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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freeboard_2006052
    작성자 : 오씨
    추천 : 2
    조회수 : 442
    IP : 172.71.***.168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23/04/20 04:44:42
    http://todayhumor.com/?freeboard_2006052 모바일
    아버지
    나에게 아버지는 55세였다. 마지막으로 세어본 아버지의 연세였다.

    다른 아들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썩 좋은 아들은 아니었다. 술을 드신 아버지가 나를 블러 앉혀 이야기하는 5분이 싫었다. 원래 오씨 집안은 서로 길게 대화하는 거 아니라며 5분 정도면 늘 날 돌려보내셨다. 때로 이야기가 길어질 때면 어머니가 날 방으로 돌려보내곤 했다. 담배연기를 뿜으며, 그런 어머니를 노려보시던, 술에 취해 반쯤 잠긴 그 눈이 아직 선하다. 

    가족들은 직장을 잡아 남쪽 육지 끝으로 갔고, 나 홀로 서울에 남게 되었다. 몇 번의 숨바꼭질과 입원치료도 있었다곤 했지만 난 본능적으로 발을 뺐다. 남은 가족들이 걱정도 되었지만 내 안위가 우선이었다. 그러던 때, 어떻게 차로 4시간이 넘는 거리를 무탈히 오셨는지도 모르겠지만, 술에 취해 서울집 현관 비밀번호를 못 누르고 누워계신 아버지와 맞닥뜨렸다. 늘 깔끔하던 수염은 덥수룩했고, 몇년여 만에 만난 아버지는 내 예전 기억 속의 40대가 아니었다. 

    무사하시단 소식을 전화로 전한 뒤, 한 시간 안 있어 병원에서 사람들을 보냈으니 보호자로 같이 따라 나서라던 어머니의 전화가 왔다. 통상 입원하러 갈 때엔 저항이 심한 건지, 집에서부터 직원들이 대동하였다. 그런 분이 아니시라고 누차 말했지만, 자꾸만 끌고가려는 그 사람들이 되려 무서웠다. 3시간 정도를 달려 어두운 시골 국도로 빠졌고, 아버지는 그제서야 몇 번 온 듯한 낯익은 풍경에 정신이 들고 놀라셨는지 도로 한복판에서 문을 열고 뛰쳐나가셨다. 긴 실랑이 끝에 다시 직원들에게 양팔을 잡혀 정차된 엠블런스로 걸어가시던 뒷모습을 보며, 난 도로 한 켠에 서서 왜 때문인지 모를 눈물을 닦으며 담배를 물었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보다도 이런 일을 몇 번 겪었을 누나에 대한 미안함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뒤를 돌아, 담배를 피는 내 모습을 처음으로 낯설게 바라보시다가 스스로 차로 걸어가셨다.

    입원절차 서류를 쓰며, 얼마만에 세어보는 아버지 나이였는지. 내 나이에 아버지 출생연도를 빼어가며 더한 숫자가 55 였다. 아버지의 성씨와 내 성씨가 같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언제나 집에서 멀어지기 위해 본능적으로 도망쳐다녔고, 10년이 조금 안되던 대학원 생활은 나를 모든 면에서 무디게 만들었다. 내가 갖고 있던 머릿속 기억들은 모두 날려버리고, 꾸역꾸역 새로운 지식들과 고통들로 내 몸을 채워나갔다. 그 편이 나에겐 적성이 맞았다. 

    2년 전 처음 사회에 발을 들였다. 어느덧 서른 후반의 나이에 이제는 꾸역꾸역 내 머릿속에 우겨넣으며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였다. 아버지는 4기 대장암 선고를 받으셨다. 내가 딱히 무엇을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고생이었다. 어떻게 평생 가슴앓이를 했는데도 저렇게까지 아버지를 잘 챙길까 하는 의구심이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었다. 역시 나는 그대로였다. 

    2023년 4월 8일  10시 57분. 우리 아버지의 나이는 향년 66세였다. 

    서울집에 겸사겸사 일이 있어 들렀다. 아버지 옷장도 겸사겸사 정리하려고 했다. 빈티지 가게가 여기있었네.. 

    1993년도에 만들어진 맞춤정장. 나는 8살이었다. 정확히 30년 뒤, 원단이 좋아서 그런가 꽤 괜찮네 하며 웃으며 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렇게 집에서 나오던 길, 나는 결국 같이 따라온 아내를 안고 펑펑 울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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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4/20 05:40:07  172.70.***.147  하얀갈대1  515763
    [2] 2023/04/20 07:12:31  211.173.***.86  쏘야는빨개요  773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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