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v>작년 가을즈음이었나.</div> <div><br></div> <div>애지중지 키웠던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있었다.</div> <div>번데기단계에서 꽤 오래 머무르더니, 어느날 성충이 되어 제 힘으로</div> <div>배양통 뚜껑을 열고, 방으로 나온 모양.</div> <div><br></div> <div>아내는 청소를 하다가 바퀴벌레가 나왔다며 기겁을 하고는 이웃에 사시는 장모님을 불러</div> <div>바퀴벌레(?)를 변기통에 버렸다.</div> <div><br></div> <div>'이거 바퀴벌레 아닌거 같은데? 풍뎅이 비슷한데?'</div> <div><br></div> <div>그 말을 듣고 아내는 아뿔싸 했단다.</div> <div>설마설마하며 배양통을 보니, 뚜껑은 열려져있고, 번데기는 온데간데 없었다.</div> <div>아들은 한동안 울상이었지. 어떻게 엄마가 그럴수가 있냐며. 풍뎅이와 바퀴벌레를 구분 못한다며.</div> <div>나는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며 아들을 달래주었다.</div> <div><br></div> <div>해가 바뀌어, 따뜻한 춘삼월.</div> <div>아들이 과학시간을 마치고 또다시 집으로 가져온 장수풍뎅이 애벌레.</div> <div>이번엔 제대로 키워보리라, 내 집으로 온 이 녀석을 끝까지 살려보리라 마음먹었다.</div> <div><br></div> <div>기나긴 번데기 과정을 거치고 마침내 성충으로 탈피한 요녀석은 암컷이었다.</div> <div>수컷처럼 멋진 뿔은 없었지만, 어찌나 활발한지.</div> <div>큰 김치통으로 집을 넓혀주니 통속에서 붕붕 날아다니고 마구 요동을 쳐댔다.</div> <div>풍뎅이에게 그런 멋진 날개가 있는 줄은 몰랐다.</div> <div>우리는 식구가 된 녀석에게 '기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div> <div><br></div> <div>성충이 된 이후에는 기껏 3~4개월 살다 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짝을 마련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div> <div>마트에 가서 '기쁨이'보다 등치가 두 배는 큰 '멋짐이(딸아이가 지었다)'를 데리고 왔다.</div> <div>커다란 뿔이 어마어마했다. </div> <div>힘도 어찌나 센지, 무거운 책을 덮어놓아도 다음날이면 책을 밀어뜨리고 밖으로 나와 있기 일쑤였다.</div> <div>결국 제대로 된 뚜껑이 달린 곤충집까지 장만해 주었다.</div> <div><br></div> <div>그런 어마어마한 크기의 멋짐이를 기쁨이는 피해다니기 바빴고, </div> <div>둘은 늘 하나가 땅 속에 있으면 하나가 위로 올라와 있는 생활을 했었다.</div> <div><br></div> <div>저러다 짝짓기는 할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div> <div><br></div> <div>7월 어느날서부터는 기쁨이가 통 보이질 않았다. 젤리를 먹으러 나오지도 않았다.</div> <div>이거 어디 모르는 사이 밖으로 나와서 죽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div> <div>통을 완전히 뒤엎어 샅샅이 찾아보았더니, 흙 깊숙한 곳에 숨어있긴 했었다.</div> <div><br></div> <div>무서워서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는 건가, 저러다 굶어죽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었다.</div> <div><br></div> <div>지난 주에 젤리를 주려고 통을 열었더니,</div> <div>기쁨이가 축 늘어진 채 엎드려 죽어 있었다.</div> <div><br></div> <div>아아.. 기어이.. 못 먹더니 죽고 말았구나...</div> <div><br></div> <div>알도 못 낳고 그렇게 가버렸구나 기쁨아... 생각하며</div> <div>아래쪽 흙부분을 보았더니,</div> <div>곳곳에서 꼬물꼬물거리는 하얀 애벌레들.. 여섯마리도 넘어보였다.</div> <div> </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class="chimg_photo" style="border:;width:387px;height:412px;" alt="20160816_085004.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8/1472108401ed49a2467fea44c0ad03492e7695e962__mn600018__w1152__h2048__f200581__Ym201608.jpg" filesize="200581"></div> <div><br></div> <div>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div> <div><br></div> <div>요녀석들 낳느라고 그렇게 흙속에서 고생했었구나.</div> <div>그렇게 엄마가 된 책임을 다하고 엎어져 잠들었구나...</div> <div>애기때 우리집에 와서 그렇게 기쁨을 주더니, 소중한 아이들을 낳고.. 하늘나라로 돌아갔구나..</div> <div><br></div> <div>며칠간 그렇게 기쁨이를 내버려 두었다.</div> <div>제대로 묻어줘야지 생각했었다.</div> <div><br></div> <div>혼자 남은 멋짐이는 더이상 활발하지 않았다.</div> <div>하루에 하나씩 먹어치우던 젤리는 3일이 지나도 그대로였다.</div> <div><br></div> <div>어느날 살짝 밤에 들여다보니,</div> <div>멋짐이는 죽은 기쁨이를 끌어안고 교미행동을 하고 있었다.</div> <div>내가 바라보자, 멋짐이도 행동을 멈추었다.</div> <div>나는 슬며시 불을 끄고 자리를 비켜주었다.</div> <div><br></div> <div>그제 밤에 먹이를 주려 통을 열었더니</div> <div>멋짐이도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div> <div> </div> <div>기쁨이가 죽고 나서 일주일 후, 멋짐이마저 하늘나라로 그렇게 떠났다.</div> <div> </div> <div style="text-align:left;"><img class="chimg_photo" style="border:;width:449px;height:645px;" alt="20160816_084952.jpg" src="http://thimg.todayhumor.co.kr/upfile/201608/147210843965466caa9b304a6ea4d09195ca983758__mn600018__w1152__h2048__f298789__Ym201608.jpg" filesize="298789"></div> <div><br></div> <div>어제 아들과 함께 아파트 앞 화단에 살짝 땅을 파서</div> <div>두 부부를 한데 묻어주었다.</div> <div>휴지에 고이 싸서.</div> <div>플라스틱 비석도 세웠다.</div> <div><br></div> <div>'그동안 고마웠다 우리집에 와줘서 고마웠어.'</div> <div><br></div> <div>어느덧 애벌레들이 제법 커서 밖에서도 잘 보일 정도로 크게 자랐다.</div> <div><br></div> <div>사람의 일생이나,</div> <div>풍뎅이 부부의 일생이나, 진배없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div> <div>다소 길이의 차이는 있을지라도.</div> <div>태어나서 아이를 낳고, 자식위해 살다가 바스러져 가는.</div> <div>또 그 아이들이 살아서 부모가 되는.</div> <div><br></div> <div>한동안 여운이 길게 남을 것 같다.</div><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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