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22일 월요일</div> <div> </div> <div>평소대로 사무실에서 주변을 살피며 오유를 눈팅하며 있었다. "뽁..뽁. 뽁.." 익숙한 슬리퍼 소리 부장님이다! 나는 능숙하게 ALT + TAB을 누르고 </div> <div>열심히 기획안을 작성 중인 회사의 매출과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부장님의 발걸음이 내 뒤에서 멈췄다. </div> <div> </div> <div>"성과장.. 미안한 부탁 하나 해야겠는데, 혹시 내일 대구 출장 가능하겠어? 1박 2일로 다녀와야 할 거 같은데.."</div> <div> </div> <div>낯선 곳에서 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리 내키지는 않았지만, 웬만하면 내게 부탁을 하지 않는 착한 케인 같은 부장님이라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div> <div>결국 1박 2일 대구 출장을 가기로 했다. 와이프에게 출장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는 내게 </div> <div> </div> <div>"회사에서 가라고 하는 건데 어쩔 수 없지.. 오빠 밤에 게임 실컷 할 수 있어서 좋겠네~" 라고 했다.</div> <div> </div> <div>게임은 전혀 생각 못 했는데.. 2월 22일... 오후 머릿속에 한동안 봉인했던 외침이 울렸다.</div> <div> </div> <div>"외쳐 EE!!!!" </div> <div> </div> <div>23일 화요일</div> <div> </div> <div>부푼 꿈을 안고 디아블로의 새로운 성지가 될 거라 예감한 대구에 내려왔다. 예상보다 일이 빠르게 진행됐다. </div> <div>대구에서 일 때문에 만난 분이 저녁을 먹자 했지만, 그는 내가 멀리 서울에서 왔기에 "예의상" 밥 이야기를 꺼낸 것을 알고 있었다.</div> <div>그의 호의를 정중하게 거절하고 그와 헤어진 뒤 숙소를 잡은 뒤 저녁을 먹기 위해 나섰다. 대구하면 역시 막창이지.. 하면서 막창집으로 </div> <div>발길을 향했다. 혼자 막창을 구워 먹은 지 얼마 만인가.. 아... 처음이구나.. 해낼 수 있을 거야..</div> <div>식당의 모든 사람이 혼자 막창을 구워 먹는 나를 한 번씩 바라봤다. 그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태국 아저씨가 혼자 대구 여행 와서 막창 </div> <div>구워 먹는구나..'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오래간만에 먹는 막창과 서울에서 보지 못한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은 괜찮았다. 하지만 막창 특유의 </div> <div>기름기가 약간 느끼했다. '1병 정도는 괜찮겠지..' 느끼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 소주 반병을 마셨다. 이런 최고의 안주에 소주를 반 병 밖에 </div> <div>마시지 않는 건 고대 전설 아즈 주먹을 생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잊힌 영혼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와 같은 큰 결례와 같았지만</div> <div>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더 강해지고 싶은 대머리 수도사 때문에 참았다. 하지만 이게 모든 일의 화근이 될 줄이야...</div> <div> </div> <div>배를 어느 정도 채운 뒤 기분 좋게 피시방으로 달려갔다. 나의 대머리 수도사는 '오늘은 아즈 주먹 주실 건가요?'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div> <div>있었다. '그럼... 오늘은 내가 꼭 자네한테 아즈 주먹을 챙겨줄게..' 라고 다짐했다. </div> <div>차원균열 공개방에서 남들은 뛰어다니는데 혼자 도도하게 말 타고 다니는 디아블로의 금수저 성기사와 저렇게 굴러다니다 멀미나는 거 아니야..</div> <div>라고 걱정될 만큼 쉴 새 없이 굴러다니는 악마사냥꾼, 그리고 방금 눈앞에 뭐가 휙 하고 지나갔는데.. 아! 법사였구나.. 그들 사이에서 나의 대머리 </div> <div>수도사는 묵묵히 달렸다. 나의 컨트롤이 시원찮은지 진격타로는 그들의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1시간 넘게 그들 사이에서 </div> <div>건진 거라고는 없었다. 조금씩 지쳐가고 아니 지루해지기 시작했다.</div> <div> </div> <div>그때 예전 오유에 썼던 글의 댓글 중에 하드코어가 진정한 디아블로를 즐기는 것이라는 댓글이 기억났다.</div> <div> </div> <div>"그래 나도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보자! 디아블로의 꽃 하드코어로!" </div> <div> </div> <div>하드코어라는 단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야동 때문인지 약간 거부감은 들었지만 큰 고민 없이 평소 해보고 싶었던 부두술사 여성을 </div> <div>클릭했다. 이름을 뭐로 지을까.. 비욘세? 학창시절 내 심장을 벌렁이게 하던 나오미 캠벨? 생긴 거 답지 않게 말도 잘하는 타이라 뱅크스? 한동안 </div> <div>진지하게 고민하다 '예쁜이' 라고 지어줬다. </div> <div>사람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그리고 가지지 않고 태어나는데, 예쁜이는 적어도 주요 부위는 가리고 (굳이 가리지 않아도 되는데...) 빨대 하나는 </div> <div>들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녀는 처음 만난 좀비들을 향해 빨대를 들고 가래침 아니 독침을 퉤퉤 뱉어댔고, 무사히 마을로 도착했다.</div> <div>잠시 담배를 피우며 "이건 하드코어야.. 한 번 죽으면 끝이라고.. 신중하게 하자!" 라며 다짐했다.</div> <div>좀비들개와 덩치를 소환하는 부두술사는 굳이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도 몹들을 처치해서 그런지 그동안 몹들에게 맞으면서 성장하는 수도사와 </div> <div>다르게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물론 하드코어라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몹들을 이끌고 마라톤도 하고 죽을 위기가 닥치면 잠시 게임을 멈추고 </div> <div>살아남을 궁리를 한 뒤 집중해서 몇 번의 위기탈출 no.1의 한 장면들을 연출하기는 했지만 전율로 느껴지고 재미있었다.</div> <div> </div> <div>흰색 아이템을 입혀줘도 내게 고마워하던 영유아 시기를 거쳐 예쁜이는 노란 아이템 최소 파란 아이템을 요구하는 사춘기 10대 시절을 거쳐 </div> <div>드디어 20대 처자로 성장했다. 대머리 수도사 오빠는 20대일 때 전설이 없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쁜이는 전설 아이템도 보유하고 있고 발컨 </div> <div>아빠 밑에서 죽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줘서 고마울뿐이었다. </div> <div>드디어 2막의 보스 벨리알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지금 상태에서 왕궁을 찾아가는 것은 불경인 거 같아 좀 더 성숙한 여인의 자세로 찾아뵙기 위해</div> <div>몹들이 비교적 많아 렙업에 도움이 될 거 같은 황량한 사막을 찾아갔다. 덩치와 개떼는 열심히 싸웠고 예쁜이는 뒤에서 열심히 빨대로</div> <div>독침을 내뱉었다.. 예쁜이는 그렇게 황량한 사막에서 열심히 성장하고 있을 때 저녁에 마신 소주 반병 때문인지 아니면 낯선 타지에서 오후에 </div> <div>헤매고 다니면서 체력이 방전되었는지 현실에서 혼령걸음을 시전했다. 무슨 꿈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손에 뭔가 축축한 게 느껴져 </div> <div>'에이 침흘렸네.. 하며' 눈을 떴을 때 모니터에는 </div> <div> </div> <div><strong><font>죽었습니다 </font></strong></div> <div><strong><font>당신의 위대한 용기는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font></strong></div> <div> </div> <div>라는 글이 있었다.</div> <div>나는 위대한 용기도 없고 기억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 예쁜이 살려내라!! 라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캐릭터 선택 창으로 갔을 때 이제 꽃다운</div> <div>23살에 아빠를 잘못 만나 삼도천을 외롭게 건넌 (그래도 좀비들개하고 덩치가 있어서 다른 캐릭보다는 덜 외로웠을 것이다.) 예쁜이가</div> <div>처녀 귀신이 되어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div> <div> </div> <div>아오.. 시발 떨리는 흑백화면이 무서워서 바지에 쉬할 뻔했다.. </div> <div> </div> <div>미안해 예쁜아.... 아빠가 시즌에서 부활시켜줄게.. ㅠ,ㅠ</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