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상냥하고 (자기 나름대로) 오픈마인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어도
“역시 피는 못 속여.”
“그 피가 어디 안 가.”
“사람은 그 부모를 봐야 해.”
라는 말을 무심코 던지곤 하더라구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이 있죠.
제가 개구리였더라면 몇백 번도 더 맞아 죽었을 거예요.
한 편으로는 얼마나 밝은 가정에서 구김살 없이 자랐으면
거침없이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부럽기도 합니다.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들이기도 해요.
자기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고
자기와 헤어져서 집에 돌아가면 그런 가족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거잖아요.
모임이 파하면 친구가 유니콘을 타고 귀가할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맞아요.
아무리 부모님의 싫은 모습, 부족한 모습을 보고
난 저러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문득 정신차려보면 부모님의 단점을 답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참 많아요.
한 사람이 자라나는데 부모님이 미치는 영향은 확실히 어마어마하단 걸 느껴요.
하지만 누군가의 결점이 식구들에게 미치는 치명적인 영향을 몸소 겪어본 사람으로서
절대로 그러지 않으리라 발버둥치고
누구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 고민하는데 (아직 가정을 꾸리기엔 이른 나이지만요) 이런 말을 들으면 참 억장이 무너져요.
부모님의 영향이라는 게 꼭 그 부모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는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데.
부모로서 그리고 배우자로서 어떤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는지 정말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데.
날때부터 행복한 가정 속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람은
평생 행복한 가정을 가질 수 없는 걸까요?
사실 우리 사회에서 살다 보면 저런 환경결정론적(환경뿐 아니라 유전까지 곁들여 설명하는 경우도 많더라구요. 환경에 유전까지 결합하니 가히 무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주장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부딪힐 때가 정말정말 많아요.
특별히 둔감한 사람과의 대화에서뿐만이 아니에요. 생활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불쑥 튀어나와요. 그럴 때마다 지금껏 늘 그래왔듯 “그래~ 그렇게 생각하겠지 보통은~ 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통해서 성숙해졌고, 고난을 딛고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자기 위로며 정신 승리를 해왔어요.
그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제 좋지 못한 가정사를 철저히 숨길 수 있었겠죠.
좋은 면만 말하고 보여주다 보니 “너희 가족은 정말 걱정이 하나도 없겠다.”하는 말까지 들은 적 있어요. 정말 그랬더라면 소원이 없었을텐데.
그렇게 잘 버텨왔던 저인데 오늘은 마음이 평소보다 조금 많이 아팠어요.
오늘은 (자정이 훌쩍 넘었으니 어제라고 봐야겠네요)
제가 가장 사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다 무심결에 저 주제가 등장했어요. 그 사람은 생각보다 강경하더라구요.
“그래도 그 사람이 나름대로 노력을 ...”
“아니, 글쎄.. 그래도 그 피가 어디 안 가더라.”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았어요. 당연히 제가 그런 가정에서 자랐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을테니까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거예요. 하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가장 큰 고민과 어두운 면을 털어놓을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관계가 깊어지면서 말을 할까 고민을 많이 해왔거든요. 더이상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게 후련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요.
집에 오기 전까지 눈물이 터지려는 걸 꾹꾹 참아가며 겨우 집에 왔어요. 여느 때처럼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가도 저녁밥을 먹다가도 문득 아까의 대화가 떠오르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갑자기 울면 다 말해야 할테니까 잘 참았어요. 어릴 때부터 울음 참는 데에는 도가 텄거든요.
하지만 오늘은 상처가 조금 컸는지 집에 와 혼자가 되자마자 울음이 터졌어요. 새벽 내내 울다가 몇 년만에 오유에 접속해서 글을 남겨요. 늦다면 늦고 이르다면 이른 시간대라 보시는 분이 많지는 않겠지만 이렇게라도 정리하니 마음이 좀 평온해지는 것 같아요.
길고 어두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밝지 못한 가정환경에서도 밝게 살아가려는 사람이 있다는 걸 조금만 알아주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