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1. 조선초기 남녀차별의 법제화</b></div>남녀차별을 처음 법제화 한것은 태종이 여성의 상속권을 제한한것이 시작이었고 <div>얼마후 성종은 여성을 명실상부한 2등국민으로 끌어내렸습니다.</div> <div>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이 그렇다는 것이고</div> <div>여성개인의 행복추구에 애로사항이 꽃피기는 했지만, 삶이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비참해졌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2. 세도정치의 시작</b></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이러던것이 19세기가 되면서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란것이 시작되고</span></div> <div>한양의 모든 관직을 김xx들이 독차지하면서</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전국의 모든 양반가문들은 강제귀농하게 됩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예전에는 중앙권력에서 잠시 밀려나도, 곧 다시 복귀할 수 있었고</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또 그간 해먹은게 많아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는데</span></div> <div>이것이 여의치 않게 되었습니다.</div> <div><br></div> <div><b>3. 향촌사회에서의 무한경쟁</b></div> <div>양반가문이 양반으로 존속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명예입니다.</div> <div>양반이란 용어는 관료를 뜻하고, 관료를 배출하지 못하는 가문은 양반이 아니라고 할수 있습니다.</div> <div>김XX들이 해먹고 남은 몇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난이도는 이 조건을 더 극적으로 만들어줬습니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가문의 장남은 어릴때부터 고액과외를 붙여 과거머신으로 교육시켰으며</span></div> <div>장남이 노답이다 싶으면 방계 몇촌을 뒤져서라도 똘똘한 놈을 찾아 장남으로 삼았습니다.(기존의 장남은 불의의 사고로 사망)</div> <div><br></div> <div>두번째조건은 경제력인데, 권력의 중심에서 따라오던 부를 잃어버린 양반가문들은</div> <div>자연히 토지관리를 통한 수입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양반이 천한 상공업에 뛰어들순 없는노릇이니까요.)</div> <div>때문에 직계방계후손들을 통해 느슨하게 관리되던 토지들도 장남명의로 일원화해버립니다.</div> <div>소위 장남위주의 문화라는것이 이때 형성되었다고 합니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세번째 조건은 향촌에서의 권력입니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양반들은 토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지방수령과 모의하거나 고리대를 통해 자영농의 토지를 빼앗거나 하는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이런 짓을 벌이려면 일종의 지자체라고 할수 있는 향약소에서의 영향력이 중요했는데요.</span></div> <div>이 알량한 지방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졸렬한 짓들을 벌였습니다.</div> <div><br></div> <div>향촌사회에서의 경쟁에서 탈락한 가문들은 모든것을 빼앗기고 양인이나 천민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됩니다.</div> <div>양반들에게 이것은 가문의 존망을 건 전쟁이었습니다.</div> <div><br></div> <div><b>4. 가문 총동원체제</b></div> <div>이때의 양반가문들은 총동원체제로 운영되었습니다.</div> <div>가문의 구성원들은 너나할것없이 개인의 행복이나 개성을 포기하고, 오직 가문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이용되었습니다.</div> <div>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은 바로바로 교체되었습니다.</div> <div><br></div> <div>태종과 성종이 만들어놓은 악법들은 이때야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데</div> <div>여성의 권리는 합법적으로 무시되었고, 반항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div> <div>특히 며느리들은 낮에는 훌륭한 무임금 노동력으로 사용되고 종국에는 열녀로 생을 마감하거나 했습니다.</div> <div><br></div> <div><b>5. 결론</b></div> <div>세도정치 이전까지 하더라도 장남과 차남, 남자와 여자의 차이란것이 없거나 크지않았습니다.</div> <div>찢어죽일 김XX들의 농간은 나비효과를 일으켜 한국 특유의 여러가지 병신같은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div> <div>모든것은 세도정치의 탓입니다.</div> <div><br></div> <div><b>6. 반론??</b></div> <div>19세기는 전세계에 걸쳐 모두가 모두에 대해 투쟁하던 시대였습니다.</div> <div>총동원문화는 보편적현상이었고 오히려 서양의 상황은 오히려 더 심해서, 서양에서 여권운동이 일어나게 된 원인으로 작용하였으며</div> <div>지금 서양에서서 여권이 높아진 것은 최근의 여권운동의 영향의 덕분이라고 보는것이 옳다라는 의견도 있습니다.</div> <div>세도정치고 나발이고 19세기의 여성들은 다같이 비참해질 운명이었다는거죠.</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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