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출근하자마자 원장의 성난 얼굴이 날 맞이했다.</div> <div> </div> <div>그녀는 화가 나면 늘 그렇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콧볼을 벌렁거렸다. </div> <div> </div> <div>그리고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따지듯 첫 말문을 열었다.</div> <div> </div> <div>"선생님아, 너 정산 처리를 어떻게 한거니?"</div> <div> </div> <div>정산처리는 내가 어떻게 할 것이 없다. </div> <div> </div> <div>원생들이 카드로 출석 체크를 하면 자동으로 전산이 출석률을 계산해 학원에 지급될 훈련비를 계산한다.</div> <div> </div> <div>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아니다.</div> <div> </div> <div>그럼에도 그 모든 독박은 나에게 쏟아진다.</div> <div> </div> <div>어제 뇌 내시경 검사때문에 입원한 아빠때문에 하루 쉰 사이 많이 바빴다고들 하더니. 저것 때문이었나보다.</div> <div> </div> <div>난 다시 계산해보겠노라 말하고 아홉시 반부터 열 두시까지, 오전 내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비는 것인지 찾아내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div> <div> </div> <div>늘 그렇듯이 커다란 문제의 원인은 별것도 아닌 작은 일이다.</div> <div> </div> <div>실업자 내일배움 카드로 등록했다가 취소한 한 사람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div> <div> </div> <div>취소된 대금이 나중에 한꺼번에 빠져나가 딱 그만큼 돈이 조금 비었던 것이다.</div> <div> </div> <div>일을 하나 해결하고 나자 원장실로 불려가 한시간 가까이 혼났다.</div> <div> </div> <div>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내가 이렇게 자꾸 너를 부른다는 것은 니가 일을 아주 잘못 하고 있다는 뜻이야.'</div> <div> </div> <div>그렇게 꼬우면 그냥 자르고 다른 사람 구하면 되지 뭐하러 계속 끼고 일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친다.</div> <div> </div> <div>이 학원에 들어와 알게 된 바에 의하면 난 상담(원생 등록)도 못하고, 정산도 못하고, 홍보도 못하고, 시간표도 못 짠다.</div> <div> </div> <div>학원에 필요한 주요 업무를 취직하고 삼 개월이 넘도록 하나도 못 하고 있는 것이다.</div> <div> </div> <div>내가 참 쓸모 없는 인간같다는 생각이 든다.</div> <div> </div> <div>하루 종일 우울하다.</div> <div> </div> <div>이렇게 이 일도 저 일도 제대로 못하고 여기 저기서 쓸모 없다는 소리만 듣느니, 차라리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 지구에 도움이 되는 일 같기도 하다.</div> <div> </div> <div>나는 정말이지, 잘난 부분이라곤 하나 없어서 억지로 잘나보이려고 자존심은 죽어도 안굽히려 드는, 그런 못난 사람이다.</div> <div> </div> <div>이렇게 나 자신을 까발리고 나니 조금은 후련하다.</div> <div> </div> <div>하루 하루 제대로 할 줄 아는 일도 없으면서 직장에 죽치고 앉아 시간만 보내는 나라는 존재가 거대한 애벌레같이 느껴진다.</div> <div> </div> <div>그러나 어쩌랴. 살아가려면 별 수 없는 것을. </div> <div> </div> <div>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더더욱 '그럼 죽으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div> <div> </div> <div>그런데 과연, 그게 정답일까.</div> <div> </div> <div>정말 죽으면 다일까.</div> <div> </div> <div>그건 정말 이기적인 결정인 것 같다. </div> <div> </div> <div>죽으면 나야 편하겠지만, 평생 가슴아파할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차마 못할 짓인 것 같다.</div> <div> </div> <div>그리고 죽는 것은, 비겁한 행동 같기도 하다.</div> <div> </div> <div>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극단적 회피를 선택하는 비겁함일 뿐이다.</div> <div> </div> <div>그렇다면 난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해본다.</div> <div> </div> <div>그러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div> <div> </div> <div>'내가 정말 쓸모없는 존재일까'</div> <div> </div> <div>내 마음은 이렇게 대답했다.</div> <div> </div> <div>'실수에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대처할 수 있을 때, 우린 '익숙해졌다'고 하는 거야.</div> <div> 실수가 없길 바라는 건 완벽주의고, 그건 너 스스로를 아프게 할 뿐이야.'</div> <div> </div> <div>'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어.</div> <div> 지금 너는 분명 처음보다 나아. </div> <div>네가 보잘것 없다는 바깥 소리에 귀기울여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마. </div> <div>넌 그보단 더 나은 아이니까. '</div> <div> </div> <div>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div> <div> </div> <div>나는 비록 비겁하고 저열하지만, 스스로를 낮추는 것 외에는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못난이지만, 그럼에도 난 분명 나아지고 있다고.</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