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건강상 문제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백조로 지낼 때의 일이다. </div> <div>병원에 한달 동안 입원해 있다가 퇴원해 하릴없이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div> <div>지방에 사는 사촌언니에게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div> <div>사촌언니는 30대 후반에 아이가 둘 있는 워킹맘이다. </div> <div>언니가 직장에 가 있는 동안 아이들은 이모가 돌봐주셨다 한다. </div> <div>근데 얼마전 이모가 갑상선암으로 쓰러지셨다 했다. </div> <div>애들이 어린이집을 간다해도 언니와 형부 일이 너무 늦게 끝나 그때까지 돌봐 줄 사람이 없다 했다. </div> <div>마침 내가 백조고 하니 부탁하려 전화한 거였다. </div> <div>100만원씩 용돈으로 받으면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거니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div> <div>나는 바로 짐을 싸서 다음날 언니의 집으로 내려갔다. </div> <div><br>언니네 동네는 말 그대로 그냥 촌동네였다. </div> <div>드문 드문 음식점도 있고 술집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론 한산한 느낌이었다. </div> <div>집에 들어서자 언니와 형부, 조카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div> <div>큰애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때 봤는데 벌써 5살이라고 하니 신기했다. </div> <div>그런데 거실 구석에서 등치큰 남자가 쪼그리고 앉아 쳐다보고 있었다. </div> <div>얼마 전에 군대에서 전역한 사촌동생 진현이었다. </div> <div>예전 모습과 너무 달라져서 처음엔 못 알아봤다. </div> <div>어릴 땐 말도 많고 얼굴도 핸썸한 느낌이었는데 </div> <div>살이 많이 찌기도 했고 어딘가 모르게 음침해 진 것 같았다. </div> <div>진현은 나를 보고 그저 고개만 까딱거리고 말았다. </div> <div> </div> <div><br>아침에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div> <div>청소, 빨래 좀 해놓고 애들 오면 간식도 만들어 주었다. </div> <div>언니는 9시쯤 되서 집에 돌아왔고 </div> <div>형부는 12시 전에 들어온 적이 드물었다. </div> <div>진현이는 읍내에 있는 중국집에서 배달 알바를 하고 있다했다. </div> <div>보통 7시쯤이면 집에 왔는데 더 일찍 들어올 때도 있었다. </div> <div>처음엔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서로 어색했는데 </div> <div>며칠 지나자 조금씩 예전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div> <div>언니랑 형부 오기 전까지 둘이 집에서 술도 마시고 <br>언니가 일찍 오면 오토바이도 타고 읍내에 가기도 하며<br>진현과 점점 친해졌다. </div> <div> </div> <div><br>진현은 중고등학교때 심하게 왕따를 당했다 한다.</div> <div>일진같은 애들이 진현이를 보기만 하면 죽일듯 때리고 돈을 빼앗았다 한다.</div> <div>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도망치듯 누나 집으로 오게 되었고 얼마 안 있어 군대를 갔다한다. </div> <div>이제야 진현이 어릴 때와 달라진 이유를 알았다. </div> <div>진현은 자신의 과거 얘기를 털어놓은 이후로 나에게 많이 의지했다.</div> <div>연애상담이나 누나 험담, 형부 험담, 오늘 있었던 일..</div> <div>뭐든 나에게 다 얘기했다. </div> <div> </div> <div><br>어느 날 tv를 보다 뜬금없이 진현이 이상한 얘기를 했다. </div> <div><br>"누나, 나는 살인을 하고싶어.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을 어떻게 죽일까, 어떻게하면 더 잔인하게 죽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 들어."</div> <div><br>나는 진현이 장난치는 줄 알고 너가 영화를 너무 봤구나~ 하고 말았다. </div> <div>그런데 뒤에 이어지는 진현이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div> <div><br>"나는 누나가 우리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딱 그 생각만 들었어. 죽이고 싶다고."</div> <div><br>그 말을 하는 진현의 눈빛에 초점이 없었다. </div> <div>나는 말없이 침만 꿀꺽, 꿀꺽 삼켰다. </div> <div>진현과 나는 한참을 말 없이 앉아있었다. </div> <div>진현의 얼굴은 현관쪽을 향해있었다. </div> <div>현관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멍때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div> <div>그러다 갑자기 진현이 벌떡 일어나 쌍욕을 해댔다. </div> <div><br>"씨발, 죽어, 다 죽으라고"</div> <div><br>진현은 허공에 대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마구 해댔다. </div> <div>나는 진현을 말리지도 못하고 그저 얼어있었다. </div> <div>진현은 마지막으로 씨발 하며 벽을 주먹으로 세게 내리쳤다. </div> <div>그러곤 씩씩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밤새 나오지 않았다. </div> <div><br>다음날이 되자 진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대했다. </div> <div>고민하다 어제 왜 그랬냐 물었다. </div> <div>진현은 전혀 기억 안 난다는 듯 뭐가? 하고 말았다. </div> <div>진현이 없을 때 언니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했다.<br>언니는 내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div> <div><br>진현은 군대에 다녀온 뒤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한다.<br>학창시절 왕따를 당했던 게 군대에서도 이어졌나보다.<br>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현이 잘 얘기해 주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지만<br>전역 이후 진현은 눈에 띄게 이상해졌다 한다.<br>벽을 보고 혼자 깔깔 거리기도 하고 <br>갑자기 욕설을 퍼붓다가 뭔가에 놀란 듯 벌벌 떨기도 했다고 한다.<br>치료를 받다가 진현이 병원 가기를 거부해서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br>그래도 내가 오고나서 진현이 많이 밝아져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br>다시 병세가 나타났다니 언니는 나에게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 했다.</div> <div>언니는 그나마 진현이 많이 따르고 의지하는 게 나이니 잘 보듬어 달라했다. <br>나는 그 날 이후 진현에게 더욱 신경 써서 잘 해주었다.<br>진현도 한동안은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br>한동안은 말이다.</div> <div> </div> <div> </div> <div>언니는 회식이 있어 늦는다 하고 형부는 출장을 가 며칠동안 못 들어온다 했다. <br>비가 와서 그런지 애들도 그 날따라 일찍 잠들었다.<br>진현과 나는 편의점에서 소주와 막걸리를 사와 술판을 벌였다.<br>술이 거하게 취하자 나도 속에 있던 말이 필터링 없이 술술 나왔다.<br>사람을 죽이고 싶다느니 그런 말을 왜 하냐, 내가 그 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느냐 하면서...<br>진현은 자기는 정말 기억이 안 난다며 거짓말 하지 말라고 웃었다. </div> <div> </div> <div> </div> <div>술기운에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떴다. <br>TV가 시끄럽게 틀어져 있고 진현은 내 옆에 앉아있었다. <br>가만히 앉아 화장실 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br>진현의 눈엔 초점이 없었다. <br>화장실을 보는 건지, 다른 무언가를 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br>안 자고 뭐하냐고 내가 묻자 <br>진현의 눈이 갑자기 뒤집혔다. <br>그러곤 알 수 없는 말들을 빠르게 중얼거렸다. <br>난 정신차리라며 진현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br>그러자 진현이 고개를 내 쪽으로 휙 돌려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br>힘이 어찌나 센지 도무지 뿌리칠 수가 없었다. </div> <div> </div> <div>"살..려..줘.."</div> <div> </div> <div>숨이 막혀 끅끅대는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br>진현은 더욱 세게 내 목을 조여왔다. <br>이제 죽는구나 싶었다. <br>내가 이 집에 왜 왔을까 후회가 되었다. <br>서울에 있는 엄마 생각도 났다. <br>엄마 생각을 하니 눈물이 흘렀다. <br>내 눈물이 내 목을 옥죄고 있는 진현의 손등에 닿았다. <br>진현의 손에 힘이 풀렸다. <br>난 그때를 틈 타 진현을 뿌리치고 방으로 도망쳤다. <br>거실에서 진현이 씩씩거리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div> <div> </div> <div> </div> <div>나는 바로 짐을 쌌다. <br>새벽에 들어온 언니에게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하고 <br>아침이 되자마자 서울로 올라왔다. </div> <div> </div> <div> </div> <div>진현이 언니에게 자신이 한 짓에대해 들은 모양인지 <br>계속 카톡으로 사과를 했다. <br>진현의 말로는.. <br>술을 먹고 내가 잠들어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br>화장실쪽에서 얼굴이 뭉개져 있는 여자가 자신을 계속 쳐다보았다 한다. <br>그래서 자기도 같이 노려보았는데 <br>갑자기 그 여자가 달려들어 자기 어깨를 잡았다고... <br>그 이후엔 기억이 없다고 한다. </div> <div> </div> <div> </div> <div>그 사건 이후 가족들은 진현을 정신병원에 보내야 하나, <br>무당을 불러 굿이라고 해야하나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br>진현이 병원은 심하게 거부해서 진현의 뜻에따라<br>지금 어느 절에 들어가 수양하고 있다고 한다. <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