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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용이의 방황]
성용이는 ‘옳고 그름’이 확실한 아이다. 대쪽같은 성격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꺾지 않으며, 반대 주장을 펼치던 상대가 설득을 포기하고 나가 떨어질 때까지 타협하지 않는다.
‘오락실 나쁜거야 가지 마.’ 하면 안 간다. ‘술 담배 하지 마.’하면 손도 안 댄다. ‘욕심부리지 마.’하면 욕심을 버린다.
성용이가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성용이는 어릴 때 유약하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소풍이나 시험이 다가오면 긴장해서 아침부터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힘센 애들이 괴롭히면 한대 맞고 울었다고 한다. 용기가 없어서 손들고 발표 한번 못했다고 한다.
성용이는 그런 자신의 성격이 싫어서 계속 바꾸려고 노력했다.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담담한 척! 용기 있는 척! 센 척! 초반에는 겉으로만 그런척해서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반복되다 보니 성인이 되었을 때는 내가 보았던 쿨한 성격은 정말 성용이의 성격이 되었다.
성격마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웠다. 나는 성용이도 원래부터 돌x이인줄 알았다.
어릴 때 상대가 때리면 맞고만 있던 성용이는 이제 싸움을 시작하면 맞는 것과 상관없이 자기가 이길 때까지 싸웠다. 그 싸움은 상대가 먼저 꼬리를 내리거나 성용이가 승리해야 끝난다.
성용이가 고3 때. 요즘 말하는 근돼에 키만 큰 짝꿍이 뒷자리 친구들의 책상을 송곳으로 긁으면서 놀고 있었다. 뒷자리 친구들은 가만히 있었다. 그래서
"야 근돼가 송곳으로 너네 책상 긁는데 왜 가만히 있어?“
하고 물었더니
"고2 때 같은 반이였는데 원래 저런애야. 자기보다 약한 애들은 잡고 집어던지면서 괴롭혀.“
라고 뒷자리 친구들은 이야기 했다. 성용이는 그 얘기를 듣고 자신의 어릴 적이 생각이 나서 짜증이 났다. 성용이는 근돼가 뒷자리 책상을 찍고 긁던 송곳을 빼앗아 근돼의 의자에 다가 콰앙 소리 나게 박았다.
그리고 박힌 송곳의 손잡이 부분을 필통같은 딱딱 한 것으로 쾅쾅 치면서 망치로 못 두드리듯이 송곳을 의자에 박아 넣었다. 근돼가 놀라서 뭐 하냐고 물었다. 성용이는 눈도 안 마주치고 송곳을 박아 넣으며 말했다.
"송곳 박고 있잖아?"
어이가 없어진 근돼는
"아니, 왜 내 의자에다가 그러고 있냐고!"
"야! 너는 쟤들 책상을 송곳으로 긁으면서 나는 니 의자에다가 송곳 좀 박는 건 안 되냐? 이거 웃기는 새끼네?"
성용이는 근돼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왜? 니 몸에다가도 박아줘?"
근돼는 성용이 눈빛에서 이상함을 느꼈는지, 자신의 잘못을 알았는지 가만히 있었다. 근돼는 그 뒤로 아무도 괴롭히지 않았다. 상대와의 덩치의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들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가 중요한 것 같았다.
성용이의 빛은 특이했다. 무언가로 가려졌다. 꼭 나에게 일부러 안 보여주려는 것처럼. 빛은 맞는데 무언가 필터링이 되고 갇힌 느낌이었다.
성용이는 일을 안 하고 1년 정도 놀고 있었다. 일을 찾으려 했지만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성용이는 내 안의 목소리 이야기를 듣더니 너무 좋아했다.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을 해야 하냐고 물어봐 달라 했다.
나는 내 안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성용이의 말을 줄이고 줄이면 '의욕'이 없다 했다. 그에 대한 답은
[1. 전공을 살려
2.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이동 가능한 곳에서
3. 입을 닫고
4. 3년간 근무.]
라는 4가지 조건의 기괴한 답변이 나왔다.
성용이는 컴퓨터응용과학을 전공했다. 군 전역 후 복학하기 전에 IT 관련 업종의 일을 몇 개월 경험하고 나서 그 길을 가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컴퓨터 응용전공인데 컴퓨터를 응용하기를 싫어했다. 들리는 내 안의 목소리를 전하자 성용이는
"생각만 해도 온몸에서 짜증이 나는데요? 그렇게 어떻게 살지? 그리고 손 놓은지 오래돼서 다 다시 공부해야 돼요."
하며 다른 말을 했다. 나는 처음 보는 성용이의 모습에 많이 당황했다. 아주 고반발이고 탄력 있었다.
"하고 말고는 니 선택이야! 난 전달만 한 거야! 끝!"
그리고 중간 중간 맘에 드는 업체가 없다며 성용이가 추가로 질문을 했고 계속 전달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IT 업체에 이력서를 써라]
[면접을 보고 오라고 하는 곳 중 네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가라]
난 얼마나 걸릴지 궁금했다. '저게 언제 이루어질까?'
그런데 불과 1개월 만에 업체에 입사했다.
'아니 이게 이렇게 쉽게 된다고?'
상대가 누구든 옳은 말을 하고 입으로 상처를 주고 다니던 성용이에게 입을 3년간 다물라고 했다. 그냥 말을 하지 말란 뜻이 아니었다. 아무리 성용이 생각이 옳아도 억울해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입을 열지 말라는 것이었다.
옳고 그름이 확실한 성용이에게는 3년간의 죽음이었다.
하루는 위에 차장이 신입인 성용이를 1년 먼저 들어온 사원에게 맡기며 일을 가르치라 했다고 한다. 4일 동안 그 둘이 출장을 갔는데, 1년 선배는 신입인 성용이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단 하나도. 입을 다물고 있던 성용이는 이상했지만 왜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냐고 묻지 않았다.
차장이 성용이에게
“광케이블 그거 어디 설치돼있어?”
“잘 모르겠는데요?”
차장은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야 집으로 꺼져! 이 병X새끼야!”
“.....”
“집에가라고 이 미친x아!”
성용이가 가만히 있자 차장은 소리를 질렀다.
“집에가라고!!! 안 들리냐? 이 XX...”
그렇게 버럭하는 차장한테 성용이는 목소리가 해준 말을 기억하고 변명 한마디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차장은 성용이에게만 욕을 했다. 1년 된 사원에게는 아무런 욕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1년 선배 사원이 다른 대리 멱살을 잡고 하극상을 한 것을 차장이 봤단다. 그래서 1년차 사원한텐 무서워서 욕을 못하고 안 대드는 신입인 성용이에게만 욕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참 약한 사람이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다른 과장과 첫 통화를 하는 날. 성용이가 밝게 웃으며 말하자. 그 과장이 앞뒤 없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왜 웃어? 웃겨?”
통화 후 회사로 들어온 과장이 군대 병장처럼 무표정으로 말했다.
“야 왜 웃냐니까?”
“...”
“웃는 게 좋은 게 아니야. 어?
웃는 걸 비웃음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어!”
”...“
”알아 들었어?“
”네 알겠습니다.“
과장이 웃으면 안 되는 철학을 이야기 할 때도 성용이는 아무 소리 안 하고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어두운 사람들은 밝은 사람이 웃으면 화가 나는 것 같다.
성용이도 대단한 게 3년 동안 회사에서 안 웃었다고 한다. 웃지 말라니 웃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표정으로 3년 동안 그 과장을 대했다고 한다.
성용이의 팀장은 업무상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안 물어보면 왜 안 물어보냐고 갈구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물어보면 여기는 돈을 주는 곳이지 학교가 아니라며 내가 니 엄마처럼 모든 걸 다 받아줘야 하냐고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를 했다. 파견 업무가 생기면 성용이를 최우선적으로 일하기 제일 힘든 곳으로 파견 보내고, 사내평가를 가장 낮게 평가해 연봉도 계속 동결시키고, 아무 불평도 하지 않으니 협력업체에서 오는 메일은 성용이에게 넘기며 3년간 가장 일을 많이 시켰다.
거기에 틈만나면 회사 욕과 대표 욕은 얼마나 많이 하는지 대꾸나 맞장구를 칠 수 없는 성용이는 속이 답답해 죽을 뻔했다 한다.
그렇게 별짓을 다했는데도 성용이는 입을 꽉 다물고 버텼다.
성용이는 3년 내내 막내로 있었다. 사람을 안 뽑았던 것은 아니다. 성용이 이전에 있던 사람도 새로 들어온 신입들도 그런 환경이다 보니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 나가버렸다.
그렇게 2년정도 됐을 때 나에게 전화가 왔다.
"선배! 회사에서 주식 상장한다는데 우리사주? 사내 주식? 사라는데 이거 해야 돼요? 말아야 돼요? 물어봐 줘요!"
이런 내용이었다. 난 놀랐다. 어릴 때 엄마 회사가 상장하고 아버지 회사가 상장하면서 사내주식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다다익선이다. 무조건이었다.
'와 일이 이렇게 된다고?'
나는 계속 '되는 일은 그냥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잠깐만 물어보고 나도 조금 알아보고 다시 금방 연락 줄게."
[살 수 있는 만큼 사라고 하라.]
"야 살 수 있는 만큼 사래."
"그래요? 돈이고 뭐고 이러고 살아야 하나? 언제 그만둬야 되나요?"
나는 성용이의 상황을 다 알고 있었다. 성용이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성용이를 응원하기로 했다.
"야 성용이 너 진짜 대단하다. 거의 다했어. 3년 다 돼가네?"
“아 저 농담 아니고 진짜 죽겠어요.”
하며 자신의 상황을 하소연했다. 나는 눈만 꿈뻑 꿈뻑하며 맞장구 쳐주었다. 얼마 후 성용이네 회사는 성용이 입사 딱 3년 차 때 상장했다.
'와 되는 일은 그냥 이렇게 되는구나.'
감탄했다.
그렇게 성용이는 3년 일하고 본인 3년간 동결된 월급을 제외하고 2억 5천만 원 정도를 벌고 3년 칼 퇴사했다.
성용이가 일을 그만둔다고 할 때 회사 대표, 이사님, 부장님, 다른 팀 이사님, 다른 회사 이사님까지 다 성용이를 찾아왔다 한다.
"지금까지 못해준 것 다 (돈과 주식으로) 보상해 줄게. 그러지 마"
"성용 대리! (3년 차 사원인데 대리라 부름) 힘든 거 다 버티고 이제 편해지는데 왜 그래?"
"좀 쉬다가 돌아오세요. 다른 회사 가시면 안 돼요?"
"성용씨 그 팀이 싫으면 우리 팀으로 와."
"나가서 새 회사를 차리려고 하는데 우리 회사로 오시죠?"
3년간 성용이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그만둔다고 하니 와서 갖가지 제의를 했다. 그들도 다 보고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용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일을 그만뒀다. 유럽 4개월 여행한다고 다녀온 후 허벅지에 내가 태어나서 본 물집 중 가장 큰 물집을 가지고 돌아왔다. 물집을 찍은 사진을 보고도 믿기가 어려웠다. 그 정도면 허벅지 절단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놀렸다. 몇 주 고생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주식투자 공부해서 해본다며 전업투자자로 직업을 바꾸었다.
성용이는 내가 보고 싶다고 한번 놀러 온대서 그러라 했더니 다음날 진짜 왔다. 우린 일하러 가는데 빈집에서 혼자 라면 끓여먹고 뜬금없이 1주일 넘게 잘 놀다가 갔다.
성용이의 상황, 성격, 성향에 기가 막히게 들어맞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제일 놀란 것은 나였다.
여기까지가 성용이의 스토리다.
그리고 나와 성용이의 후배 혜수.
혜수의 어릴 적 꿈은 현모양처이다. 대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이 꿈은 항상 누구에게나 말하고 다녔다. 그러나 아주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대학 때 처음 본 혜수는 말로만 전해 들었던 ‘대전차’와 맞먹는다는 여고생의 강력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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