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 </div> <div>워마드에서 기획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착잡해져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도 많이 했지만,</div> <div>그래도 꽃 한 송이 두고 싶은 마음에 아는 동생과 함께 추모공간을 찾았습니다.</div> <div> </div> <div>보통 꽃집에서 국화를 파실지 어떨지 몰라 혹시 흰 꽃이 있느냐고 여쭤 보니 지금은 백합만 남아 있다고 하시더라고요.</div> <div>두 송이 사들고 사람 인파를 헤쳐 가며 10번 출구로 향하는데, 갑자기 겁도 나고 무섭기도 하고.</div> <div>포장된 백합 송이들을 보고 거기 가나보다, 남성혐오자인가? 메갈인가? 할까봐 움츠러들기도 했고</div> <div>추모하는 사람들 중 여성을 노려 범행을 하겠다는 일베 글 스샷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div> <div>마스크를 나눠준다고 해도 쓰진 않겠다고 나름 단단히 각오를 했는데도 대로변을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이 왜 이렇게 길던지.</div> <div> </div> <div>사람이 정말 많더라고요. 방송 삼사 카메라는 다 모인 것 같았고 (물론 확인은 제대로 안 해봤어요)</div> <div>개인적으로도 카메라를 들고 와 찍는 분, 포스트잇에 뭔가 적어 붙이고 계신 분, 헌화를 하시는 분, 근처에 서서 글들을 읽고 계신 분.</div> <div>10번 입구에서 바로 나와 보이는 곳이 가장 포스트잇이 다닥다닥 많이 붙어있었고, 근조 화환을 설치한 쪽에 가서는 좀 뜸했어요. </div> <div>거기서는 뭔가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기획한 곳에서 서명도 받는 듯 해서 일부러 넘겼고.</div> <div> </div> <div>포스트잇에 뭐라고 쓸지 참 고민되더라고요.</div> <div>"살女주세요, 너는 살아男았잖아", "남자라서 죽였다", "또 한남이 죽였다" ... 눈에 띄는 글들 때문에 더 읽고 싶지가 않아 그만뒀어요.</div> <div>그렇게나 포스트잇이 많이 붙여져 있는데... 정말로 피해자를 위로하는 말은 얼마나 있을까 싶고.</div> <div> </div> <div>어떻게 말 한마디 나오지도 않고,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없더라고요. </div> <div>딱 저랑 동갑이었거든요. 그렇게 간 사람이요. </div> <div> </div> <div>"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문구를 내건 워마드의 기획에 동참하는 것 같아 꺼내기 어려운 말이지만,</div> <div>처음 기사를 들을 때부터 그 생각이 떠나지 않더라구요. 그 때 내가 그 곳에 있었으면 그날 쓰러진 건 나였겠구나.</div> <div>CCTV영상에 찍힌 충격을 받은 남자친구의 뒷모습을 보고선 더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사이에,</div> <div>내 소중한 사람들이, 내 친구가 그렇게 갈 수도 있었구나. 나는 손 쓸수도 없이 그저 소식을 전해받을 수도 있었구나 하고. 그게 너무 아팠어요.</div> <div> </div> <div>그런데 그 사건만큼이나 충격적인 건, 이 모든 분위기예요.</div> <div>그 앞에서 각도 맞춰가며 셀카 찍고 있더라고요. 지나가던 어떤 어르신은 여자가 새벽 한 시에 돌아다니니 그렇지, 하고 내뱉었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과 큰 소리가 몇번 오갔어요. 소란이 나니까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근처에 있었는데도 다가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감에 허우적대는 느낌이었어요. 그냥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그 난리통을 지켜보는데.</div> <div> </div> <div>이 사건을 여성혐오 사건이 아니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여성혐오범죄가 맞고, 약자에 대한 범죄도 맞다고 생각합니다.</div> <div>다만 남자가 죽였다는 포스트잇이 붙여지고, 그 위에 메갈들 뒤지라는 포스트잇으로 또 덮이고,</div> <div>남성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니 남성은 나서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추모하는 여성을 골라 스토킹하거나 범행을 계획하겠다는 글이 올라오고.</div> <div>그 앞에서 제 감성을 자랑하는 양, 인증 사진인 양 사진 찍는 데 열 올리는 사람들이 있고.</div> <div> </div> <div>영화 <동주>에서요. 그런 대사가 있었습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고 시인이 되기를 바란 것이 부끄럽다"고요.</div> <div>딱 그런 기분이더라고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오롯한 추모조차 건넬 수 없는 세상에서, 그래도 나는 살아야겠다고 두 발을 붙이고 사는게, 그 모든 것들에 화를 낼 수 없는게, 바로잡을 용기 같은 건 없는게 더 없이 죄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가 않고.</div> <div> </div> <div> </div> <div>그저 착잡합니다.</div> <div> </div> <div> </div>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