지향점"을 가진 사람이였습니다.</div> <div> </div> <div>즉, '신념적 친일파'였던, 조선을 아예 일본으로 바꾸자고 했던 사람이였습니다.</div> <div> </div> <div>이와는 별개로 술을 좋아하여 맥주 수십병을 마시는 모습을 보이고, 또 매우 성실하여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되기 전까지 일기를 썼다고 합니다.</div> <div> </div> <div> </div> <div><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10/1477118245964ebeebbf2b441c9e9d6276724a2aa6__mn623128__w300__h404__f38332__Ym201610.jpg" width="300" height="404" alt="다운로드 (3).jpg" style="border:none;" filesize="38332"></div> <div> </div> <div>다음은 알만한 사람은 아는 윤치호입니다. 박중양보다는 7년 연상이고요.</div> <div> </div> <div>이 사람도 박중양과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일본에 유학가서 학습하고 서양의 문물 등을 배워 개화파가 됩니다.</div> <div> </div> <div>특기할만한 점은 이 사람이 영어에 매우 능해서, 단순 암기가 아니라 영어를 이해할 정도의 수준으로, 국어에는 없는 말까지 영어로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div> <div> </div> <div>다만 박중양과 차이점은 갑신정변에 가까이서 보았고 참여는 하지 않았지만 김옥균 등 개화파와 가깝다는 이유로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유학가게 됩니다.</div> <div> </div> <div>가기 전에 상해에 들려 그곳에서 선교사들에게 감화되어 개신교로 개종하고 그들에 대한 지식을 얻으면서 깨닫기를 "조선이 지금의 야만적 상태에 머무느니 차라리 문명국 식민지가 되는 것이 낫다."</div> <div> </div> <div>미국에 유학을 가서는 그의 천재적인 언어실력으로 대학교에 들어가 서구 사상은 물론, 신학-언어학-자연과학 등등까지 섭렵합니다.</div> <div> </div> <div>우수한 성적이였는지, 대학원에서 "전액장학금을 줄테니 와라"라고 하였으나 조국을 위해 할 일이 있다며 거절, 조선으로 다시 돌아옵니다.</div> <div> </div> <div>조선에 들어와 여러 부서의 자리를 얻었다가 여러 개화파 인사들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합니다. 회장까지 역임하는 등 주요인사였고 조선 인민의 계몽에 앞장서는 인물이였습니다.</div> <div> </div> <div>을미사변 직후에는 일본의 잔혹한 행태에 대해 비판하였으나 그와 별개로 민비에 대한 행위(동학난 진압, 친인척 인사)에 대해서는 꼬집습니다.</div> <div> </div> <div>독립협회 활동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노비해방, 의회의 필요성 등등 진보적인 의견들을 제출하다가 역사대로, 해산당합니다.</div> <div> </div> <div>이때 고종은 물론 친일파의 이완용과 친러파 조병식, 6조 대신들을 모두 비판합니다. 당연히 조정에 찍혔으니 지방의 직위를 얻고 생활하다가 러일전쟁 이후에 와서야 외무부로 불려갑니다.</div> <div> </div> <div>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완용을 또다시 비판하며 아예 정권에서 사퇴합니다.</div> <div> </div> <div>이전에 독립협회가 해산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민회, 대한자강회의 회장 등을 역임하며 조선 민중의 계몽을 꿈꾸다가 한일합방 이후 일제가 외무대신 직위를 주려고 하였고, 아버지가 일본남작이라 세습받아야 했지만 둘다 거절하고</div> <div> </div> <div>왕족과 고관들이 일본에 협력하는 것에 실망하고는 재야로 내려가서 조선의 패망은 부도덕한 민중과 관리들의 부정부패 등으로 빚어진 당연한 결과라며 사회진화론적 체계를 유지합니다.</div> <div> </div> <div>그러다가 105인 사건으로 끌려들어가고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고문, 회유 끝에 전향서를 쓰고 전향(?)합니다.</div> <div> </div> <div>기독교인답게 YMCA, 세브란스 재단 의사 등등에서 활동하고 독립운동과 무관하면서도, 독립운동가들을 면회하고 활동을 묵인하는 모습도 보입니다.</div> <div> </div> <div>총독부가 윤치호를 이용하려고 했으나, 그는 '강요된 애국심은 필요없다.'라며 협조를 거절하며 전향이 맞는건지 의문스러운 행태도 보입니다.</div> <div> </div> <div>그러면서도 독립운동가들이 3.1운동 서명요청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해줄 수 있는가?"라고 하지만 그는 다음 4가지 이유를 들어 거절하며 기대하지 말라고 합니다.</div> <div> </div> <div>'실제 활동에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div> <div><br></div> <div>'조선문제는 안건으로 상정될 가능성없다.'</div> <div><br></div> <div>'열강이 일본의 비위를 거스르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div> <div><br></div> <div>'미국이 조선을 독립시켜주겠다는 이유만으로 일본과 전쟁하지는 않을 것.'</div> <div> </div> <div>실제 3.1운동이 열리자 그는 "학생들을 앞세운 뒤, 도망친 인사들은 음모꾼"이라며 규탄하였지만 학생들의 용기에 대해 경탄심과 일제의 체포와 고문에 대한 소식을 듣고 일제에 대해 증오심도 품습니다.</div> <div> </div> <div>그러면서 "약자가 강자에 대해 무턱대고 대들면 강자의 노여움을 사서 약자 자신을 괴롭힌다."며 사회진화론적 사상에 입각한 담화문을 작성합니다.</div> <div> </div> <div>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임시정부활동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고 주요인사와 교분을 쌓았으나, 한번도 총독부-일제에게 발설하지 않았습니다.</div> <div> </div> <div>때마침 이승만의 독립청원 사건 등이 터지고 외교독립론에 대한 회의감을 강력하게 느끼고 실력양성론에 들어갑니다.</div> <div> </div> <div>많은 사람들이 토지를 매각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대는 경우를 보면서, "땅을 파는 것은, 그 땅의 식량,자원들을 일본에게 넘기는 것"이라며 매국행위라고 비난하였고 경제적 실력을 양성해야한다는 의견을 피력합니다.</div> <div> </div> <div>또한 한글보급교육을 진행하고 여러 학교에 기부금을 납부했으며 실업교육을 통해 "우리가 사용할 물건들은 우리가 만들수 있어야한다."며 자신의 자식들과 여러 학생들을 가르칩니다.</div> <div> </div> <div>그러면서 목장을 꾸리기 위해 인가를 요구하나 거절당하고, 일본인 교사에 대한 동맹휴학 사태 등이 빚어지자 일제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게됩니다.</div> <div> </div> <div>"일제가 조선을 발전시킨 것은 맞다. 또한 엘리트도 양성해주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기 일본을 위한 것이지 조선을 위한 것은 아니다."</div> <div> </div> <div>그러면서 지속적으로 민족의 경제적 실력양성을 위해서 다양한 산업과 교육에 앞장섭니다. 이로 인해 6.10만세운동때 배후로 의심받기도 합니다.</div> <div> </div> <div>또한 이상재 등이 죽자 독립운동가의 장례식을 주관하였고 신간회에 참여하고, 신간회가 내분에 빠지자 신우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흡수하려고 했으나 사회주의자들의 반발로 무산됩니다.</div> <div> </div> <div>그리고 이순신의 사당이 일본인에게 넘어가게 되자, 모금운동을 개최하여 돈을 모아 이순신 후손들의 빚을 다 갚고 남는 돈으로 주변 땅을 사들여 유적지를 보존하게 되었으나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힙니다.</div> <div> </div> <div>1930년대 총독부가 내선일체론을 내세우고 친일파들이 대아시아 운동을 외치자 이에 대해 비판하고, 최남선의 일선동조론도 비판합니다.</div> <div> </div> <div>또한 총독부에서 중추원 의원을 제안하였으나 거절하고 신사참배 요구도 신앙상 이유로 거절합니다.</div> <div> </div> <div>중일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는 육군특별지원병제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국민정신 총동원 조선연맹' 등의 단체에 참여를 거절하고</div> <div> </div> <div>안창호가 징역을 살자 보석을 요청하고 그의 병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병원비를 다 지원해줍니다. 물론 안창호는 고문후유증, 병세 악화로 사망하고 윤치호는 1주일 내내 통곡을 합니다.</div> <div> </div> <div>30년대까지, 그는 일본 왕족의 결혼식, 생일은 물론 덴노의 생일잔치에도 1번도 참석하지 않아서 총독부는 그를 추궁하고 미행합니다.</div> <div> </div> <div>그리고 일본에서 반미, 반영 활동을 강요하자 그는 거절하며 "마하트마 간디를 내버려둔 영국은 위대하다. 일본이었으면 30년 전에 죽였을 것"이라는 글을 일기에 남깁니다.</div> <div> </div> <div>40년대 들어서는 국사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창씨개명을 요구합니다. 그는 처음에 거절하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일본 남작이였으므로 친족에 친일파가 많았고</div> <div> </div> <div>종친회가 열리자, 자신이 항렬이 높은데도 사촌에게 회장자리를 양보하고 논쟁끝에 창씨개명이 종친회에서 결정되자 창씨개명을 하게 되었습니다.</div> <div> </div> <div>그는 '당국이 창씨개명을 결정한 이상 조선인들은 모두 창씨개명 당할 것. 그러하지 아니한 자들은 반일분자가 될텐데, 난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반일분자에 올릴 수가 없었다'며 일기에 글을 남깁니다.</div> <div> </div> <div>41년에 들어서는 오락가락하는 행태를 보입니다. 어떤 단체에는 참석하여 결의문을 낭독하고, 어떤 단체에는 아예 불참하는 모습을 보이고,</div> <div> </div> <div>그러던 중 이승만 밀사를 만나서 "미국과 일본의 전쟁이 임박했다. 한국은 독립한다."는 내용도 듣게됩니다. 실제로 진주만이 터지자, 그는 자신의 판단을 내립니다. "일본이 이길 가능성이 높다."</div> <div> </div> <div>이때부터는 일제의 활동에 협조하여 학도병 지원 위원회, 중추원 회의 등등에 꾸준히 참석하였고 이 공로로 일본의 귀족원 의원에 선임됩니다. 1945년에요.</div> <div> </div> <div>결국 일제는 패망하고 그는 친일파라며 엄청난 욕을 먹으며 괴한에게 암살시도까지 당하였고 그의 기념비들도 대거 파괴됩니다.</div> <div> </div> <div>그러면서 김구, 이승만, 미군정에 대해 아래 내용과 같은 편지를 보냅니다.</div> <div> </div> <div>"일본 신민으로서 '조선에 살아야했던' 우리들은 일본의 요구에 응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div> <div><br></div> <div>"조선의해방은 선물로 주어진 것이며 행운과도 같다"</div> <div><br></div> <div>"민중들의 무지와 당파간의 불화 속에서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div> <div><br></div> <div>"허세와 자만에 찬 애국자들이 일제를 몰아낸 것은 아니다." </div> <div> </div> <div>편지를 쓴지 얼마 안되서 뇌졸중이 발병하였고 결국 45년을 일기로 사망합니다. 사후 친일파 명단에 오르죠.</div> <div> </div> <div>그에 대해서 정리하자면, 냉혹한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현실주의입니다. 마지막 일본이 승리한다는 내용만 제외한다면,</div> <div><br></div> <div>파리강화회의 내용이라던가 청원독립 등은 맞아떨어졌습니다.</div> <div> </div> <div>완벽한 친일파라고도 보기 어려운 것이, 30년대까지 행적을 보면 친일파로 보기는 힘들고 오히려 독립운동가들과 자주 어울리고 고초를 겪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div> <div> </div> <div>전향서를 쓰고 나서도 실제 전향한 행적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력양성론과 일제의 일본인 비호에 대한 비판을 일삼고 찍혀나갈 정도였죠.</div> <div> </div> <div>다만, 외압이 아니라 "자기 판단으로 한 것"이라서, 판단에 의한 친일은 변명할 수도 없이 온전히 자기 책임이니깐요. 30년대 죽었으면 어쩌면 교과서에 실력양성론적 독립운동가로 남았을지도 모르죠.</div> <div> </div> <div>그의 친일을 생각해보면 '수단적 친일파'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민족의 안위와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필요한 친일을 하자는 입장이고 소극적 저항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div> <div> </div> <div>일제의 가혹한 통치를 불러들일 수 있으므로 적대적인 관계를 지양하고, 민족 내부의 실력을 양성하고 자립심을 기르자는 온건 민족주의자였습니다.</div> <div> </div> <div>독립운동이라는 것이 하는 사람으로는 엄청난 모험이죠. 저 시대에 태어났다고 가정하면 그런 모험을 통해 목숨을 건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었을겁니다.</div> <div> </div> <div>그 또한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의 용기에 대해 칭찬하고 독립운동가들과 교분을 쌓았으나,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였고 실제로도 연합국 덕택에 독립하였죠.</div> <div> </div> <div>따라서 그는 역량에 집중하였고, 교육, 식산흥업 등으로 대표되는 행적을 보였습니다. 독립의지가 아예 없다고 볼수 없는 것이, 신간회 등에 참여하고 독립운동가를 뒤로는 지원했습니다.</div> <div> </div> <div>안창호는 물론 양기탁을 보석시켰고(양기탁은 보석직후 만주로 도망쳐서, 윤치호는 찍힙니다.) 독립운동도 지원+묵인하고 일제에 대한 협조를 거의 않습니다.</div> <div> </div> <div>그가 입을 열었더라면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제명에 살지 못하고 죽었겠죠. 임시정부에서도 그를 신뢰하고 많은 사람들이 교분이 있었으니깐요.</div> <div> </div> <div>박중양은 조선민족이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한 반면에, 윤치호는 현재는 불가능하지만 민족성을 개선시키면 가능하다는 입장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div> <div> </div> <div>박중양은 아예 개선 자체를 포기했으니 언급조차 않았다만 6.25를 보았더라면 어떤 말을 했을지 궁금하긴 합니다.</div> <div> </div> <div>참고로 이완용을 엄청 싫어했습니다. 독립협회때 친일파로 변절한거부터 시작하여, 정권을 장악하여 횡포를 부린 것도 있으며, 유학생 감독관이였다가 이완용의 상소로 짤리고 한일합방때도 그의 행위를 비판하는 등 아예 경멸적 태도였습니다.</div> <div> </div> <div> </div> <div><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10/14771182450473a6567a554713b4e20e7883011977__mn623128__w225__h329__f28943__Ym201610.jpg" width="225" height="329" alt="다운로드 (4).jpg" style="border:none;" filesize="28943"></div> <div><br></div> <div> </div> <div>마지막은 이규완입니다. 이 사람도 개화파입니다. 박영효의 아래에서 배웠는데, 박영효랑 나이차이가 1살입니다.</div> <div> </div> <div>위 두사람은 빵빵하여 잘나갔던 사람이였다만 이규완은 집안이 불운하였고 박영효 집에 가서 출입하고 식객이 되었습니다. 몇번 하인들에게도 내쫓기고요.</div> <div> </div> <div>10대 중반까지 무학이었다만 박영효의 도움으로 글을 배우고 일본유학까지 갈 수 있게됩니다.</div> <div> </div> <div>다만 군사훈련쪽에 배우게 되는데, 말이 군사지 다른 지식도 함께 배웠으나 돈부족해서 귀국하게 됩니다. 물론 그동안 받은 군사훈련으로 병조소속 무관이 됩니다.</div> <div> </div> <div>그맘때쯤 갑신정변이 예정됩니다. 그런데 김옥균과 박영효는 이규완을 믿지 못하다가 서재필이 시험해서 통과, 갑신정변에 참여하게 됩니다.</div> <div> </div> <div>무관답게, 민영익을 죽이려고 했으나 칼에 왼쪽귀가 베였고 총을 쏘았으나 피해 살아 도망쳤으나 나머지 남아있던 사람들은 대거 죽게 됩니다.</div> <div> </div> <div>아시다시피 3일천하가 되서 망명하게 되는데 망명국가는 미국이 됩니다. </div> <div> </div> <div>미국에 가서 충격(?)을 받게 되는데,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이 아랫사람들을 신분과 나이에 따라 차별해서 시중을 들게 시키고 수족부리듯이 다루려고 한걸 보게됩니다.</div> <div> </div> <div>그러자 분노해서 "이런 짓거리를 하면서 어찌 조선의 폐단을 바로잡겠는가?"라고 일갈하여 김옥균 등은 진심으로 사죄하고 각자가 자기일을 스스로 하도록 생활합니다.</div> <div> </div> <div>나중에 일본으로 가서 박영효와 지내고 이등박문과도 친교를 맺고, 박영효 등 개화파들을 죽이려고 한 자객을 잡기도 합니다.</div> <div> </div> <div>청일전쟁이 시작되고 김홍집 내각이 설치되자 박영효와 함께 조선으로 귀국해서 개화파 암살을 시도했던 왕족들을 '대원군이 보는 앞에서' 체포해갑니다.</div> <div> </div> <div>그러다가 또 역사에서 아시다시피 박영효가 실각하자 그를 따라 일본으로 갑니다. 독립협회가 생긴 이후, 박영효가 "죽을지도 모른다"라며 만류했으나 독립협회 지원을 위해 귀국하였고</div> <div> </div> <div>병크(?)를 저지르는데 '고종 폐위와 공화국 건설을 위한 음모'를 세우고 이승만 등 동지들을 끌어모으다가 적발, 체포명령이 떨어지자 3번째 망명을 일본으로 떠납니다.</div> <div> </div> <div>점차 시간이 짧아지는건지, 1차망명때는 10년, 2차 망명때는 3년이 걸렸는데 3차망명은 1년만에 귀국합니다(1900년)</div> <div> </div> <div>이번에는 공화국이 아닌 '고종 및 순종 폐위하고 이강을 국왕으로 추대'하는 계획을 내세웠으나 또 발각되었고 처벌당할 위기에 놓이자 이등박문이 나서서 고종과 쇼부(?)를 봅니다.</div> <div> </div> <div>이등박문과 친교때문인지 별을 달고 육군소장이 됩니다. 그리고 강원도 관찰사에 임명되는데 처음에는 "내가 문맹이라 맡을 수 없다" 거절하지만 권유끝에 수락하게 됩니다.</div> <div> </div> <div>재직시절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항상 자신의 아랫사람들에게 자리 청소 등을 강조하며 노동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깨닫게 만드는데 앞장섰습니다.</div> <div> </div> <div>업무시간이 끝나면 직접 산에 올라 땔감용 나무를 캤으며, 양복 한벌과 신발 1켤레로 30년을 썼으며, 기차는 무조건 3등석만 이용하였으며, 그렇게 아껴쓴 출장비는 효자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사용했습니다.</div> <div> </div> <div>또한 관찰사 신분인데도 '이웃의 초상'을 도와주기 위해 직접 상여를 메고, 자신이 이웃의 접대를 받으면 그 사람의 하룻일(모내기,거름뿌리기)을 직접 도와주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div> <div> </div> <div>주색잡기를 매우 매우 싫어했는데, 길걷다가 도박하는 사람들을 보면 판을 뒤엎어버리고 양반들이 기생집에서 논다는 소문을 접하면 '거름만지는 몸' 그대로 가서 흥을 깼다고 합니다.</div> <div>집무실 곳곳에 어망틀을 놓아 틈틈히 매듭을 맺으며, 자기 자식과 며느리에게도 "화가 나거나 잡념이 있으면, 어망을 짜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div> <div> </div> <div>그러다가 한일합방이 되는데, 그는 "게으름, 탐욕, 부패함으로 인해 벌어질 일이였다"고 생각하였고, 강원도 도장관의 직위로 발령받습니다.</div> <div> </div> <div>그 직위에 맞게 총독부에서 남작 직위를 부여하였으나 거절하였고 얼마 뒤에는 함경도로 발령받게 됩니다.</div> <div> </div> <div>물론 거기서도 자신이 직접 푸세식 화장실의 분뇨를 거름으로 사용하여 도청 화단에 뿌리고, 입고 있는 옷은 거의 넝마수준에 이르렀다고 하며</div> <div> </div> <div>음식을 먹으면 쌀 한톨도 안남기는 모습을 보이자, 아랫사람들이 "인색하다, 궁상맞다"라고 하자 "그러다가 패가망신을 하게 된다"며 일갈하게 됩니다.</div> <div> </div> <div>물론 독립운동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3.1운동때 독립운동에 참여하지말고 평상시와 같이 노동에 열중하라는 경고문을 붙입니다.</div> <div> </div> <div>1924년에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중추원 제의도 거절하며 자신이 꿈꾸던 식산흥업 정책을 펼치기 시작합니다.</div> <div> </div> <div>황무지와 간석지들을 사들여 그것을 손수 개간하였고, 자신이 축적한 부를 통해서 학교를 건설하였으며 여러 학교의 가난한 학생들 교육자금으로 쓰게 만들었습니다.</div> <div> </div> <div>또한 신간회 활동에도 참여하였고, 물산장려회 및 국산품 애용운동에 참여하여 회장자리에 올랐고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짓고, 물레를 돌려 옷까지 지어 입는 등의 모습을 보입니다.</div> <div> </div> <div>농업뿐만 아니라 석탄산업에도 관심이 많아 한성시탄주식회사 설립에도 참여하였으며 상업에도 관심이 많아 상공인협회 등에 참여합니다.</div> <div> </div> <div>양성평등에도 관심이 있어서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단군 이래 악습이며 이에 대해 비판해야 한다."며 자신의 직원으로 여성을 뽑기도 합니다.</div> <div> </div> <div>그러나 중추원이랑 남작위를 거절한 건으로 인해 총독부는 그를 경계하였고 전쟁 독려 칼럼을 쓸 것을 요구하지만 문맹이라는 핑계로 거절합니다.</div> <div> </div> <div>합병 직후부터 그는 꾸준하게 조선인 참정권 및 자치권 운동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3.1운동 이전부터 이루어진 것이며, 문화통치 수단이 아닌 발전하고 개화하면 조선인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그 권리를 누려야한다는 소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div> <div> </div> <div>이때 "조선인은 게으른 민족이 아니며 신뢰할 수 있는 문명인들 중 하나이다."라며 총독부에게 역설하였고, 능력이 된다면 일본의 국회의원 심지어 국무대신(현재의 장관)도 해야된다고 하였습니다.</div> <div> </div> <div>중일전쟁이 터지자, 자원해간 '조선인 병사의 원호와 성금, 위문품'을 위해 기부하는 모습도 보입니다.</div> <div> </div> <div>나중에 총독부 등에서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비행기헌납운동 등등'에 대해 참여할 것을 요구하였지만 끝까지 거절하고 '방공호 파기운동'도 지속적으로 거절합니다.</div> <div> </div> <div>해방이 된 이후로는 "해방은 우리 손으로 만든게 아니다. 그러나 다시는 권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실력을 기르고 배우기를 주저하지 말아야하며, 노동을 중요시 여겨야 한다."는 말을남깁니다.</div> <div> </div> <div>해방 직후에 강원도지사 직을 임시로 역임하고 비상국민회의 ,민주의원 등에 참여하다가 중풍이 악화되어 쓰러집니다.</div> <div> </div> <div>죽기 전에도 어망들을 꾸준히 짰으며, 자신의 집 주변에다가 과실나무들을 심어놓아 배고픈 이들이 줏어먹도록 용인하라고 했습니다.</div> <div> </div> <div>자신의 장례식에 대해 "내가 심은 나무로 관을 짜고 조의금은 관을 살 필요가 없으니 5원(본래 10원)으로 하라. 그 이상 넘게 받지 말도록"이라 말을 남깁니다.</div> <div> </div> <div>그러면서 사치풍조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내비치며 외모,재산,지위,학벌 등에 연여하지 말고 초연할 것을 자식들에게 신신당부합니다.</div> <div> </div> <div>이후 중풍과 노환에 등창까지 더해져 46년에 사망하게 되는데, 이때 장례식에 이승만,김구의 조문단과 강원도지사 및 지방의회 의장, 강원도 군정장관 등등까지 참여할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왔고</div> <div> </div> <div>2002년 친일파 명단에 등재되었고 2007 08년에도 마찬가지로 등재됩니다.</div> <div> </div> <div>그의 사상은 노동에 대한 예찬입니다. 항상 거지들에게 자선을 베풀때도, 노동량을 설정해주고 달성하지 못하면 내보내주지 않았으며</div> <div> </div> <div>항상 짚신, 어망 등을 꾸준히 만들였고 가족들과 함께 밭과 과수원 등을 운영하며 항상 모범을 보이고 식산흥업 정책에도 꾸준히 참여합니다.</div> <div> </div> <div>근검절약도 중요하다며 위에서 서술했듯, 항상 헌옷차림으로 돌아다녔고 짚신을 매번 만들었으며 뜯어진 옷은 직접 바느질로 꿰어 입었습니다.</div> <div> </div> <div>또한 노동을 천히 여기는 것이 민족고질병이라고 개탄하여 글공부보다 사람답게 만드는 학문을 가르쳐야하며 실용적인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div> <div> </div> <div>거기에 더해 유흥, 도박 등에 대해 비판적이였으며, 청탁에 대해서 기피하며 '인맥을 이용한 특혜는 조선인의 잘못된 습관'으로 보았습니다.</div> <div> </div> <div>친일행적을 서술해보면 따로 항목에는 없습니다. 그의 행적은 정말로 전부가 '조선인을 위한 것'이었으며 전쟁지원 또한 '조선인 병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div> <div> </div> <div>행정업무 등에서는 일제에 협력했다고 봐야겠으나 위키 등을 뒤져봐도 친일행적이 나오는게 없습니다. 애초에 윤치호나 박중양 같이 임팩트 있는 사람도 아니고</div> <div> </div> <div>죽었을때, 주변인들이 애통해하고 강원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을 보면 개인적 탐욕이나 잔학한 행위는 저지르지 아니하였으며</div> <div> </div> <div>박중양이 욕을 쳐먹고 윤치호도 피습당했는데 말짱하다는 점으로 보면 친일파 중에서도 '최선의 친일파'가 아니였는가 싶습니다.</div> <div> </div> <div>그를 정리하자면 '현실적 친일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한국은 일본에 의해 병합되었고 일본이 열강이라는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고</div> <div> </div> <div>거기에서 최선의 상태인, 참정권 및 자치권을 획득하고 온 조선인들이 권리를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div> <div> </div> <div>위의 박중양, 윤치호처럼 성실하였으며, 어쩌면 그보다 더 성실하였을겁니다.</div> <div> </div> <div> </div> <div>-----</div> <div> </div> <div> </div> <div>저 사람 모두가 민족보다 자신만을 생각하였는지는 모르겟습니다. </div> <div> </div> <div>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다들 '일본이 선의의 제국'이라고 오판한 것이겠죠.</div> <div> </div> <div>그나마 이것을 알고있었던 사람이 윤치호였다만 마지막에서 갈등 끝에 변절을 택했으므로 오판을 하지 않았다고 볼수는 없을겁니다. </div> <div> </div> <div>어떻게 해석해보면, 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목숨을 거는게 쉽지 않고 그나마 조선인들을 편에 서서 보호해주어 나았다'라고 볼수도 있을 것이고</div> <div> </div> <div>다른 한편으로는 '저들은 결국 현실과 타협하였고 독립운동을 했으면 더 나아졌을 것'이라는 평가도 가능할 겁니다.</div> <div> </div> <div>우리가 아는 '표준형 친일파'(=이완용)와는 다른 조금 색다른 사람들이 있어서 여러모로 찾아보고 한번 써보았습니다.</div> <div> </div> <div>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div> <div><br></div> <div><br></div> <div> <div>위의 두 인물을 알았는데 밑에 마지막 이규완이라는 인물은 처음 들어보네요. 예전에 청렴결백하고 정의로운(?) 친일파란 인물을 한 번 상상해봤는데 이 인물이 얼추 거기에 들어맞는 거 같네요. 뭐, 이 인물 외에도 개인적으로 청렴결백한 친일파 중에는 홍사익이라는 인물도 있지만 이 인물은 조선이란 나라를 경험한 적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인물이라 이규완과는 또 다른 케이스 같네요.</div> <div><br></div> <div>뭐, 여하튼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글인 거 같네요. </div></div> <div><br></div>
    출처 http://www.dogdrip.net/10033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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