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br></div> <div>아마 많은 분들이 이창호국수를 예상하셨겠지만,</div> <div><br></div> <div>개인적으로 저는 조훈현 국수를 꼽고 싶습니다.</div> <div><br></div> <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502/1422955047xlbWEm22w1G3PcI55kZhAI21.jpg" width="290" height="384" alt="14.jpg" style="border:none;"></div><br></div> <div><젊은 시절 날카로운 모습 한 컷></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조국수의 유년 시절-</div> <div><br></div> <div>조훈현 국수는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 영암에서 태어났지요.</div> <div><br></div> <div>조국수가 바둑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네살 경에 알게되었는데요, 그 과정이 참으로 신기하기까지 합니다.</div> <div><br></div> <div>조국수의 선친이신 조희아옹은 평소 처남과 즐겨 바둑을 두곤했는데, 아직 네살 밖에 되지 않은 조훈현이 늘 바둑판 옆에 앉아서 구경을 하곤 했답니다. 그나이 때의 어린아이라면 당연히 바둑을 훼방을 놓든가 아니면 돌을 갖고 장난을 치려할텐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얌전히 구경을 했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조희아옹이 바둑을 두고 있는데 가만히 구경을 하던 네살 조훈현이 "아부지 여기다 한 번 둬 보시지요잉~"하고 훈수를 놓더랍니다.</div> <div>그래서 하도 어이가 없던 아버지가 조훈현 더러 "이 눔 자식, 그러면 니가 한 번 둬 봐라"라고 했는데, 아버지 바둑 돌을 대신 잡은 조훈현이 외삼촌을 데꺼덕 이겨버렸다고 합니다.</div> <div><br></div> <div>물론 당시 조희아옹의 바둑 실력은 대충 10급 정도였다고 하니, 외삼촌도 비슷한 실력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div> <div><br></div> <div>하지만, 생전 바둑을 배워 보지도 않은 네살 짜리 아이가 구경만 하던 실력으로 바둑을 둔다니, 그리고 도 첫 판에서 이기다니 이거야 말로 놀랄 노자였겠지요.</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더 신기한 건, 그 나이에 자기가 둔 바둑을 그대로 복기까지 하더라는 겁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아들의 바둑에 대한 범상치 않은 재능을 발견한 조희아옹은 다음 날 바로 아들의 손을 잡고 도시의 프로기사에게 가서 테스트를 받고 곧 정식으로 바둑을 배우게 되었지요.</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어린 나이에 서울로 바둑 유학을 온 조훈현은 하라는 바둑 연습은 안하고 틈만 나면 만화방에 쳐박혀서 만화나 보기 일수였다고 합니다.</span></div> <div><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br></span></div> <div>하.지,만, 조훈현은 겨우 9살의 나이에 '프로 기사'테스트를 통과합니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세계 최연소의 기록이며 아무도 깨지 못하고 있습니다.</div> <div><br></div> <div>더구나 당시 프로테스트는 한국기원 원생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내노라 하는 아마추어 고수들이 전부 모여 들어 리그와 토너먼트를 하는 시합 방식인데, 거기서 9살 조훈현이 당당히 통과를 한 겁니다.</div> <div><br></div> <div><br></div> <div>그 뒤 조훈현은 일본의 초청으로 바둑 유학길에 오르게 되는데, 일본 유학 시절의 스승이 바로 그 유명한 세고에 겐사꾸 9단입니다. 조훈현이 당연히 자기 문하로 올 줄 알았던 기타니 9단은 세고에를 상대로 소송을 불사하려 했으나 워낙 일본 바둑계의 최고 원로로 존경 받는 세고에라 참고 넘어가면서 울분을 삼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세고에 선생은 딱 세명의 제자만 두는데, 바로 일본 관서기원의 전설 하시모토 류타로와 얼마전 100세로 타계하신 현대 바둑의 개척자 우칭위엔(오청원), 그리고 조훈현 이 당대 최고 천재들이었지요.</div> <div><br></div> <div>결국 조훈현이 군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하자 세고에선생은 조훈현의 빈자리를 참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는 비극이 따르기도 했지요.</div> <div><br></div> <div>잡다한 이야기는 그만 두더라도조훈현이 이창호를 제자로 받아들여 그를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올려 놓기 전까지 한국바둑은 거의 조훈현의 독무대였습니다. 도전기 33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과 네차례의 전관왕(당시 존재 하는 모든 기전을 다 우승)은 다시는 세울 수 없는 기록이 될 겁니다.</div> <div><br></div> <div>하지만 당시 바둑에서 세계 최고는 자타 공인 일본이었고, 일본은 한국 바둑은 완전히 한 수 아래로 봐서 공식 교류전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일본은 당시 막 부상하기 시작하는 중국을 상대로 자신들의 우월함을 과시하고자 '중일 수퍼대항전'이라는 것을 개최하게 되는데, 일본의 두터운 고수들 앞에 중국의 기사들은 추풍낙엽,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았지요. 단 한명, 섭위평을 제외하면요.</div> <div><br></div> <div>중일수퍼대항전은 승자승으로 각각 9명의 선수가 출전해서 1대 1로 맞붙은 다음 지는 사람은 탈락하고 이기는 사람은 계속해서 다음 상대와 붙는 그런 시합이었지요. 그 시합에서 중국과 일본은 엎치락 뒤치락하지만 결국 섭위평9단이 마지막 3승을 혼자 따내며 중국의 우승을 이끌며 중국 바둑의 위세를 과시하게 됩니다. 그 뒤로도 일본은 섭9단에 번번이 덜미를 잡혀 중국의 위세를 높여주기만 합니다.</div> <div><br></div> <div>이러한 때 대만 출신 사업가였던 응창기씨가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40만달러라는 상금을 걸고 지구 최강 기사를 뽑는 시합을 개최하게 됩니다. 사실상 중국-일본의 시합이지만 세계대회로서의 면모를 과시한답시고 총 16개의 시드 중에 일본 6개, 중국 4개를 주고 미국, 호주 출신 아마추어 기사와 듣보잡(?) 한국 대표에게도 한장의 시드를 줘서 조훈현 9단이 겨우 출전하게 되는데요,</div> <div><br></div> <div>그 시합에서 조훈현은 내노라 하는 일본의 초고수들을 전부 꺾고, 결승에서는 누구나 당시 세계 1위라고 인정하던 섭위평 마저 쓰러뜨리고 우승함으로써 한국 바둑의 위상을 세계 만방에 과시하게 된 것입니다.</div> <div><br></div> <div>사실 이전까지 국내 기전은 별로 인기도 없고 프로 기사들도 최상위 몇 명을 제외하면 먹고 살기도 함든 지경이었으나, 조훈현의 이 대회 우승으로 국내에서도 어마어마한 바둑 붐이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 이창호를 비롯한 수많은 신세대 프로기사들이 자라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div> <div><br></div> <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502/1422957167heIr1AnabMEvnfhrwcpTrwmcMvmScW.jpg" width="400" height="533" alt="hwanjang-4.jpg" style="border:none;"></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이런 조훈현의 일화 중에는 세계 체쓰 챔피언과의 시합에서 이긴 일도 있었는데요, LA에서 열린 체스 시합을 참관하던 중 우연찮게 체스마스터와 인사를 하고 주위의 권유로 난생 처음 체스 시합을 하게 되었는데, 그만 조훈현이 덜컥 이겨버렸다고 합니다. 체스 마스터는 너무나 놀라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지 물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게 공식 시합도 아니었고 체스 마스터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경기였겠지만 생전 처음 해 보는 게임에서 그 방면 프로를 이긴다는 건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지요.</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어찌되었거나 박세리가 우리나라 여자 골프의 중흥을 만들어 낸 원조라면, 조훈현은 그야 말로 우리나라 바둑산업을, 크게는 게임 산업에 이르기까지 그 발판을 만들어 낸 인물이라고 감히 얘기하고 싶습니다.</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베오베에 스포츠를 빛 낸 인물 중 바둑 부문에 이창호 9단이 선정되었길래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조훈현 9단 얘기를 두서없이 써봤네요. 어릴 때 조훈현 9단을 실시간으로 봐왔기 때문인지, 이 세상 천재 중에 한명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로 늘 조훈현 9단을 꼽습니다. ^^</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 <div style="text-align:left;"><br></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 <div><br></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