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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ID : freeboard_1736580
    작성자 : 밋밋한
    추천 : 5
    조회수 : 382
    IP : 119.56.***.210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8/04/16 01:11:34
    http://todayhumor.com/?freeboard_1736580 모바일
    밤에는 안개 속에 서 있었어요
    밤에는 안개 속에 서 있었어요

    생각했어요
    요즘에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곳에서도 머리카락은 자라고
    옷은 작아니지니까요

    아침에는 엄마
    나는 두부
    생각해요

    왜 있잖아요
    그날 엄마랑 나랑 해먹었잖아요
    두부를 으깨서
    채소를 넣고
    동그랗게 빚어서
    튀겨 먹었잖아요
    막 웃음 나는 두부고로케

    그곳에서는
    한 번도
    두부에 관해 생걱해볼 시간이 없었는데

    씻을 때는 랩을 해야 했으니까
    과학적인 교복을 입어야 했으니까
    운동장을 누벼야 했으니까
    두 발은 저절로 달려야 했으니까
    형한테 맛있는 걸 만들어줘야 했으니까
    엄마 옆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비밀이어야 했으니까
    파란색을 보면 마음이 펼쳐져서 다리가 길어졌으니까
    그냥 웃기에도 바쁜 나이였으니까

    그런데 엄마
    나도 나이를 먹긴 먹나 봐요
    (이런 말 엄마 앞에서 해서 미안)

    안개를 앞세우고 달려나가는 것도 좋지만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안개 속의 풍경을 보는 일도 가슴에 들어와요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엄마가 매일 새벽 기도를 나가서
    형 대신에 나를 위해 기도하면 어떡하지

    엄마는 야근하고 와서도
    슬픔의 걸레질을 멈추지 않고
    국자마다 눈물을 떨어트릴 텐데
    거기에 밥을 말아 놓고 식어버릴 텐데

    잘 먹었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아들의 말이 적힌 종이가 식탁 위에 없을 때
    엄마는
    어떻게 엄마답지 않은 표정을 지을까

    야야 투레를 보고도 야야 투레를 못 보는 엄마에게
    저 선수가 야야 투레야 라고 말해줄 사람은 있을까
    (형, 형이 나 대신 엄마에게 잘 말해줘. 형은 언어 천재니까!)

    형은 내가 좋아하던 옷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이곳으로 모두 보내준 걸까
    그 작은 옷을 그 큰 옷을 그 웃는 옷을 그 소란스러운 옷들을

    형은 지금도 기숙사에서 공부하는 사람일까
    조용한 형은
    약한 사람들의 역사를 생각하는 진실한 사람이 되어줄 수 있겠지
    형에게도 어린 형이던 시절이 있었고
    형은 동생이랑 보드게임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니까

    아빠는 지금도
    나한테 잘해준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까
    내가 아빠 마음 먹고
    날다람쥐처럼 산을 잘 탔던 것도 모르고
    (아빠, 엄마 옆에서는 매일 잘해준 게 많은 아빠로 있어 줘)

    아빠
    나는 아빠 등이 나랑 가까워서
    넓은 힘이 났는데
    내 등도 아빠에게 가까웠을까

    엄마, 봐봐
    나 이렇게나 생각이 많아요
    어른 되나 봐
    엄마, 두부 좋지요?
    두부를 가만히 본 적 있지요?
    내 생각하면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희고 물렁물렁하고
    약하고 따뜻하고
    살아 있는거

    나 같고
    엄마 같고
    아빠 같고
    형 같고
    친구들 같은 거

    한 입 먹으면
    슬픔이 없어지고
    한 모를 다 먹으면
    새사람이 되어버리는 거

    엄마, 두부를 먹으면 새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생각해보면 엄마, 아빠, 형, 친구들어
    두부를 먹을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우리는
    아무래도 미래를 가진 종족들인가 봐

    나?
    나는
    나에게도 미래가 있어요
    엄마, 나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런 말을 하면 엄마는
    너는 어쩌면 이렇데 예쁘냐고 하겠죠
    봐요, 나 미래 알아요

    그러니까 엄마
    두부를 먹을 때는
    나를 생각해주세요

    우리 아들 같다
    너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엄마의 두손에
    엄마의 두부에
    엄마의 된장찌개에
    엄마의 시금치무침에
    엄마의 불고기에 있으니까
    엄마 곁에
    아빠 곁에
    형들 곁에
    친구들 곁에
    미래처럼 있으니까
    두부고로케처럼 있으니까

    엄마, 나 지금 걸어가요
    그곳으로
    다 모인다고 했으니까
    오늘은 혼자 가지 않아요
    내 옆에 작고 파란 강아지
    이름은 한슬이에요
    엄마가 예쁘다고 했잖아요, 그 이름
    그곳에서 버려진 강아지라는데
    병들어서 이곳에 온 강아지라는데 나는 좋아
    나도 처음에는 약한 아이였으니까
    한슬이가 다 크면
    나도 엄마랑 아빠랑 같은 크기의 마음을 갖게 되면 좋겠어요
    그게 내 첫 번째 생일 소원

    그리고 엄마
    언제 와용?
    더는 못 해줘서 미안해
    아빠
    같이 수암봉 못 가게 돼서 미안해

    라면에 계란 넣고 끓여주지 못해 미안
    친구들아
    이 형이 랩 못 들려줘서 미안


    앞으로는
    미안하다는 말 안 들려줄래
    마지막으로 모두 미안
    자, 그럼 이제
    아무도 미안해하지 않기
    미안한 눈빛은 속눈썹 뒤로 숨기기
    내 두 번째 소원

    엄마, 엄마라고 부르면
    왠지 두부라고 대답할 것 같은 엄마

    여기서 거기까지 안개가 길어요
    생일 초에 불을 붙여주면
    내가 그 빛 보고 갈까요
    가서 얼른

    불어 끌게요

    가면서 생각할래요
    나는 기쁨의 생각이니까
    나는 기쁨의 진실이니까

    나는 기쁨의 트레이닝복
    나는 기쁨의 발냄새니까

    나는
    기쁨의 생일케이크
    기쁨의 우주과학자
    기쁨의 쇼미더머니

    나는
    기쁨의 2월 19일

    나는
    기쁨의 영만이니까

    (모두 지금 소리 질러!) 
    출처 기쁨의 두부고로케
    -김현-

    걱정말고 다녀와 (84~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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