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김경미의 <비망록></p> <p> <br></p> <p> <br></p> <p>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p> <p>깨어 보니 스물네 살이었다.</p> <p>신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 있어도</p> <p>끝내 찾아주려 노력치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p> <p>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p> <p> </p> <p>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p> <p>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면</p> <p>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p> <p>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p> <p>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p> <p> </p> <p>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p> <p>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p> <p>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p> <p>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p> <p>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p> <p>아무 일 아닌 듯해도.</p> <p> </p> <p>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p> <p>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p> <p>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p> <p>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p> <p>아무것에도 무게지우지 않도록.</p> <p> <br></p> <p>- 1983.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시</p> <p> </p> <p> </p> <p> </p> <p>이기적인 슬픔을 위하여</p> <p> <span style="font-family:gulim, Dotum, Helvetica, AppleGothic, sans-serif;">                           - 김경미</span> </p> <p> <br></p> <p>아무리 말을 뒤채도 소용없는 일이</p> <p>삶에는 많은 것이겠지요</p> <p> <br></p> <p>늦도록 잘 어울리다가 그만 쓸쓸해져</p> <p>혼자 도망나옵니다</p> <p> <br></p> <p>돌아와 꽃병의 물이 줄어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p> <p>꽃이 살았으니 당연한데도요</p> <p> <br></p> <p>바퀴벌레 잡으려다 멈춥니다</p> <p>그냥, 왠지 불교적이 되어 갑니다</p> <p>삶의 보복이 두려워지는 나이일까요</p> <p> <br></p> <p>소리 없는 물만 먹는 꽃처럼</p> <p>그것도 안 먹는 벽 위의 박수근처럼</p> <p>아득히 가난해지길 기다려봅니다</p> <p> <br></p> <p>사는 게 다 힘든 거야</p> <p>그런 충고의 낡은 나무계단 같은 삐걱거림</p> <p>아닙니다</p> <p> <br></p> <p>내게만, 내게만입니다</p> <p>그리하여 진실된 삶이며 사랑도 내게만 주어지는 것이리라</p> <p>아주 이기적으로 좀 밝아지는 것이겠지요</p> <p> </p> <p>이기적인 슬픔</p> <p><a target="_blank" href="http://www.yes24.com/Product/Goods/128886?OzSrank=1">http://www.yes24.com/Product/Goods/128886?OzSrank=1</a></p> <p> </p> <p>카프카식 이별</p> <p><a target="_blank" href="http://www.yes24.com/Product/Goods/90396076?OzSrank=5">http://www.yes24.com/Product/Goods/90396076?OzSrank=5</a></p> <p>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