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말은 편안하게 할께요. 이전거 읽어 보니, 뭐 그냥 내용 적힌 거고, 혼자만 공부하는 거지 게시판에 올리는데,</p><p><br></p><p>다른 사람도 읽기 편하게 해야 할 것 같아서 스타일을 바꾸려고 노력해볼께요.</p><p><br></p><p>어제 신라 내용 보충</p><p><br></p><p>어제 내용을 보면 신라의 증훙을 이끈 지증왕과 법흥왕까지만 설명이 되어 있고,</p><p><br></p><p>신라의 전성기를 이끈 진흥왕에 대해서 언급이 없었는데, 동영상 강의가 거기서 끝나서 지금 첨부하겠습니다.</p><p><br></p><p>진흥왕은 7C에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어낸 왕으로, 신라로서는 처음으로 한성을 차지 했습니다.</p><p><br></p><p>어린 나이에 특히 국가의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화랑도라는 어린 인재들의 모임을 국가조직으로 개편하였고,</p><p><br></p><p>법흥왕때 받아들인 불교를 정비하였습니다.</p><p><br></p><p>또한, 이전에 언급되었던, 백제의 성왕ㅓ과 나제 동맹을 맞어 서울을 차지하였는데, 백제를 배신하고</p><p><br></p><p>서울을 백제로부터 뺏었습니다.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을 죽이고 승리하여 나제 동맹이 파기 되었습니다.</p><p><br></p><p>진흥왕은 이 외에도 정복군주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대가야를 멸망 시키고, 서로는 백제를 압박하고 북으로는 고구려를 압박했습니다.</p><p><br></p><p>이것에 관련된 유물로는 북한산비, 단양적성비, 순수비 등이 존재합니다.</p><p><br></p><p>특히, 북한산비는 단지 서울을 차지했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였고, 중국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된 점에도 의의가 있습니다.</p><p><br></p><p>--------------------------------</p><p><br></p><p>삼국의 대외 관계</p><p><br></p><p>이전까지 공부했던 삼국의 대외관계를 간략히 정리해 보면</p><p><br></p><p>4세기 경에는 중국이 북으로는 전연, 남으로는 동진으로 분열이 되어있었고, 백제가 근초고왕에 의해서 전성기를 맞이 했을 때로</p><p><br></p><p>백제가 고구려와 신라를 압박하고, 중국의 동진과 왜와 친밀 왜교를 하였으며, 왜와의 교류증거로는 칠지도가 있다.</p><p><br></p><p>'화살표' : 공격, '-' : 친밀</p><p><br></p><p>전연 → 고구려 - 신라</p><p> ↑ ↗</p><p>동진 - 백제 - 왜</p><p><br></p><p>백제와 일본과의 관계 유물 : 칠지도</p><p>고구려와 신라와의 관계 유물 : 광개토비, 호우명그륵(4C 후반)</p><p><br></p><p>5세기 경에는 고구려의 전성기로 장수왕의 외교정책으로 고구려는 중국과 친밀 그 외 백제, 신라와는 적대적이었습니다.</p><p><br></p><p>북조 - 고구려 → 신라</p><p> / ↓ /</p><p>남조 - 백제 - 왜</p><p><br></p><p>6세기 경에는 신라의 전성기로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압박하였습니니다. 6세기 후기에는 중국이 통일을 하면서 한반도의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p><p>한반도에 위기는 고구려가 막아내고 후에 통일 신라 시대에는 신라가 당나라를 몰아내는데 이에 관련해서는 뒤이어 하겠습니다.</p><p>북조 - 고구려 ← 신라</p><p> ㅣ ↙</p><p>남조 - 백제 - 왜</p><p><br></p><p>고구려와 신라와의 관계 유물 : 순수비</p><p>남조와 백제와의 관계 유물 : 양직공도, 무령왕릉</p><p><br></p><p><br></p><p><br></p><p>삼국의 통치체제에 관련하여 넘어가겠습니다. 삼국의 통치체제는 말로 쓰는 것보다 적은게 훨씬 나은거 같아 사진으로 올렸어요.</p><p><br></p><p><br></p><p style="text-align: 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2/1dd0d2290a4510b548681b42275d132c.jpg" class="txc-image" style="clear:none;float:none;" /></p><p><br></p><p><br></p><p>여기서 중요시 해야 하는게 3국의 귀족회의인 제가회의, 정사암회의, 화백회의와, 지금과는 다르게 각 지방이 하나의 행정조직만이 아니라,</p><p><br></p><p>군사조직으로서의 역할도 했다는 점, 또한 파견된 지방관은 곧 지휘관인 점입니다.</p><p><br></p><p>그리고 특수 행정구역은 상업, 농업 이런게 아닌, 국경지역의 군사적인 이유로 특수하게 나누어 놓은 행정구역입니다.</p><p><br></p><p><br></p><p>삼국의 대외항쟁(백제, 고구려의 멸망)</p><p><br></p><p>이제부터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 했던, 백제와 특히 고구려의 멸망에 대해서 진행하겠습니다.</p><p><br></p><p>백제 고구려 두 국가가 멸망한 이 7세기 경에는 특별한 외교정책이 있었는데, 가로로는 신라와 당 사이의 나당연합,</p><p><br></p><p>남북으로는 돌궐, 고구려, 백제, 일본의 연합니 있었습니다.</p><p><br></p><p>이러한 연합이 결성되고 신라에 의해서 삼국이 통일 되는 때 까지, 시간의 순서에 따라 6장면으로 설명이 있는데, 이에 관에서 차례대로</p><p><br></p><p>설명하겠습니다.</p><p><br></p><p>1. 나당연합의 결성</p><p>진흥왕에 의해서 백제의 성왕이 전사하고, 백제가 신라에게 칼을 갈고 있는 7C 초에는 신라는 선덕 여왕, 백제는 의자왕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p><p><br></p><p>의자왕은 우리가 알 고 있는 만큼 무능한 왕이 아니라 상당히 유능한 왕으로서 신라를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신라는 버티기 어려워서</p><p><br></p><p>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고구려에 김춘추가 사신으로 보내졌지만, 고구려의 연개소문에 의해서 거절당하고 당나라로 넘어가게 됩니다.</p><p><br></p><p>당나라는 이전에 수나라가 을지문덕에 의해서 그리고 당나라가 안시성 전투에서 패해서, 고구려를 만만히 보지는 못하는 상황에서</p><p><br></p><p>신라에서 동맹 제의가 들어와서 모종의 협약을 맺고 동맹을 맺습니다.</p><p><br></p><p>2. 백제의 멸망.</p><p>신라와 당나라는 엽합을 맺어 백제를 압박해 들어갔고 백제는 결국 황산벌전투(계백)에서 패배하여 660년에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p><p><br></p><p>멸망 이후 흑치산치, 복신, 도침과 같은 몇몇 세력이 백제의 부흥을 위해 힘을 쓰지만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p><p><br></p><p>또한, 일본도 백제와 계속하여 친밀한 외교정책을 펴온 나라로서, 후에 백제 부흥을 위해 지원하였지만, 백강전투에서 부흥을 이루지 못하고</p><p><br></p><p>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p><p><br></p><p>3. 고구려의 멸망.</p><p>뚜둥,, 고구려가 멸망하였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은 나당 연합국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멸망되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 중국이</p><p><br></p><p>통일 왕조를 이루고 난 후에 중국의 한반도 침공을 온몸을 다해 방어하고 국력이 쇠하여 멸망에 이르렀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p><p><br></p><p>수나라의 침공을 을지문덕 장국이 살수대첩을 통해 막아내고 이 이후에 연개소문의 주도하에 천리장성을 축조하였습니다.</p><p><br></p><p>이후에 중국의 당나라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한 번더 침공해 오는데 이때도 안시성 전투를 통해서 막아냅니다.</p><p><br></p><p>하지만,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을 하고, 두 국가가 침공해 오자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의 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ㅜㅠ</p><p><br></p><p>고구려도 멸망이후, 안승, 고연무, 검모잠 등이 부흥운동을 하였지만,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부흥을 하지 못하였습니다.</p><p><br></p><p>4. 당나라의 욕망</p><p>백제, 고구려가 모두 멸망을 하고, 바야흐로 신라가 한반도 내에서 통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닌 당나라의 욕망이 남아 있었습니다.</p><p><br></p><p>중국세력은 통일이 되었을 때 한반도에 대한 야욕을 가지고 있었고, 큰 걸림돌인 고구려가 멸망하자, 평양에 안동도호부, 웅진에 웅진도독부, 경주에 계림도독부를 세워</p><p><br></p><p>한반도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었습니다.</p><p><br></p><p>5. 나당전쟁</p><p>신라도 당나라의 야욕에 참지 못하고,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기 위해서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p><p><br></p><p>나당 전쟁 중에 메소성 전투와 기벌포전투를 통해서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 외부로 몰아내었고, 평양의 안동도호부를 저 멀리 요하지방으로</p><p><br></p><p>내쫓았습니다.</p><p><br></p><p>6. 신라에 의한 통일</p><p>당나라를 한반도 내에서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지만, 어느정도 밀어내고, 대동강에서부터 원산만까지를 경계로 하는 통일 신라를 이뤄냈습니다.</p><p><br></p><p>-------------------</p><p><br></p><p>이번엔, 좀 스토리 있게 쓰려고 했는데, 아직도 많이 미흡하네요..</p><p><br></p><p>차차 고쳐나가면서, 좀 더 다른 사람도 읽기 좋게 바꾸겠습니다.</p><p><br></p><p><br></p><p style="text-align: 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2/53a2e2ca441b42c4790e1ffe71069399.jpg" class="txc-image" style="clear:none;float:none;" /></p><p><br></p><p style="text-align: 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302/6742c40531c23517fc91b528fb6ed86f.jpg" class="txc-image" style="clear:none;float:none;" /></p><p><br></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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