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인조가 반정에 성공해서 왕이 되지 못했거나 <div><br></div> <div>인조가 광해군보다 훨씬 빛나는 정치를 펼쳤더라면 말입니다.</div> <div><br></div> <div>광해군에 대해 칭송하는 그 어떠한 역사담론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div> <div><br></div> <div>아마도 그냥 그저 그런왕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어요. </div> <div><br></div> <div>사실 광해군의 이미지가 폭군인데</div> <div><br></div> <div>폭군인데도 불구하고 사실상 그가 맘대로 뭘 어찌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던 왕입니다.</div> <div><br></div> <div>대북에 의해 좌지우지당하면서 욕은 욕대로 처 먹어가면서도 대북을 제어하지를 못했던 왕입니다.</div> <div><br></div> <div>그는 즉위초 부터 왕위에 대한 정통성 시비에 휩싸여 이 문제때문에 줄곧 전전긍긍해야 했던 왕이죠.</div> <div><br></div> <div>이 문제에 코 꿰서 명나라한테도 끌려다녔고, 대북에 의해 또 끌려다녔죠. 그러면서도 자신을 성심으로 보위해 줄 수 있는 친위세력은 또 하나두 만들어내지도 못한 왕이었죠. </div> <div><br></div> <div>오죽했으면 반정이 일어난 날, 그의 치세에 정권을 전단했던 권신 이이첨의 짓이냐구 물을 정도였죠. </div> <div><br></div> <div>이러니 결국 반정당한 거죠.</div> <div><br></div> <div>궁궐 덕후라는 평이거나 이런 평을 들으면서 악정을 펼친 왕으로 비판당하지만</div> <div><br></div> <div>그렇다고 선정을 베풀 수 있는 여건도 없다 봐야 할 겁니다.</div> <div><br></div> <div>그는 항상 누군가 자신의 보위를 빼앗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았고, 그때문에 아무도 믿지를 못했을 뿐더러, 소북 역시 그를 이용해서 정권을 독점하려고 할 뿐, 진정으로 종묘사직과 백성을 위해 헌신하려는 자들은 절대 아니었죠.</div> <div><br></div> <div>북인의 원로인 정인홍이 왜 직접 전면에 나서 국정을 바로잡으려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입니다. </div> <div><br></div> <div>결국 그도 반정후 같은 북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령의 나이에 참수당하고 말죠. 이게 정인홍의 한계인지 참...</div> <div><br></div> <div>이렇게 보면 중립외교의 달인이니 뭐니 이런 평도 어느 정도는 과대평가된 점이 있다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그의 선택이 옳은 것처럼 보이기는 했겠죠. </div> <div><br></div> <div>강홍립에게 어떤 지시를 내렸을까요?</div> <div><br></div> <div>아마도 시세를 봐서 지혜롭게 대처하라는 정도의 밀지였을 겁니다.</div> <div><br></div> <div>서인정권의 말대로 아예 후금에 항복을 하려고 출정한 건 당연히 아니지요. 중립외교 운운하기 이전에 광해군은 명나라에 코가 꿰인 입장이라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출병을 않할 수는 없었던 사정이 있는 거지요. </div> <div><br></div> <div>그럼 광해군이 각잡고 명나라와 함께 힘을 합쳐 후금 여진족을 때려잡자고 했다면 사르후 대전때 조선군이 대단한 역할을 해 낼 수 있었을까요?</div> <div><br></div> <div>사르후전투의 전말을 알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건 어림택도 없는 목표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조선군은 작전지휘권이 조선 자신에게 있는 게 아니라 명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모습까지 보이더군요. 뭘 혼자서 독자적으로 항복을 해요? </div> <div><br></div> <div>명의 전 전선이 총붕괴되는 싯점에서 불시의 습격을 받아 반 이상이 이미 궤멸된 상황에서 아니 그럼 다 죽으란 말입니까?</div> <div><br></div> <div>항복 이외에는 달리 선택할 수 있는 길 자체가 없었던 상황이죠.</div> <div><br></div> <div>다만 이 덕에 광해군은 명나라로부터 신임을 얻는데는 성공합니다.</div> <div><br></div> <div>후금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았다는 것만 강조들 하는데 대명관계를 돈독히 했다는 점은 대부분 간과하더군요. 하지만 지금 명의 멸망과 청의 천하통일이라는 최종결과를 알고 있는 우리 후손과는 달리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 점 또한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었죠.</div> <div><br></div> <div>이런 점에 대해서조차 인조 정권은 실패하여 명나라로부터 끊임없는 의심을 사게 됩니다. </div> <div><br></div> <div>왜 광해군 성군설이 나오느냐?</div> <div><br></div> <div>그것은 전적으로 인조 정권의 무능때문으로 봐야 합니다.</div> <div><br></div> <div>그럼 인조정권이 깨끗하기라도 했느냐? 아니니까 문제죠.</div> <div><br></div> <div>정실인사 지독하게 쩔 뿐더러... 특히 왕족들을 너무 챙기다 보니 이때문에 오는 민폐가 아주 작렬했던 게 또 인조 정권입니다. 공신에게 휘둘려 정치는 개판엉망이 되어 버렸고 일어날 필요도 없는 반란까지 겪는 바람에 국방력까지 아주 난장판이 되어 버렸던 게 인조죠.</div> <div><br></div> <div>그런 엉망개판인 인조정권이 병자호란이라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div> <div><br></div> <div>첫째는 청태종의 관용(?) 덕이고</div> <div><br></div> <div>둘째는 숭명반청이라는 소리는 그렇게 요란하게 떠드는 척화유림들이 실제 문제에 대해서는 인조보다 더 꽉막히고 무능했다는 점이 있습니다.</div> <div><br></div> <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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