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면서, 왜 재래시장은 우리에게 안좋은 추억을 남기는가 생각해봤습니다.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변화에 대처하지 못한다." 입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뭐, 지붕을 씌우고, 카트를 도입하고 그런 물리적인 변화를 말하는게 아닙니다.</span></div> <div>바로 "농경사회 및 고도성장 산업화 시절의 소상공인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겁니다.</div> <div><br></div> <div>농경사회에서는 "주거의 이동"이 없습니다.</div> <div>내가 태어난 곳이 내가 살아가다 죽을 곳이었고, 내 이웃은 평생 함께 봐야 할 사람들이었죠.</div> <div>그래서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었고, '옆집 숟가락 숫자도 안다.'라는 말도 있었죠.</div> <div>산업화 고도성장기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div> <div>일거리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한 번 큰 이동은 있을지언정</div> <div>직장을 구하면 그것은 "평생직장"이었고, 주거는 그 직장 근처 어딘가로 고정됩니다.</div> <div>농경사회처럼 모두가 품앗이를 하며 살지는 않더라도, 이웃은 여전히 중요한 사람들이었고</div> <div>함께 안면을 익히고 이웃끼리는 웬만하면 좋게좋게 지내던 그런 시절이었죠.</div> <div><br></div> <div>이러한 사회에서 시장 상인의 스탠스는 명확합니다.</div> <div>"가까운 이웃들에게 특혜를 베풀고, 알 수 없는 외지인에게는 바가지를 씌운다."</div> <div>나와 아침 저녁으로 얼굴 맞대고 사는 옆집 김씨, 아랫집 박씨가 과일을 사가는데 상처난 것, 오래된 것 팔 수 있을까요? 못합니다.</div> <div>그건 더 이상 그 골목에서 장사해먹지 않겠다는 소리죠.</div> <div>나와 매일 보는 사람에게는 좀 더 좋은 물건을, 말도 트고 지내는 사이라면 가격도 싸게줘야 그 동네에서 장사해먹고 사는 데 지장 없습니다.</div> <div>하지만 누군지 모르는 외지인에게는 잘 팔리지 않을 물건을, 비싼 값에 팝니다.</div> <div>그래야 이웃들에게 특혜를 줌으로써 생기는 손실을 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div> <div><br></div> <div>소비자의 스탠스도 명확합니다.</div> <div>새로운 동네에 이사하게 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웃들에게 눈도장 찍기입니다.</div> <div>떡을 돌리고, 인사를 하며 누구네 이사왔다고 신고를 합니다.</div> <div>자식들도 인사를 시키고, 무슨 일을 하는지 등등 다 오픈합니다. </div> <div>숨기는 게 많을수록 지역사회의 일원으로는 자리잡기 어렵기 때문입니다.</div> <div>시장 상인들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야 합니다.</div> <div>그래서 필요 이상의 많은 식재료를 사가며 매상을 올려주고 누구네 새로 이사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립니다.</div> <div>그리고 그렇게 사온 식재료로 집들이라는 것을 합니다.</div> <div>그렇게 해야 내가 그 지역사회의 "특혜를 받는 동네 주민의 일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div> <div><br></div> <div>그러한 그룹 외부인으로서 물건을 살 일이 있다면?</div> <div>시장 상인은 당연하다는 듯 바가지를 씌우고, 소비자 또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입니다.</div> <div>좀 심하다 싶어봐야 "에~ 그 동네 인심 한 번 사납네. 퉤!" 하고 맙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하지만 정보화사회가 되고, 동시에 IMF를 거치면서 생존방식이 달라집니다.</div> <div>"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div> <div>사람들은, 특히 직장을 다니는 젊은 사람들은 직장이 바뀜에 따라 4~5년마다 주거지를 바꾸는게 일상이 되어버렸고,</div> <div>직업이 다양한 만큼 생활 패턴도 다양해져 출퇴근길에라도 이웃과 얼굴을 마주할 일이 드물어집니다.</div> <div>공들여 이웃과 좋은 관계를 쌓아봤자 써먹을 일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으며, 이사 한 두번 하는 것도 아닌데 매 번 그럴 수도 없습니다.</div> <div>또한, 정보화사회에서는 자신의 이름, 직업, 주소, 나이, 가족사항이 모두 중요한 개인정보가 되어 함부로 오픈할 수 없습니다.</div> <div>자연히 이웃과의 교류는 줄어들고, 함부로 이웃을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div> <div>인심좋게 생긴 이웃집 아저씨가, 내가 혼자 산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언제 칼을 든 강도 혹은 그 이상으로 돌변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div> <div><br></div> <div>정보화 사회에서 소비의 패턴 또한 달라집니다.</div> <div>동네 한 가게의 단골이 되어 물건을 사는 일은 사라집니다.</div> <div>대신 여러 마트, 홈쇼핑, 인터넷 쇼핑에서 가격을 비교하며 구매하게 됩니다.</div> <div>좋은 물건 사려면 발품 팔아야 된다는 산업화시절 재래시장 이용방법은 귀찮은 일이 되었습니다.</div> <div>그럴 시간에 클릭 몇 번이면 내 방에 앉아서 전국의 마트와 인터넷 장터의 물건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div> <div>아니, 그럴 필요도 없이 메일링 서비스를 가입하는 것 만으로도 매주 무슨 물건이 싸고 좋은지(신빙성 여부는 차치하고) 알아서 정보가 날아옵니다.</div> <div>그걸 보고 그 정보만으로 충분하다 싶은 사람은 인터넷 쇼핑을, 다종다양한 물건을 직접 보고 사야겠다 싶으면 마트를 가는겁니다.</div> <div><br></div> <div>이러한 소비시장에서는 에누리, 덤 같은 건 기대하지 않습니다.</div> <div>소비자는 내가 언제 어디로 이사갈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 가든 일정 수준 이상의 평등한 대우를 받기를 원합니다.</div> <div>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은 물건을 다른 가격에 사게 되는 재래시장의 가격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div> <div>그런 면에서 마트가 더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div> <div>마트는 적어도 그런 식의 차별을 당할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div> <div><br></div> <div>한편, 시장 상인들은 나름의 고충이 있습니다.</div> <div>분명 새로 보는 얼굴인데 새로 이사왔다고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div> <div>그러면 시장 상인으로서는 이 사람이 외부인인지, 새로 나의 단골이 될 사람인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div> <div>그러면 덤도 에누리도 없이, 그냥 원래 가격에 원래 양만큼 물건을 팝니다.</div> <div>그런 일이 두 세번은 있어야, '아, 이 사람이 새로 이사 온 사람이구나.' 합니다.</div> <div>이렇게 끝나면 다행이죠.</div> <div><br></div> <div>분명히 낯익은 얼굴인데, 몇 번 본 것 같은데 오며가며 인사도 하지 않고 소 닭 보듯 지나갑니다.(주로 젊은 사람이)</div> <div>그러면 "요 놈 봐라. 새로 왔으면 인사도 하고 붙임성있게 굴어야지. 어디서 고개 빳빳이 들고 다녀?"</div> <div>이런 생각에, 알아도 싸게 주기는커녕 오히려 바가지를 씌우거나 질 떨어지는 물건을 줍니다.</div> <div>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그냥 받아갑니다. 억척스러운 아줌마들처럼 따지고 들지 않죠.</div> <div>그러면 속으로 "물건 볼 줄도 모르는게 어디서~" 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죠.</div> <div>하지만 젊은 사람도 바보는 아닙니다. </div> <div>시장 물건이 싸고 질 좋대서 편리한 마트 잠시 뒤로 하고 시장까지 다녀왔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물건이 영 아닙니다.</div> <div>그러면 속으로 다짐하게 되죠.</div> <div>"역시 마트가 낫다. 시장은 이래서 글러먹었다. 내 다시는 시장 안간다. 전통시장따위 망하든 말든."</div> <div><br></div> <div><br></div> <div>이건 시설을 개선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죠. 어느 한 쪽이 사고방식과 태도를 바꿔야 하는 문제인겁니다.</div> <div>그러면 어느 쪽이 바뀌어야 할까요?</div> <div>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판매자가 바꿀 수 밖에 없습니다.</div> <div>소비자는 꼭 그 판매자가 아니더라도 다른 대안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고개 숙일 이유가 없죠.</div> <div>또한 시대의 변화 또한 판매자의 변화를 요구합니다.</div> <div>지난 20년간 동네 이웃 단골장사로 먹고 살았다 한들 앞으로 20년 동안도 그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div> <div>아는 사람끼리만 통하는 "정" 따위로는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div> <div>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단골손님들도 언젠가는 이 동네를 떠날 사람들이기 때문에, 새로운 고객을 유치하려면 새로운 고객의 마인드에 맞춰줘야 살아남을 수 있는거죠.</div> <div><br></div> <div><br></div> <div>저는 에누리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div> <div>내가 물건을 싸게 산다는 것은, 누군가는 그만큼 바가지를 쓴다는 소리입니다.</div> <div>사람은 기분 좋은 경험은 금방 잊고 기분 나쁜 것만 기억하죠.</div> <div>자신이 싸게 산 경험은 금방 잊지만, 반대로 비싸게 산 경우는 두고두고 기억하며 기분 나빠하는게 사람 심리입니다.</div> <div>그런 식으로 시장에 안좋은 기억이 자꾸 쌓이면 자연히 시장에 발길을 끊게 되는 것이죠.</div> <div><br></div> <div>그래서 저는 시장 단위로 가격 정찰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div> <div>매일 시세에 따라 그램/킬로그램 당 배추는 얼마, 사과는 얼마 이런 식으로 시장 입구에 전광판 같은 것을 설치해서 언제든지 그 전광판을 통해 물건 가격을 확인할 수 있게 말입니다. (그러면 시장 전용 앱 같은 것도 개발되겠죠. 물건 값을 바로 확인할 수 있게)</div> <div>그러면 그 시장 내 어느 가게에서 물건을 사도 적어도 "바가지 썼다."는 생각은 덜하게 될 것입니다.</div> <div>그 시장 안에서 같은 품목 중 더 질 좋은 물건을 취급하는 가게를 찾아내는 것은 마트에서 느낄 수 없는 재미가 되겠죠. </div> <div>카드 안받고 현금영수증 안해준다? 그러면 그 가게에서 안사면 됩니다. 다른 가게 가도 똑같은 물건을 똑같은 가격에 살 수 있는데 굳이 그런 곳에서 물건을 살 필요가 없죠.</div> <div><br></div> <div>물론 시행하기 힘든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div> <div>"상품의 가치에 따라 도매가로 떼오는 가격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가격에 파는가."하는 문제가 있겠죠.</div> <div>그 해결법 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건 생산자와 판매자/판매자와 판매자 간의 문제가 되겠죠.</div> <div>다만, 새로운 소비세대의 마음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무너져버린 신용을 회복해야 하고, <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그러려면 산업화시절 소상공인의 마인드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span></div> <div>그 한 가지 방법으로 "가격정찰제"가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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