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저는 인터넷이나 알림방 광고를 내어 <BR>중고 컴퓨터 장사를 합니다. <BR>얼마 전 저녁때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BR><BR>"아는 사람 소개 받고 전화 드렸어요. <BR>여기는 경상도 칠곡이라고 지방이에요.<BR>6학년 딸애가 있는데 중고컴퓨터라도 있었으면 해서요.<BR>딸은 서울에서 할머니랑 같이 있구요...."<BR><BR>나이 드신 아주머니 같은데<BR>통화 내내 목소리가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BR><BR>열흘이 지나서 쓸 만한 중고가 생겼습니다.<BR>아주머니가 말씀하신 그 집에 도착하자,<BR>다세대 건물 옆 귀퉁이 새시 문 앞<BR>할머니 한 분이 손짓을 하시더군요.<BR><BR>액세서리 조립하는 부업거리가 보입니다.<BR>지방에서 엄마가 보내주는 생활비로는<BR>살림이 넉넉지 않은 모양입니다.<BR><BR>"야 컴퓨터다!"<BR>그 집 6학년 딸이 들어와 구경하자,<BR>할머니가 아이의 어깨를 두드리시더군요.<BR>"너 공부 잘하라고 엄마가 사온 거여, <BR>학원 다녀와서 실컷 해. 어여 갔다와." <BR>아이는 "네~" 하고는 후다닥 나갔습니다.<BR><BR>설치를 끝내고 집을 나섰는데<BR>대로변의 정류장에 아까 그 딸아이가 서 있습니다.<BR>"어디로 가니? 아저씨가 태워줄게."<BR>주저 할만도 한데 아까 봤던 아저씨라 믿었는지<BR>아이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습니다.<BR>"하계역이요~" <BR>제 방향과는 반대쪽이지만 태워 주기로 하였습니다. <BR>집과 학원거리로 치면 너무 먼 거리였습니다. <BR><BR>한 10분 갔을까. <BR>아이가 갑자기 화장실이 너무 급하다고 합니다.<BR>패스트푸드점 건물이 보이기에 차를 세웠습니다. <BR>"아저씨 그냥 먼저 가세요."<BR>다급히 아이는 건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BR>무심코 보조석 시트를 보는데<BR>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BR>검빨갛게 물들은 시트.<BR><BR>아마 첫 생리?<BR>보통 바지가 젖을 정도...<BR>당황한 아이의 얼굴, <BR>당장 처리할 방법도 모를 테고 마음이 너무 급했습니다.<BR>재빨리 청량리역까지 와서 <BR>속옷을 여러 사이즈로 샀습니다.<BR>아이엄마에게 전화했다가는 마음이 아파하실 것 같아 <BR>연락도 못하겠더군요.<BR><BR>집사람한테 전화 했습니다.<BR>"지금 택시타고 빨리 청량리역...<BR>아니 그냥 오면서 전화해.. 내가 찾아 갈게."<BR>"왜? 뭔 일인데?"<BR>자초자종 이야기하자, 집사람이 온다고 합니다. <BR>아, 아내가 구세주 였습니다.<BR><BR>가는 중 전화가왔습니다.<BR>"약국 가서 생리대 사. XXX 달라 그러고 <BR>없으면 XXX 사....속옷은?" <BR>"샀어.."<BR>"근처에서 치마 하나 사오고....<BR>편의점 가서 아기 물티슈도 하나 사와."<BR><BR>진두지휘하는 집사람 덕에 장비(?)를 다 챙겨서<BR>아이가 좀 전에 들어갔던 건물로 돌아갔습니다.<BR>없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합니다.<BR>아이 이름도 모르는데,<BR><BR>집사람이 들어가니 화장실 세 칸 중에 <BR>한 칸이 닫혀 있었습니다.<BR>말을 걸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BR>그때까지 그 안에서 혼자 울면서 끙끙대고 있었던 겁니다. <BR>다른 평범한 가정이었으면 조촐한 파티라도 할 <BR>기쁜 일인데... 콧잔등이 짠하더군요.<BR><BR>집사람과 아이가 나오는데 <BR>그 아이 눈이 팅팅 부어 있더군요. <BR>그냥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를 데려다주고<BR>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묻더군요.<BR>"그 컴퓨터 얼마 받고 팔았어?" <BR>"22만원" <BR>"다시 가서 주고 오자.." <BR>"뭐?" <BR>"다시 가서 계산 잘못 됐다고 하고, <BR>10만원 할머니 드리고 와." <BR><BR>램 값이 내렸다는 등 대충 얼버무리면서<BR>할머니에게 돈을 돌려 드렸습니다.<BR>나와서 차에 타자 집사람이 <BR>제 머리를 헝클이며 "짜식~" 그랬습니다. <BR><BR>그날 밤 11시 쯤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BR><BR>"여기 칠곡인데요. 컴퓨터 구입한......." <BR><BR>이 첫마디 하고 <BR>계속 말을 잇지 못하시더군요.<BR>저도 그냥 전화기 귀에 대고만 있었습니다.<BR><BR></P> <P>출처:새벽편지 김진영씨</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