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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history_10185
    작성자 : DanielCafe
    추천 : 12
    조회수 : 1545
    IP : 112.150.***.11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3/06/16 23:51:55
    http://todayhumor.com/?history_10185 모바일
    신라는 발해를 동족으로 생각했나(펌글)
    <div>참고하시라고 퍼온글립니다ㅋ<br />반드시 옳다는게 아니라 이런 견해도 있다라고 생각해<br />주세요^^</div> <div>"우리가 다른 민족의 조상이었다?-_-;;" 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div> <div>고대인들이 어떻게 경쟁하며 살아왔는지 함 돌이켜 보자는 의미임</div> <div><a target="_blank" href="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163000/2008/04/021163000200804030704012.html" target="_blank">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163000/2008/04/021163000200804030704012.html</a><br /><br />신라는 발해를 동족으로 생각했나 <br />- 박노자 오슬로국립대교수 한국학<br /><br /><br /><br />팽팽한 대결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신라는 발해를 <br />‘오랑캐’로 폄훼… 고대인들의 의식에 ‘남북국시대’는 <br />없어 <br /><br />최근 국사교과서에서까지 발해와 통일신라시대를 <br />남북조 또는 남북국시대로 일컫곤 한다.<br />“고구려도 신라도 다 같이 우리 한민족이었다”는 <br />설명과 “발해는 고구려유민이 세운 나라였다”는 <br />설명을 논리적으로 연결시키면, 학생들은 발해와 <br />신라 사이에 마치 오늘날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br />‘민족적 동질성인식’이 존재했으리라고 결론 내리기가 <br />쉽다. 신라와 발해의 관계가 별로 우호적이지 <br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학생들은 ‘남북한과<br />마찬가지로, 국가적으로는 대립해도 민족적으로는 <br />동질성을 느꼈으리라’고 짐작할는지도 모른다.<br /><br />그런데 과연 신라인들이 본 발해인은 ‘동족’이었던가?<br />오늘날 남북한시대와 비교될만한, 문화적 동질성에<br />기반을 둔 남북조시대가 존재했던가? 1차 자료를 보면 <br />대답은 명쾌하다. 신라인들은 발해건국에서 말갈족들<br />이 한 역할과 아울러 발해와 고구려의 계승관계를 <br />잘 인식하고 있었지만, 발해인들에 대해 정치적인 <br />적대감을 넘어 문화적인 이질성까지 느꼈다.<br />다시 말해 “신라, 고구려, 발해가 다 한민족계통”<br />이라는 생각은 20세기 민족주의사학의 ‘상식’으론 <br />통해도 7∼9세기 고대인들의 머리에 든 적은 없었다는 <br />것이다.<br /><br />발해를 ‘올빼미’라 욕한 최치원<br /><br /><br />최치원은 당나라의 신라사랑에 감사를 표하면서 <br />발해를 ‘올빼미들’이라 욕하는 글을 남겼다. <br /><br />897년 당나라와 신라, 발해 등 동아시아국가들이 <br />다 같이 말기적위기로 접어드는 시절에 이 세 나라 <br />사이에 주목을 끌만한 외교적사건이 터졌다. <br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당나라에 사신으로 온 발해<br />왕자가 신라보다 발해의 국세가 더 강성하다는 이유를<br />들어 외빈을 접견하는 순서에서 신라보다 발해가 <br />우선돼야 한다는 요구를 과감히 당나라조정에 <br />한 것이다. 그러나 당나라황제 소종(昭宗·889∼904)<br />이 전통적으로 발해보다 신라가 당 제국에 훨씬 더 <br />가까웠다는 사실을 인식해선지 이 요구를 거부하자,<br />당에서 오래 머물렀던 신라의 최치원이 신라조정의<br />이름으로 소종에게 장문의 글을 보내 당나라의 ‘신라<br />사랑’에 감사를 표하면서 발해에 대한 신라의 태도를<br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동문선>(東文選·1478)에 <br />실릴 만큼 후대에 명성을 떨쳤던 ‘사불허북국거상표’<br />(謝不許北國居上表·북쪽 나라가 윗자리를 차지하는 <br />것을 허락하지 않으심에 감사를 드리는 글)라는 글에서 <br />발해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br /><br />“발해의 원류는 고구려가 망하기 전에 본래<br />사마귀만한 부락이었고, 말갈의 족속이 번영해지자<br />그 무리 중에 속말이라는 작은 변방부족이 있어 항상<br />고구려에 복종해왔는데, 그 수령 걸사우 및 대조영 <br />등이… 문득 황야지역을 점거하여 비로소 진국<br />(振國·발해 초기명칭)이라 명명됐다. <br />그때 고구려의 남은 무리로서 물길(勿吉·말갈)잡류의 <br />올빼미들은… 처음에 거란과 손을 잡아 악을 행하고<br />또 이어서 돌궐(突厥)과 통모하여… 여러 번 <br />요수(遼水)를 건너서 항쟁을 했다가 늦게야 <br />중국에 항복했다.”<br /><br />‘사마귀만한 부락’이나 ‘올빼미’ ‘행악’ 등의 수식어<br />들은 발해에 대한 최치원의 정치적 적대심이 어느<br />정도였나를 보여주고 있으며, 발해건국집단과 고구려<br />의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자꾸 ‘말갈의 무리’를 강조해 <br />그 ‘무리’와 거란 또는 돌궐(터키족 계통의 유목민제국)<br />과의 연관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발해를 문화적으로도 <br />이질시 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최치원은 고구려야<br />삼한(三韓) 중 하나로, 즉 신라와 어느 정도 문화<br />수준이 같은 존재로 간주했지만, 말갈이나 거란,<br />돌궐 등 북방종족들은 그에게 ‘문화영역 바깥의 <br />오랑캐’에 불과했으며, 발해에 대해서도 애써서<br />‘오랑캐’라는 딱지를 붙이려했다. 비유적 표현의 <br />거장이었던 그는, 신라에 대해 ‘무궁화 꽃이 피는<br />고향’(槿花鄕·근화향)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문화에<br />대한 자긍심을 나타내지만 발해에 대해서는 <br />고작 ‘싸리나무로 만든 화살의 나라’정도로 대접을 <br />한 것이었다.<br /><br />고대중국인들은 ‘싸리나무로 만든 화살’을 활쏘기에<br />능했던 북방 숙신(肅愼)족의 특산품으로 인식했는데,<br />최치원이 바로 이와 같은 인식을 상기시켜 발해가<br />‘오랑캐’ 숙신과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한 것이었다.<br />이 주장은 최치원의 개인적 견해만은 아니었다. <br />신라시대의 일차사료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br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서도 발해를 신라의 <br />북쪽에 있다고 해서 지리적인 차원에서 ‘북국’<br />으로 부르는가 하면 ‘북적’(北狄), 즉 ‘북쪽의 오랑캐’<br />라고 비칭하기도 했다. 신라지배층이 보기에는 <br />발해라는 존재는 ‘문명적 질서 바깥’에 있었던<br />것이다.<br /><br />발해의 침공에 늘 긴장상태<br /><br />그렇다면 신라지배자들이 발해를 오랑캐로 본 이유는 <br />무엇이었을까? <br />당시 한자문화권의 잣대로 재단되는 발해문화의<br />수준이 낮아서 그렇게 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br />최치원이 중국의 한 친지에게 보내는 서신에서,<br />875년에 발해의 오소도(烏炤度)라는 유학생이<br />신라유학생 이동(李同)보다 시험에서 더 높은 <br />점수를 따서 수석의 영광을 차지한 것을 ‘신라의<br />부끄러움’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들의 글짓기실력을<br />무시하지 못했던 것이다.<br />최치원 자신을 포함한 신라출신 당나라유학생들에게<br />통상적인 경쟁상대는 바로 발해유학생들이었으며,<br />이렇듯 그들에 대해 날카로운 경쟁의식을 가졌던<br />만큼 최치원이 평소 상대했던 당나라지식인들도 <br />발해를 적어도 ‘문화후진국’이라고 깔볼 리는 없었다.<br />712년 당나라에 간 발해사신이 절에서 예불을 볼 <br />권리부터 요구하고, 738년에는 <삼국지> <진서>(晉書) <br />등 특정 역사서적의 복사를 요청할 정도로 당나라와의<br />관계에서 ‘종교’와 ‘문화’를 앞세웠으며, 또한 758년 <br />일본을 방문한 발해의 대사 귀덕장군 양태사는 일본<br />인들에게 무엇보다 한시를 잘 짓는 시인으로 기억되었다.<br /><br />결국 최치원과 같은 신라의 대표적 지성인들이 <br />발해에 대한 ‘문화적 멸시’를 애써 드러냈던 것은 <br />발해의 후진성보다는 신라 쪽 사정에서 비롯된 <br />것이었다. <br /><br />첫째, 신라로서는 발해가 고구려에 대한 계승의식을 <br />나타내는 것이 문제였다.<br />부여계통의 고구려와 남쪽 한(韓)계통의 신라가<br />언어와 풍속이 상당히 달라 이질성이 강한데다,<br />5세기말부터 고구려가 패망한 668년까지 거의 <br />한세기반 동안 쉴 새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른 바 <br />있어 신라인으로서는 고구려를 좋게 보기가 힘들었다. <br />이러한 고구려에 대한 이질감과 적대감은 쉽게 <br />발해에 대한 악감정으로 이어졌다.<br />838∼848년 당나라를 여행했던 일본고승 엔닌<br />(圓仁·794∼864)의 유명한 <자각국사입당구법순<br />례행기>(慈覺國師入唐求法巡禮行記)라는 <br />기행문을 보면 재당(在唐)신라승려들이 매년 8월15일<br />‘발해에 대한 신라의 옛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br />큰 잔치를 벌인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8월15일의 <br />승리’는 발해가 아닌 고구려에 대한 신라-당나라 <br />연합군의 승리(668년)를 가리키는 것으로, 신라인의 <br />의식 속에서 발해가 고구려와 같은 계통의 나라로<br />인식됐기에 ‘발해에 대한 승리기념’이라고 <br />와전됐으리라 짐작된다. <br />그리고 망국이후에 당나라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던<br />고구려왕족 안승은 683년 신라의 고급관직인 <br />소판(蘇判)과 김씨 성을 하사받아 신라의 금마저<br />(익산군)에서 살았고, 고구려유민 일부로 신라군의 <br />특설부대인 황금서당이 구성되었는데 나중에 반란을<br />일으켜 진압을 당하기도 했지만 금마저에서 귀순한 <br />고구려관료들이 신라에서 채용되었다는 기록으로 봐서<br />신라지배자들은 고구려세력들이 이미 귀부(歸附)해 <br />통일신라의 일부분이 되었다고 인식한 것처럼 보인다. <br />물론 신라 쪽의 일방적인 시각이었지만, 그들이 자랑<br />했던 ‘삼한일통’(三韓一統)의 과정에서 고구려<br />사직(社稷)이 신라에 통합됐다는 것이다.<br />이런 의식의 소유자들이 ‘고구려계승’을 내세운 발해를<br />과연 ‘고구려의 명의를 도용·참칭하는 세력’ 이상으로 <br />볼 수 있었겠는가?<br />이와 같은 제반사항들로 인해 신라인들은 발해건국과<br />정에서 고구려유민과 함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 <br />말갈집단이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발해를 고구려가<br />아닌 ‘오랑캐 말갈’과 연결하기를 선호했다. 더구나 <br />5세기중반이후 고구려의 신라침략이 있을 때마다 <br />고구려의 간접지배를 받은 말갈부족이 첨병으로 <br />앞장서왔기에 이들에 대한 신라인들의 평소감정이 <br />좋을 리 없었다. 그러한 차원에서 발해를 ‘오랑캐 <br />말갈’로 부른다는 것은 반(反)발해 선전의 효과적인 <br />방법이었다.<br /><br />둘째, 현실이든 상징적이든 발해는 일관되게 신라의 <br />철저한 경쟁자였다.<br />신라는 현실적으로 8세기 초 팽창을 거듭했던 발해에 <br />대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721년 북쪽국경에 장성을 <br />쌓는 등 북쪽의 침공에 대한 준비태세를 갖추었다. <br />또 732년 발해가 당나라를 공격하자 신라가 당나라의<br />부름에 적극적으로 응해 733년 당나라와 함께 발해를<br />협공한 배경에는 신라가 당나라의 도움에 힘입어 <br />한강과 대동강 사이의 북쪽 변경지역을 발해로부터 <br />지키려는 의지가 깔려있었다.<br />이에 대한 보복으로 발해도 750년대 초반부터 신라와 <br />일본의 관계악화를 이용해 758년부터 일본과 손잡고 <br />신라를 협공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는데, 결국 불발로 <br />끝나고 말았지만 신라로서는 악몽 같은 발해·일본과의<br />동시 전쟁은 물론 패강진(浿江鎭), 즉 대동강이남 <br />국경지역에 있는 특수행정구역의 방어가 늘 초미의 <br />관심사였다.<br />발해와 첨예한 대결을 벌이던 신라로서는 당나라와<br />의 밀착관계가 국경안보의 결정적인 보장이었는데, <br />당나라와 발해가 서로 접근하는 데 찬물을 끼얹기 <br />위해서도 발해건국집단의 일부인 말갈의 ‘야만성’을<br />부각시키는 것은 하나의 ‘선전전략’이었다. <br />그리고 상징인 면에서 신라와 발해는 각각 자국을<br />‘문화영역의 중심’으로, 상대방을 ‘문화영역바깥의 <br />야만인’으로 간주했으며, 두 나라의 자국 중심적 <br />세계관 사이에 타협의 여지는 적었다. ‘구이’(九夷)<br />, 즉 주변의 모든 세력 위에 군림하려는 신라지배자<br />들의 야망을 담은 황룡사 구층탑이 신라중심의 세계관<br />을 표현했다면, 황제명칭과 독자적인 연호사용, <br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천손(天孫)임을 주장한 점 <br />등은 발해의 자국중심세계관의 표현이었다. 한편 <br />양국 사이에 일정한 교역은 행해졌지만 불교 교단들<br />사이의 교류라든가 기타 문화교류는 거의 기록되어있지<br />않은데, 이는 국가지배세력들과 긴밀히 밀착되어있는<br />양국 승려 등도 국가적인 경쟁관계를 무시할 수 없었기<br />때문이었을 것이다.<br /><br />다민족국가의 다양성은 귀중한 가치<br /><br />노골적으로 ‘신라중심주의적’ 시각을 드러내는 <br /><삼국사기>는 물론 <삼국유사>나 <제왕운기>마저도 <br />발해를 ‘속말(粟末)말갈’로 분류하고 발해 전말의 <br />주요 사실만 간략하게 적는 등 발해사를 고작해야<br />‘우리역사의 방계(傍系)’ 쯤으로 보는 일관된 태도를<br />보였다. 발해와 팽팽한 긴장을 푼 적이 없었던<br />신라는 공식적으로 발해를 오랑캐 이상으로 보려하지<br />않아 발해문화에 대한 자료를 거의 남기지 않았으며,<br />신라의 사료에 의존했던 고려 등의 사학자도 발해에 <br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br /><br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근대적 틀을 고대에 소급해 <br />발해와 통일신라를 동질적 ‘남북조’로 인식하는 일은<br />쉽지만 이는 당대 사람들은 물론 후대인의 역사관과도<br />상충된다. 그리고 신라와 발해가 ‘남북조’가 아닌, <br />서로에게 이질적인 경쟁 국가였다고 해서 부끄럽게 <br />생각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발해의 문화는 비록 <br />신라와 많이 다르고 잘 소통하지 않았다 해도,<br />발해인들을 ‘친척’으로 대접한 금나라 등 많은 <br />후대국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등 그 역사적 <br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신화뿐인 ‘고대 한민족의 <br />동질성’보다는, 다민족국가인 발해가 상징했던 <br />다양성이 더 귀중한 가치가 아닌가?<br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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