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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라는 것은 참 무섭다.
아니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따먹은 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내가 왜 그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옛날 일 때문에 수고롭게 일해야 하고 여성분들은 애를 아프게 낳아야 하는가? 나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이런 억울함!
이 억울함을 피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 것 같다.
‘저들보다 일찍 태어나는 것!’
그럼 일도 안 하고 에덴동산에서 꿀만 빨다가 갔을 텐데. 저 먼저 태어난 게 나고, 아담 밑으로 태어난 모든 인류가 혜수의 마음일 것이다.
난 성용이의 1년 선배고, 성용이는 혜수의 1년 선배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결과적으로 잘한 것은 딱 하나!
‘성용이보다 먼저 태어난 것!’
혜수는 늦게 그것도 몇 달도 아니고 1년이나 늦게 태어난 큰 원죄를 가진 죄인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지만, 혜수에게는 해산의 고통과 같은 게 성용이의 '말'이다.
성용이는 말을 돌려서 하지 않는다.
성용이가 2학년일 때 신입생 혜수를 울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앞뒤 없이 가서 그랬다 한다.
"야! 너 살 좀 빼."
.
..
...
....
.....
저게 인간의 탈을 쓰고서 할 수 있는 말인가? 저건 낳아준 부모도,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서도 못하는 말 아닐까? 지나가다 뒤에서 짱돌로 찍는 거랑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여튼 성용이는 저렇게 지나가던 혜수에게 짱돌을 던졌다.
이 이야기를 하니까 갑자기 나도 뜨끔하는 게 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부정할 거지만 나에게도 성용이와 비슷한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거지 엄연히 다르다.
학교 처음 가서 신입생이라고 모였는데 같은 수원지역에서 온 동기한테
"야 쟤 마이콜 닮지 않았냐?"
하고 나는 '속삭였다.' 그 애한테 가서 직접 한말이 아니다. 성용이와는 다르다. 이건 누가 봐도 우리끼리 웃고 끝내야 하고 절대 새어나가서는 안 되는 남의 외모를 만화 캐릭터에 빗대어 깎아내리는 저급 유머였다. 근데 이 무뇌 친구는 며칠 뒤 마이콜에게 쪼르르 가서
"야 신일이가 너 마이콜 닮았대!"
한 것이다. 난 이 사실을 몰랐다. 그 후 1년 간 마이콜은 내 인사를 안 받아주고 투명인간 취급을 했다. 전달자인 무뇌 인사는 받아주면서. 마지막 모임이 있던 날 마이콜이 족제비 같은 눈을 하고 나를 흘겨보며 다가왔다.
"야 엄신일! 나 너한테 할 말 있어!"
"응? 뭔데?"
"나한테 왜 그랬어?"
"뭘??"
"(갑자기 엉엉 울면서) 나 초등학교 때부터 고3 때까지 별명이 마이콜이라 대학교 합격하고 머리도 하고 왔는데... 첫 모임에서 니가 나 마이콜이라고..."
"헉! 그.. 그랬어?(무뇌 이 녀석이...)"
이러고 30분간 우는 애 달래주면서 사과했다.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살려달라. 이러면서 '그녀'가 과거 12년 동안 받았던 상처까지도 내가 대신 사과한듯 했다.(별명이 마이콜인데 '그녀'다.)
여튼 그 아이는(무뇌 때문에) 이 사실이 알려지며 초중고 12년에 대학 4년까지 16년을 마이콜로 살게 되었다. (물론 아무도 대놓고 마이콜이라 부르진 않았다.)
써 놓고 보니 결과는 같은 것 같다. 근데 내게 줄 벌은 공범 무뇌에게도 줘야 맞다고 생각한다. 다음 글은 마이콜 양에게 바친다.
20살 두근두근 캠퍼스를 밟으며
CC를 꿈꿨을 마이콜 양!
우리 그 뒤로 친해졌지만
그래도 그때 일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잘 지내지? 진심으로 미안해!
그리고 전국에 계실 마이콜 양들께도
심심한 사과드립니다.
근묵자흑이라고 역시 이 또한 성용이의 잘못이다. 청출어람인가? 여튼 성용이는 나보다 세다. 나는 입으로 훅 부는 독침 수준이라면 성용이는 죽창이다!
이런 '말'로 사람의 상처를 주고 다니던 내 밑에서 자란 성용이가 내 안의 목소리 테스트를 자진해서 받아보겠다고 하며 벌어진 일이다.
다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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