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id="aline-3"><font color="rgb(0,0,0)">원</font><font color="rgb(0,0,0)">나라 간섭기 당시 </font><font color="rgb(0,0,0)">심양</font><font color="rgb(0,0,0)">(瀋陽)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랴오닝성(遼寧省) 일대, 요동 땅에는 </font><font color="rgb(0,0,0)">고려</font><font color="rgb(0,0,0)">의 전쟁포로, 이주민 등의 집단이 많아 고려의 영토와 같은 특수지역이었는데, 이들을 다스리기 위해 설치한 직위라고 합니다. 그 전에도 안무고려군민총관(安撫高麗軍民摠官)과 같은 비슷한 역할의 직위가 있긴 했지만 심양왕은 이와는 달리 최초로 창설된 왕급의 직위였습니다. 이 작위가 창설되고 처음으로 봉해진 것이 </font><font color="rgb(0,0,0)">충선왕입니다</font><font color="rgb(0,0,0)">. 충선왕은 황위 계승 분쟁에서 </font><font color="rgb(0,0,0)">무종</font><font color="rgb(0,0,0)"> 카이산과 그 동생인 아유르바르와다(훗날의 </font><font color="rgb(0,0,0)">인종</font><font color="rgb(0,0,0)">)를 지지한 대가로써 이 직위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고려왕과 심양왕 양쪽의 직위를 가지게 된 충선왕은 만주와 한반도 양쪽 모두의 통치자가 된 것이구요. 설마하니 아무 권한 없이 황위 계승 분쟁에서 무종 카이산과 그 동생인 아유르바르와다(인종)를 지지한 대가로써 이 직위를 얻은 충선왕에게 요동 땅을 충선왕에게 맡겼을 거 같습니까? 충선왕은 그런 큰 공이 있고 원나라 황제의 사촌입니다. 적어도 행성주처럼의 권한을 주어 고려인 및 이주인들의 민심을 달래고 다스리려면 고려 출신이 적격이니 충선왕을 심양왕으로 요동 땅을 다스리게 한 겁니다.</font></div> <div id="aline-7"><font color="rgb(0,0,0)"></font> </div> <div><font color="rgb(0,0,0)">그리고 심양왕(瀋陽王)이 된 충선왕은 실권도 컸을뿐만 아니라 원나라 조정에 직접적인 정치에도 참여하였고 1310년 충선왕은 심왕(瀋王)으로까지 책봉됩니다. 참고로 <font color="rgb(0,0,0)">몽골 제국을 </font>포함한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2자왕보다 1자왕을 더 높은 격으로 쳐 줍니다. 충선왕은 아들 </font><font color="rgb(0,0,0)">충숙왕</font><font color="rgb(0,0,0)">만이 아니라 이복형 강양공의 차남 연안군(延安君) </font><font color="rgb(0,0,0)">왕고</font><font color="rgb(0,0,0)">(王暠)에게 심양왕 위를 물려주었습니다. 이는 </font><font color="rgb(0,0,0)">충선왕</font><font color="rgb(0,0,0)">의 정책 때문에 고려 내에서의 권력을 잃은 이들이 고려왕이 심양왕을 겸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탓인지 왕고가 심양왕이 된 후로 권한이 깍이게 되었습니다. 첨언하면 충선왕이 말년에 훗날 원나라 황제 인종의 아들, 영종의 황위 다툼에서 줄을 잘못 서서 티벳에 귀양살이 아닌 귀양살이하게 되고(티벳엔 불경 및 불화 연구로 갑니다) 심양왕의 권한도 축소되게 됩니다.</font><br /></div> <div id="aline-9"><font color="rgb(0,0,0)"></font> </div> <div><font color="rgb(0,0,0)">심양왕 왕고는 고려왕위에도 욕심을 내어 사촌인 </font><font color="rgb(0,0,0)">충숙왕</font><font color="rgb(0,0,0)">을 참소하기도 하면서 괴롭혔고, 왕고 사후에 그 직위는 손자인 토크타부하(脫脫不花)에게 이어진다. 토크타부하도 고려왕위를 노려서 고려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font><font color="rgb(0,0,0)">이후 원나라 몰락기에 충선왕의 셋째 아들인 덕흥군 왕혜가 심양왕으로 봉해지지만, 고려왕위에도 욕심을 내어 </font><font color="rgb(0,0,0)">공민왕</font><font color="rgb(0,0,0)">에 대항하다가 패배한 후로 폐지되었다.<span class="line-anchor" id="line-11"></span></font></div> <div id="aline-13"><font color="rgb(0,0,0)"></font> </div> <div><font color="rgb(0,0,0)">어째 이 심양왕 자리에만 올라가면 모두 고려왕을 노린다라는 오해를 받지만 실제로도 그런 액션을 종종 취했습니다. 원나라가 고려에 대한 외교정책에서 주도권을 쥐고 군림할 수 있게 일부러 정쟁을 일으키기 위한 자리로도 이용하였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도 하구요. </font><font color="rgb(0,0,0)">사실 심양왕은 몽골 제국 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동방 3왕가에 대한 견제용(후방 견제용)으로 설치된 왕 직위라는 설이 있습니다. </font></div> <div id="aline-17"><font color="rgb(0,0,0)"></font> </div> <div>그런데 무슨 몽고 전쟁하여 항복하고 부마국 된 처음부터 동방 3가를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항복하게 했다느니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런 주장이 나오는 거면 가설인거지 무슨 사료와 논거인지 모르겠네요. 다들 학교 다닐 때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한 게 원나라가 고려를 동방 3가를 견제하기 위해 항복를 받았라고 배웠습니까?</div> <div> </div> <div> <div><font color="rgb(0,0,0)">참고로 동방 3왕가에 대해 설명하자면 </font><font color="rgb(0,0,0)">칭기즈 칸</font><font color="rgb(0,0,0)">의 동생들이 분봉받은 영지를 시작으로 하는 동북방의 보르지긴씨 분가들을 일컫습니다. 각각 옷치긴 왕가(</font><font color="rgb(0,0,0)">칭기스 칸</font><font color="rgb(0,0,0)">의 막내동생 테무게 옷치긴이 시조), 카치온 왕가(둘째 동생인 카치온이 시조. 단 카치온은 일찍 죽어서 그 자식이 분봉받았습니다.), 카사르 왕가(첫째동생인 카사르가 시조.)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만주 일대의 영지에 더해 북중국, 남중국 일대에도 많은 영지를 지니고 원 황실의 권력투쟁에 깊이 개입했다고 합니다.</font></div></div> <div> </div> <div>무슨 가설을 기정사실마냥 단정적으로 말하는데, 역사학계 주류도 그렀습니까? 당최 이해가 안됩니다. 가설을 가설 혹은 그런 주장이 있다라고 정도로 언급해야지 무슨 기정사실 마냥 사료도 논거도 없이 주장하는 게 불쾌한 겁니다. 어디서 줏어 들은 걸 아무 자료나 논거없이 그냥 앵무새처럼 말하지 말고 가설이라는 것 전제하에 이러할 수 있고 그런 가설 혹은 주장이 있습니다라고 해야지 이게 뭡니까? </div> <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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