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기본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 시혜론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은 맞습니다.</div> <div>식민지 근대화론이 처음 불거졌을 때 식민지 시혜론의 포장된 형태가 아니냐고 의심했던 주류 역사학계에서도 이제는 이 둘을 별개로 취급합니다.</div> <div>다만 식민지 근대화론이 주류 학계에서도 하나의 일리 있는 학설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되자 </div> <div>뉴라이트 같은 식민지 시혜론자들도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코스프레를 시작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둘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div> <div>(하지만 이건 코스프레를 하는 놈들이 문제인거지 기존의 가치 중립적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학자들 잘못은 아니죠.)</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식민지 근대화론의 문제점은 다름아닌 "근대화"의 정의 문제에서 나옵니다.</div> <div> </div> <div>일단 논의에 앞서 전제하자면,</div> <div>식민지 근대화론이 처음 대두된 곳은 역사학계가 아니라 경제학계였으며, 여기선 어디까지나 "경제적 근대화"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div> <div>그리고 여러가지 데이터가 입증해 주듯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근대화되었다고 보는 관점은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div> <div>여러가지 경제 지표 상의 변화가 명백하고, </div> <div>일제는 (비록 식민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였긴 하지만) 여러 경제적 지표를 정확하고 꼼꼼하게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지표가 허위일 가능성도 적기 때문입니다.</div> <div> </div> <div> </div> <div>문제는 그러한 <strong>"경제학적 근대화"가 </strong>역사학에서 이야기하는<strong> "일반론적 근대화"와 일치하는가</strong> 하는 것입니다.</div> <div> </div> <div>아무래도 현대에 경제가 워낙 큰 의미를 지니다보니 일반적으로 "근대화"라고 하면 경제적인 측면의 근대화를 쉽게 떠올리게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div> <div>그러나 "근대화"는 사실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를 지닙니다.</div> <div><strong>"근대화"는 경제 뿐 아니라 문화, 사상, 정치 등의 여러 분야에 걸친 문제</strong>이기 때문입니다.</div> <div> </div> <div> </div> <div>가령, 근대의 대표적 철학자 헤겔은 "근대"라는 시대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div> <div> </div> <div>1. 종교개혁에 의한 <strong>사상적 자유</strong>.</div> <div>2. 시민사회의 성립에 의한 <strong>사회적 자유</strong>.</div> <div>3. 이를 통해 개인들이 각자의 목적을 <strong>마땅히 자유롭게 추구</strong>.<span class="line-anchor"></span><br>4. 1, 2, 3의 것들을 상호간에 조정하면서 권리로서 보증하기 위한 <strong>계몽</strong>.<span class="line-anchor"></span><br>5. 합리적으로 하나의 관계 = <strong>국가</strong>를 형성하며 운영해가는 시대와 세계.</div> <div> </div> <div> </div> <div>사실 역사적으로 근대의 중요한 의미는 다름아닌 <strong>"자유로운 개인의 발견"</strong>에 있습니다.</div> <div>종교적으로는 로마 가톨릭의 강력한 지배 아래, 정치적으로는 로마 가톨릭의 비호, 즉 왕권 신수설에 기반한 강력한 절대왕정 아래 억압되어 있던<strong> "개인성"</strong>이</div> <div>르네상스와 종교개혁, 프랑스 혁명, 계몽주의 등을 계기로 조금씩 재발견되기 시작하다가</div> <div>산업 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변화를 통해 비로소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근대의 중요한 의미라고 하겠습니다.</div> <div> </div> <div>그리고 이 과정에서 교황권과 왕권이라는 정치적 이념이 약화되어 이를 대체하는 <strong>민족주의</strong>가 새로운 정치 이념으로 등장하고,</div> <div>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인 <strong>민주주의</strong>가 싹을 틔우기 시작하며,</div> <div>그리스도교라는 사상적/학문적 금제가 풀리면서 각종 <strong>실용 학문, 특히 자연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strong>하기 시작하죠.</div> <div>결국 이것은 중세의 "종교적 인간"에서 근대의 <strong>"합리적 인간"</strong>이라는 인간관의 변화로 이어집니다.</div> <div> </div> <div> </div> <div>그렇기에 엄밀히 말하면, <strong>근대의 핵심은 "자유로운 개인의 발견"이라는 정신적 변화에 있는 것</strong>이며,</div> <div>경제 구조의 변화, 자연 과학의 발전,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시민사회 형성, 민주주의의 태동 등은 이러한 정신적 변화에 따른 연쇄작용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div> <div> </div> <div>양 차례의 세계 대전을 "근대의 종말"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div> <div>전체주의와 식민 지배라는 새로운 형태의 억압이 등장하여 근대의 정신인 "자유로운 개인"이 또다시 억압되기 시작하였고,</div> <div>세계 대전이라는 광기를 직면하면서 근대의 인간관인 "합리적 인간"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죠.</div> <div> </div> <div> </div> <div>자, 이러면 이제 문제는 간단해집니다.</div> <div>단순히 경제적 지표를 따졌을 때 "경제적으로" 일제 강점기에 "경제적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주장은 상당히 유력한 주장입니다.</div> <div>하지만 <strong>경제적인 의미에서 뿐 아니라 문화적, 사상적으로도 일제 강점기의 조선을 "근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strong></div> <div> </div> <div><strong>일제 강점기의 조선에 "자유로운 개인"이 있었을까요?</strong></div> <div><strong>일제 강점기의 조선이 "민족주의에 기반한 시민 국가"였을까요?</strong></div> <div><strong>일제 강점기의 조선에서 "민주주의의 태동"을 찾을 수 있을까요?</strong></div> <div> </div> <div> </div> <div>실제로 주류 역사학계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과 반박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이루어집니다.</div> <div> </div> <div>결국 근대라는 시대, 그리고 근대화라는 개념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죠.</div> <div> </div> <div>"기술 발전으로 인한 경제 구조, 사회 구조가 핵심이며 문화적, 사상적 변화는 이에 뒤따르는 것이다"라고 본다면 일제 강점기는 근대화의 시기가 맞겠죠.</div> <div>하지만 "문화적, 사상적 변화가 선행하며, 경제적, 사회적 구조 변화는 이것의 현상적 발현이다."라고 본다면 일제 강점기는 근대화의 시기가 될 수가 없습니다.</div> <div>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일제 강점기의 조선은</div> <div>근대의 진정한 가치, 근대의 정신과 근대적 인간관은 오히려 억압받고 </div> <div>단지 인위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구조만 변형된 기이한 사회였을 뿐, 결코 근대 사회라곤 볼 수 없는 겁니다.</div> <div>(물론 저는 후자의 견해이고요.)</div> <div> </div> <div>결론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논쟁은 결국 다음의 질문으로 환원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div> <div> </div> <div><strong>"개인의 자유가 과거보다 더욱 철저하게 억압받고, 민족주의는 커녕 민족 문화 자체가 말살되고, 민주주의는 싹조차 틔우지 못한 시대를</strong></div> <div><strong>단지 경제적 지표상 근대화되었다고 해서 근대라고 불러야 하는가?"</strong></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저는 단언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