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리스에 살고 있습니다. <div>작년 2월에 여기에 왔으니 일년하고도 한 5개월이 다 되어가네요.</div> <div><br></div> <div>처음 그리스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div> <div>'거기 요즘 힘들다던데 가도 괜찮겠냐'</div> <div>였습니다.</div> <div>오퍼받았던 급여의 액수가 한국에서 비슷한 경력으로 얻을 수 있는 급여를 꽤 웃돌았고</div> <div>유럽연합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계약기간동안 안정성도 있다고 판단하고 주저없이 넘어왔습니다.</div> <div><br></div> <div>처음 그리스에 와서 받은 인상은,</div> <div>밖에선 나라가 곧 망하네 마네 하는데 정작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놀거 다 놀고 먹을거 다 먹으면서 즐겁게 지낸다는 점이었습니다.</div> <div><div>한국에선 주변에서 손꼽을 정도로 느긋하고 게으르게 일하던 제가</div> <div>이곳에 오니 하루아침에 모든 일을 눈깜짝 새에 하는 능력자가 되어 보스의 인정을 한몸에 받으면서</div></div> <div>남유럽 사람들이 대체로 게으르다는 편견까지 덧입혀져, 세상물정 모르는 낙관주의자 정도로 바라본 적도 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러기를 몇 개월, 그리스 생활에 조금 익숙해지고 이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생각하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div> <div>요즘 몇몇 보도에서 나오듯 그리스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 못지않게 길게 일합니다.</div> <div>대부분의 상점과 공기관들은 아침 여덟시 혹은 그보다 일찍 문을 열어<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 오후 세시까지 점심시간이 없이 일합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월, 수, 토요일은 그렇게 문을 닫지만, 화, 목, 금요일은 이르면 다섯시, 늦어도 여섯시엔 다시 문을 열어 아홉시까지 다시 일합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일요일은 커피숍과 중심가의 식당을 제외한 모든 가게가 문을 닫습니다만,</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빵집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홉시는 넘어야 모든 가게가 문을 열기 시작하고, 해가 지기 전에 퇴근하는 다른 중북부의 유럽 나라들에 비해선 노동시간이 꽤 깁니다.</span></div> <div>물론 아침 아홉시에 출근해 밤 아홉시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추가 근로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하는 한국인에 비해선 새발의 피겠지만요.</div> <div><br></div> <div>그치만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오늘 보니 크루그먼도 그런 취지의 말을 했더군요)</div> <div>'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 노동시간이 긴 만큼 그리스인들은 게으르지 않다'라는 명제는 어떤 측면에서 사실이 아닙니다.</div> <div>그리스의 노동자들은 긴 근로시간에 비해 노동효율성이 매우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div> <div>친구와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스사람들은,</div> <div>업무의 순서에 있어 내 앞에 있는 손님 혹은 민원인보다 나에게 전화해준 친구와 가족과 통화하는 것이 우선이고</div> <div>공기관이든 민간회사든 할 것 없이 아는 사람이 있으면 모든 대기자를 제치고 프리패스로 일처리를 할 수 있습니다.</div> <div>혹여 그렇지 않더라도, 공공질서도 엉망이라 무턱대고 인파를 헤치고 새치기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해서</div> <div>어떤 그리스인은 줄서있는 저에게 '앞으로 밀고 들어가지 않으면 너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한다'며 조언해준 일도 있습니다.</div> <div><br></div> <div>그렇지만, 모 국회의원의 말대로 이런 그리스인들의 생활태도는 복지 때문이 아닙니다.</div> <div>아마도 그 원인을 찾기 위해선 제레드 다이아몬드 석학께서 폴리네시아와 파푸아뉴기니에서 하셨던 것 처럼 인류학적, 역사적, 진화론적인 관점을 통합한 연구가 필요하겠죠.</div> <div>쉽게 말해 그냥 이 사람들은 이런겁니다.</div> <div>간혹 한국처럼 치열하고 꼼꼼한 나라에서 익숙해진 저란 사람은 화도 나도 답답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싶은 방식대로 살 권리도 자유도 있습니다.</div> <div>남의 나라에서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라 하고 강요할 수 없는 일입니다.</div> <div>그게 비록, 많은 돈을 빌려준 IMF와 유럽연합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죠.</div> <div><br></div> <div>현재 그리스의 국민들은 대부분 실업에 고통받고 있습니다.</div> <div>당장 제가 일하고 있는 대학교만해도 30대에 육박한 학생들이 버글버글합니다.</div> <div>그리스의 교육비는 대학교는 물론 모든 대학원과정도 전액 무료인지라 (심지어 교재도 제공합니다.)</div> <div>학교를 나가 일할 곳이 없는 젊은이들이 돈이 들지 않는 학교에 늦게까지 묶여있는 겁니다.</div> <div>학생 신분을 유지하면 그리스에선 모든 것이 거의 반값이라, 생활비가 절감되기 때문입니다.</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나마 내집 한채 가지고 이 일 저 일 하면서 살던 사람들도 몇년 사이에 치솟은 세금 때문에 </span><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감당할 수 없는 부담에 허덕이고 있구요.</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이렇게 아들 딸은 실업자에, 손자 손녀는 아직도 학생인 가정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퇴직 연금과 실업연금이 가계수입의 전부라고해도 무방합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이런 상태에서 IMF의 연금 추가삭감안은 그리스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간혹 '남의 돈 빌려 썼으면 갚던가 못갚으면 시키는대로 할 것이지 말이 많다'는 소시를 심심치않게 듣는데요,</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우리가 외환위기 시절에 채권자인 IMF의 모든 요구를 성실히 이행하고 국민들의 고혈을 쥐어짜 결국 (겉보기에) 극복한 것에 비교하기도 했습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하지만 우리때와는 역시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애초에 구제금융을 받게 된 상황은 그리스인들이 스스로 만든 일이 맞습니다.</div> <div>오랜기간 지속된 2정당 독재정부는 선거를 통한 독재를 지속하고자 공수표를 남발하며 없는 기관을 만들어가면서 지지자들을 모두 공무원으로 채용하며</div> <div>수십년에 걸쳐 부패한 정부를 방치해왔고,</div> <div>그리스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기간산업인 농업과 관광산업에는 투자하지 않은 채</div> <div>100주년 올림픽을 개최한다고 무계획적으로 유로존에 가입하는 한편 막대한 빚을 끌어와 국가부채를 가속화 시켰습니다.</div> <div>친구들에게 듣기론, 당시에 유로존에 가입하며 무리하게 화폐개혁을 하는 와중에 물가가 3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하더군요.</div> <div>생각해보십시오. 어제까지만해도 천원하던 김밥이 하루아침에 삼천원이 되는 아비규환을요.</div> <div><br></div> <div>지금 그리스국민들이 뱅크런 사태를 일으킨 주요한 원인은 이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div> <div>1. 거의 유일한 안정수입원인 연금 감축에 대한 불안감.</div> <div>2. 유로존 탈퇴에 따른 급격한 물가변동에 대한 불안감.</div> <div>이러한 국민들의 불안함에 치프라스와 시리자 내각은 국민들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명확하게 대답하는 대신</div> <div>협상상대를 비난하고 자극적인 언어의 사용으로 국민들에게 반외세 감정을 부추기고 있습니다.</div> <div>전 주변에서 알아주는 빨갱이임에도 불구하고,</div> <div>외국인의 시각에서 볼 때 시리자와 치프라스는 무능한 좌파의 포퓰리즘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div> <div><br></div> <div>이번 구제금융 협상과 관련해 그리스인들은 서로 이견이 갈리고 있습니다.</div> <div>하지만 불과 일주일 전 까지만해도 치프라스의 그리스 정부와 유럽연합 및 유럽중앙은행이 서로 의견차이를 줄여가며 합의안에 도출할 것으로 보이던 분위기가</div> <div>IMF의 난데없는 무리한 요구에 파토가 나자 모두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음은 공통입니다.</div> <div>어떤 사람들은 치프라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한편, 어떤 사람들은 IMF와 유럽연합에 분노하고 있습니다.</div> <div>그만큼 다가올 국민투표의 결과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안개속에 있습니다.</div> <div>하지만 분명한건 국민투표의 결과가 무엇이냐에 상관없이 그리스는 더욱 안좋은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div> <div><br></div> <div>최근의 외신과 그 외신을 베껴쓰는 국내언론의 수박 겉핥기식 분석을 보고있자니 답답한 마음에 굉장히 두서없는 글을 싸지르고야 말았습니다.</div> <div>혹시 추가로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혹시 모르면 주변에 물어봐서) 답해드리겠습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