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의 '비판'의 편지는 2부의 조 원장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373 페이지에는 그간 조 원장이 보여준 위선과 무능력, 선동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가 처음에 조 원장을 과거의 원장들과는

성격이 다른 인물이라고 설명한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374 페이지의 '그 지배자가 최초에는 아무리 성실한 인간성과 선의의 명분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1부의 우직했던 조 원장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러던 그가 2부에서는 어느새 교활하고 위선적인 인물로 변해 있었습니다.

이렇게 작가는 견제받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는 어떤 성격의 지배자라도 결국

동상을 향한 욕망에 함몰되어 독재자로 변하고 만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 것 같습니다.

독재가 완성되는 데는 지배자 개인의 품성보다는 시스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지배자 개인이 아무리 독선적이라도 그것을 잘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만 갇추어져 있다면 독재자는 탄생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됩니다.

저는 당시 박정희 군사독재를 보면서 작가 이청준 씨가 우리 사회에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욱의 비판이 끝나자 다시 이정태가 조 원장을 옹호하고 나섭니다.

이렇게 조 원장을 사이에 두고 이상욱은 비판하고 이정태는 옹호하는데,

이건 매우 이상한 설정입니다.

어느 쪽이 소설의 주제이든 다른 한 명이 그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 둘이 함께 조 원장을 훔쳐보면서

소설이 끝납니다.

이 장면에서도 저는 이상욱이 작품의 주제를 제시하고 있고, 이정태의 발언은

소설 때문에 곤란해진 조창원 원장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계속해서 자유, 사랑, 믿음 등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제가 정말 궁금한 것은, 과연 저런 것들이 2부에 존재하기나 했었습니까?

정말 조 원장이 원생들을 사랑으로 이끌었었습니까?

정말 원생들이 자유를 가지고 조 원장을 따르기로 선택했었습니까?

이렇게 두 사람은 2부에서 존재한 적도 없었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장면을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제 생각에 2부에서 자유, 사랑, 믿음을 보여준 인물은 서미연 밖에 없었습니다.)

이상욱이 편지에서 말하는 공동운명이란 '원생들과 운명을 함께 하는 원장'입니다.

추측해 본다면 '앞으로는 원생들로부터 원장이 나올 필요가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이것은 소록도의 진정한 '민주화'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조 원장은 그것을 '원장이 소록도에 눌러 사는 것' 정도로만 이해하고,

따라서 자신이야말로 최초로 공동운명을 이룩한 원장이라고 믿습니다.

이는 곧 간척공사 성공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서미연은 10년 정도의 시간을 고스란히 희생하고서야 마침내 윤해원의

마음의 철조망을 허물고 공동운명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어떻게 다시 간척공사를 시작하게 되고, 또 다시 실패하더라도 여전히 그는

깨닿지 못 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그는 또 다른 핑계를 찾아내서 '이번에야 말로...'라면서 또 다음 기회를

노리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