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이미 4년전,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뤘습니다.</div> <div>이미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있었고, 누구도 역대 최고의 피겨 스케이터라는 것에 토를 달지 않았습니다.</div> <div>선수생활을 유지해서 위험을 감수하느니 가장 빛날 때 은퇴하는 게 연아에게 가장 이상적인 길이었습니다.</div> <div>하지만 연아는 알고 있었습니다.</div> <div>아직은 어린 나이, 세계 최고의 선수-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을 바랄 것이고, 그걸 피하는 건 어려울 거라는 걸.</div> <div>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단 국물이 남아있는 자신에게 사람들은 당연히 빨대를 꽂으려 들 것이라고 생각했겠죠.</div> <div> </div> <div>하지만 이미 자신은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습니다.</div> <div>연아는 한참을 방황하다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할 목표를 정하게 됩니다.</div> <div>그리고 부상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추스려서 참가한 것이 세계선수권.</div> <div>이 대회의 성적에 따라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선수 선발 수가 정해지게 됩니다.</div> <div>우승.</div> <div>연아는 이 대회에 나가기 전에 인터뷰에선 항상 꺼려하던 표현을 썼다고 하죠.</div> <div>"꼭"</div> <div>후배에게 큰 경험을 주고, 그게 우리나라의 피겨 스케이트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확신한 거죠.</div> <div>어린 선수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div> <div>외국에서는 이런 연아를 보면서 경이로움을 금치 못합니다.</div> <div> </div> <div>어찌 됐든 1차적인 목표를 이루었기 때문에 확보된 3장의 티켓으로 올림픽에 출전해야 합니다.</div> <div>연아는 당연히 여기까지 생각하고 복귀했을 겁니다.</div> <div>그리고 연아의 2차 목표는 만족할 경기를 하고 후회없이 은퇴.</div> <div>아마 이 즈음에서도 연아는 금메달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느낍니다.</div> <div>선수생활을 하면서 지독하게 느꼈을 편견과 편법, 부당함 때문이기도 했지만,</div> <div>여왕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시점에 피겨계는 흥행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영웅을 만들어야 했을 겁니다.</div> <div>출중한 선수가 자연스럽게 대물림을 하면 좋겠지만 연아 레벨의 선수가 인류 멸망 때까지 나타날 수 있을까요.</div> <div>그 동안 느껴왔던 부당함은 무리하게라도 여왕을 내려앉히고 새로운 영웅을 만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div> <div>아무리 멘탈이 강한 선수라고 해도 다 알고, 받아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초연함을 보여주긴 힘들겠죠.</div> <div> </div> <div>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고 확신하는 부분은 단지 초연함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div> <div>평생의 마지막 시즌에 선택한 작품이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와 [아디오스 노니노] 입니다.</div> <div>경쾌하게 보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작품도 아니고, 특별한 컨셉으로 시선을 이끄는 작품도 아니고, 감성으로 어필하는,</div> <div>게다가 너무 어려운 프로그램이라 데이비드 윌슨이 꺼내기를 망설이기까지 했다는 작품입니다.</div> <div>메달에 초연했던 연아는 마지막에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작품으로, 그리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도전적인 작품으로 은퇴를 준비합니다.</div> <div>은퇴 작품의 컨셉이 도전이라니..</div> <div>금메달을 딸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연아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최선의 방향이었을 겁니다.</div> <div>그리고 마지막 무대에서 보여준 클린 퍼포먼스.</div> <div>아름다운 드레스 속에 비친 파스 조각과 금간 연아의 발이 무대 직전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했는 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div> <div>그리고 결국 연아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습니다.</div> <div> </div> <div>경기를 마치고 키스앤크라이 존으로 들어가기 전 연아를 보면서 전 이런 느낌이 들더군요.</div> <div>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 "다 이루었다."</div> <div>자신 만의 독한 목표를 달성하고 난 후의 평온함이 표정에서 느껴졌습니다.</div> <div>다 알고 준비한 자신의 마지막이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울 수 있어서 저도 기뻤습니다.</div> <div> </div> <div>잘 했습니다.</div> <div>그 동안 수고했습니다.</div> <div>고맙습니다.</div> <div>대한민국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줬던 이상으로 당신의 남은 인생이 행복하게 펼쳐지길 바랍니다. (남편은 평생 욕 좀 먹겠지만)</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