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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된 운명의 장난인지 커피에 대한 열정을 쏟아부었던 학교를 졸업하고
멋지게 바리스타로서 활동하고 있는 선배들과 교수님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멋있게 활동하리라 다짐했던 것과는 무색하게 취직을 해도 길어야 3개월.
꿈과 현실의 괴리감을 몸으로 다 맞아내며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일을 완전히 쉬었던것은 아니지만 일하는 기간보다 쉬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며
면접을 보아도 일했던 기간이 왜이리 짧냐는 질문에 취직했더니 가게가 망했다 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좀 더 버텼어야했나? 아니, 과거로 돌아간들 못 버텼을 것 같다.
이유는 말하자면 다양하다.
재정악화로 가게가 망하거나 사장과의 마찰 혹은 기존 직원과의 마찰 등등.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못버티고 튕겨져 나온것은 이력서에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사실이다. 틀린말은 아니다.
절친한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운도 실력이라지만 이렇게 까지 운이 안좋은걸 실력이 안좋아서 라고 하기엔 너무 가혹하다고.
맞는 말이다.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운명의 장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력서를 여기저기 넣었다.
운이 좋게도 집 근방의 작고 아담한 카페에서 연락이 왔다.
사장님이 직접 면접을 보았는데 40대의 호쾌한 성격의 남자였다.
무난한 절차를 밟고 당장 내일부터 나와줄수 있냐는 말에 나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번엔 오래 다닐수 있지? 잘 할 수 있지?
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한채 출근하자마자 가게 뒷문으로 사장님이 부르신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와줘서 고맙다며 그냥 편하게 형으로 불러도 된다고 호탕하게 웃는다.
느낌이 어째 마냥 좋지는 않았지만 어색한 웃음으로 화답하자
전에 일하던 직원이 어떤 손님이 고백하자 그뒤로 소식이 영 끊어졌다는 말과 함께
요즘 매출이 안좋아서 부업까지 뛰는 입장이라 혼자서 일하고 마감해야하는데 괜찮겠냐고 한다.
이미 면접 때 들었던 내용이고 혼자 일하는걸 좋아한다 대답했다.
각종 기물과 메뉴, 레시피북을 전수받고 새로 샀다는 앞치마도 받았다.
사장형은 메뉴는 총 10개니까 어렵지는 않을것이라며 음료도 마시고 싶은거 만들어 마시고
밥은 법카로 먹으라며 카드도 건네주고 정 힘들면 전화 하라는 말과 함께 급하게 떠나갔다.
쭉 훑어보고 나에게 맞게 위치도 좀 바꿔가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쭉 들이키니 1시간이 지나있었다.
그 말인즉슨 1시간 동안 손님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는 것.
번화가는 아니지만 사람이 오고가는 길목이고 커피가 맛없는 것도 아니고 인테리어가 나쁜것도 아니었다.
그냥 코로나 때문인가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는게 편하니까, 마치 운이 안좋았다 라는 것 처럼 말이다.
너무 조용해서 귀신이라도 나올까 싶어 둘러보다 스피커가 보였다.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녀석이 방치 되고 있었으니 왠지 안쓰러워 노트북에 연결해 재즈를 틀었다.
감미로운 색소폰 소리가 가게에 퍼지며 청소할건 없나 찾아보려 움직이던 찰나에 우렁차게 유튜브 광고가 울렸다.
아차 싶어 끄려고 하는 와중에 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손님이 들어왔다.
급하게 광고를 끄고 주문을 받으려 하자 나보다 훨씬 키가 큰 여자 손님이 구두 소리를 내며 성큼 성큼 다가왔다.
얼굴도 마주치지 못하고 급하게 포스기를 두들길 때 나를 내려다 보는 높은 곳에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다.
"저... 바닐라 라떼에 그림 그려주실 수 있나요?"
"실력이 좀 녹슬긴 했는데 하트 정도는 그릴 수 있죠"
"아..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간만에 그리는 라떼 아트라서 긴장하긴 했지만 꽤나 이쁜 하트를 그려냈고 다른 손님도 없고 직접 서빙해 드렸다.
내 자리로 돌아와 그 손님을 봤을 땐 세상 행복한듯 웃으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열심히 만든 커피를 누군가 좋아해 줬을 때 느낄 수 있는 이 기분을 얼마만에 느끼는지
성취감과 직업정신이 다시금 충전 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쩌다 한번 들린 손님이겠거니 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 과는 다르게 매일 그 손님이 찾아와
바닐라 라떼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매번 같은 주문을 했다.
말 걸어볼까 했지만 헤실헤실 웃으며 사진을 찍고는 다 마시기가 무섭게 후다닥 나가버려 그럴 틈도 없어보였다.
그때는 그냥 그런 손님이구나 라고만 생각했다.
그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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