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발해=현대중국, 발해=현대한국, 발해=만주족</div> <div>한,중,러,일 4국 각각의 주장들입니다.</div> <div>이건 다 잘못된 등식이라고 생각합니다.</div> <div> </div> <div>당시 발해 자체를 봅시다.</div> <div>발해는 고구려인들과 말갈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div> <div>말갈인들이 많다고 해서, 그리고 건국자가 속말말갈이라는 기록만으로</div> <div>발해를 만주족만의 역사로 볼 수 있을까요??</div> <div> </div> <div>말갈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div> <div> </div> <div>숙신-읍루-물길-말갈-여진-만주로 이어진다는 계통 상식이 </div> <div>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의견들이 요즘이 대체로 많습니다.</div> <div><br>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div> <div> </div> <div>숙신은 하상주,춘추전국시대에는 요서,산동지방으로 비정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그렇게 나옴)<br>그러나 위-진-남조-수-당시대의 숙신은 목단강 동쪽의 동만주와 연해주에 비정됩니다.<br>요서,요동,청천강이서지역으로 (전국-진-한나라 때 전란을 피한) 중국유민들이 들어오면서<br>이동했거나 소집단들이 퍼져있던 범위가 좁아들었거나 한가지겠죠. </div> <div> </div> <div>읍루는 대체로 한나라때부터 등장하여 북옥저 북쪽 연해주 동해안 및 연길일대에 비정됩니다.<br>이들은 한동안은 부여(송화강,눈강유역)의 속국이었다가 자립했습니다.</div> <div> </div> <div>물길은 갑자기 수당시대에 등장하는데<br>총 7부가 있습니다.</div> <div> </div> <div>첫째, 속말부는 송화강 속말수 유역에 있었는데, <br>3~4세기 선비족에 짓밟힌 후 고구려 영향 아래에서 나라 유지하던 부여가<br>6세기에 물길에 쫓겨서 고구려에 귀부하거나 눈강을 건너에 세운 부여계승국 두막루를 세웁니다.<br>이때 부여지역으로 진출한 물길이 바로 속말부로 보이고,<br>속말부가 잔존한 부여인들과 활동영역이 겹치므로 섞이는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br> <br>둘째, 백산부는 백두산 및 연길 일대로 읍루 및 옥저의 영역과 겹칩니다.<br>실제로 기원전 3~1세기 경 읍루계열의 유적들이 연해주 북쪽에서 북옥저의 연해주지역으로 확산되고<br>북옥저의 고고학적 문화권의 북계는 연해주지역에서 두만강 유역으로 점점 내려옵니다. <br>광개토대왕비의 동부여 인근 매구루압로, 숙사사압로 등의 기록은<br>압로=읍루로 볼 경우 북옥저읍루, 숙신읍루로 볼 수도 있습니다. </div> <div> </div> <div>이상 속말부와 백산부는 인접한 예맥계인 부여,옥저,고구려와 매우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br>하여 속말부와 백산부는 고구려의 별종이라는 표현도 보입니다.</div> <div><br>속말부와 백산부는 고구려를 배반하기도 하였으나 <br>대체로 고구려의 용병 역할 및 고구려를 통한 선진문화 접선을 하였습니다.</div> <div> </div> <div>옛 부여땅에 들어와 함께 살면서 고구려 소속감을 가졌던 속말말갈인이 세운 발해의 <br>발해왕이 스스로를 고려왕이라고 하고<br>부여의 습속을 계승했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div> <div> </div> <div>실제로 고구려 부흥운동 당시에도 말갈인들이 적극 협조하였는데 <br>이는 고구려 멸망 전까지 고구려의 질서 아래에서 고구려라는 소속감을 가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div> <div> </div> <div>여기서 보면 발해는 우리나라와 상당한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div> <div>그리고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에 귀부한 발해인들이 굉장히 많으며</div> <div>이중에는 여러 말갈 부족들도 있습니다.</div> <div> </div> <div>발해인들은 멸망 후 거란 요나라, 여진 금나라 등지에서 </div> <div>벼슬하고 활동하며 살기도 하였으나</div> <div> </div> <div>고려에도 많이 귀부하였으며, 특히, 발해 스스로 고구려 계승국을 자처하였고,</div> <div>고구려 부흥운동 및 고구려인들이 많았으므로</div> <div> </div> <div>굳이 현대 국가들에서 본다면 한국과 밀접하다고 생각합니다.</div> <div>따, 발해=현대한국이 아니라 한국이 중국보다는 더 발해와 밀접하다는 것이죠.</div> <div> </div> <div>발해는 한국사의 범주 안에 있는 것은 틀리지 않았습니다.</div> <div> </div> <div>반면, 물길말갈 7부 중 </div> <div>불열말갈 동쪽은 옛 숙신이라는 기록이 별도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br>불열말갈,호실말갈은 숙신의 무리로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div> <div> </div> <div>그리고 흑수부의 경우는 제일 북쪽 흑룡강(아무르강) 지역인데<br>이들은 굉장히 자립적이며 당과 손잡고 고구려,발해를 견제하였습니다.<br>발해 전성기에 발해 영향 하로 들어가기도 했으나<br>발해 쇠퇴기 및 발해 멸망후 거란족에 정복된 숙여진과 달리<br>생여진으로서 생여진 수십여부들이 금나라,원나라,명나라를 거치면서<br>아무르강 유역에서 송화강유역으로 계속 이동합니다.</div> <div><br>여진은 영어로는 주르쳰입니다. <br>[J]가 "반모음 이" 또는 "자음 지읒" 음가를 가졌는데,<br>숙신,직신,주신,주리진,조선과 주르첸,여진을 완전히 동일하다는 아니고 <br>서로 가까운 관계에 있다고도 볼 수 있겠죠.</div> <div> </div> <div>고려시대 동북쪽 동해안 갈라전지역(함경도일대)의 여진인들은 <br>고려의 주현제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br>귀부하기도 하였는데 고려 조선 교체기에 <br>조선 건국왕실이 동북면을 바탕으로 하였으며, <br>한민족 왕조에 우호적이었던 함경도,연변지역 여진족들과 긴밀했다는 점도 있습니다.<br> <br>명나라 말기, 남하했던 생여진의 여러 부들 중에서 <br>건주여진의 한 부가 스스로 여진은 우리의 근원과 다르므로,<br>여진족 명칭을 쓰지 말도록 하고<br>우리는 만주족이다라고 한 것이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입니다.<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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