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누나가 겪은 일입니다.<br><br>7년 전, 2003년 6월.<br>아버지께서 폐가 좋지 않아 지방에서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가셔야 되었습니다.<br>가족들 모두 폐암이라 생각하고 눈물로 보내야 했습니다.<br><br>아버지께선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는데, 앙상하게 마르시고 피부색이 검게 변해서 같은 병실 환자들도 병이라도 옮길까봐 말을 걸지 않았다고 합니다.<br><br>당시 22살이었던 누나는 시골에서 갓 상경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아버지를 병간호하고 정성스럽게 보살폈습니다.<br><br>하루에 4시간도 잘 수가 없었지만, 누나는 피곤함도 잊고 열흘 동안 아버지 곁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병은 차도가 없었고, 누나가 열흘 동안 있는 사이에 말기암 진단을 받은 사람이 두 명이나 병원 창문에서 투신자살했다고 합니다.<br><br>그러던 어느 날, 너무 피곤했던 터라 아버지 옆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고 합니다.<br><br>그런데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일어나셔서 어딘가 같이 가자고 하셨답니다. 누나는 아버지 몸이 괜찮아지신 줄 알고 따라갔는데, 서울에 계신 고모들과 돌아가셨던 할머니까지 한자리에 모여서 한상 크게 차려놓고 식사를 하고 계셨답니다.<br><br>얼떨결에 분위기에 휩쓸려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할머니랑 아버지가 사라지셨답니다. 누나는 그 와중에도 두 시간마다 받는 검사가 생각나서 시계를 보고는 검사시간을 맞춰 아버지를 모시러 가야된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br><br>밥 먹다가 식당을 나가 한참을 달렸는데, 안개가 가득한 언덕이 보이더랍니다. 언덕과 들판은 시든 것처럼 맥없어 보이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언덕을 가로질러 길고 구불구불한 길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구불구불한 길옆에 강이 하나있었다고 합니다.<br><br>누나는 언덕 위에서 아버지를 찾으려고 내려다보는데 그 구불구불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 띄엄띄엄 한 사람씩 어딘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게 보였답니다. 마치 점이 찍힌 것처럼…….<br><br>한참을 두리번거리는데 뒤쪽에서 아무 표정 없이 할머니와 아버지가 그 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직도 생생한 것은 할머니는 검정색 원피스를 입으셨고 아버지는 바지는 검정색 정장바지 윗옷은 하얀 와이셔츠를 입었다고 기억합니다.<br><br>누나는 급히 뛰어가서 아버지께 검사하러 가야된다고 했고, 아버지께선 검사를 받으러 갈 테니, 할머니를 대신 모셔다 드리라 하셨답니다.<br><br>그렇게 아버지는 검사받으시러 어디론가 가시고 누나는 할머니 뒤를 따라 그 길을 계속 걸었답니다. 한참을 걷다 문득 시계를 보고 아버지께 가야될 것 같아 할머니를 부르려는데 뒷모습이 친할머니가 아니었답니다. 왠지 어색하지만 낯설지는 않는 모습이었지만, 누군지는 몰라서 할머니를 향해 지금은 너무 늦어서 모셔다 드리기 어려우니 다음에 데려다드리겠다고 하고는 도망쳤다고 합니다.<br><br> (누나가 꿈속에서 시계를 확인한 시각은 저녁9시였고, 언덕길로 인해 시골길이라 착각했는지 버스시간이 늦어 지금은 갈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시골은 버스가 도시와는 다르게 저녁9시가 되면 막차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br><br>이윽고 누나는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습니다.<br>시계를 보니 오후 4시. 30분 정도 잠들었다고 합니다.<br><br>그런데 누나가 꿈을 꾸었던 날, 아버지는 차도가 안 생겨 투약하는 약을 바꾸기로 결정하고 바꾸었던 날이었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버지는 폐암이 아닌 폐염증으로 판명되고 손바닥만 한 폐에서 종기 9개가 나왔고 고름을 뽑아내니 사이다병으로 2병이나 나왔다고 합니다.<br><br>그리고 다행히도 일주일 만에 퇴원하셨습니다.<br><br>한 달 후 쯤, 누나는 건강을 회복하신 아버지와 읍에 갔다 오는 길이었습니다. 평소로 다르게 산을 넘어서 오는데, 묘하게 낯익은 것이……. <span class="q1">한 달 전 병원에서 꾼 꿈에 나왔던 언덕이었던 것입니다.</span><br><br>꿈에서 본 구불구불한 길은 해남 미황사에서 땅 끝 방향으로 가는 길이며, 그 길 끝에는 조상을 모시는 선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꿈에서 본 길 옆 강은 저수지였는데, 혜원저수지라고 저수지 중앙에 섬이 하나있는 특이한 저수지입니다.<br><br>그리고 그 날 밤. 누나가 피곤해서 바로 드러누웠는데 평소에는 잘 보지도 않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시골집에 어르신 초상화나 사진이 액자에 끼워져 벽에 걸려있는데 누나는 사진을 보고 소름끼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br><br>그 사진은 증조할머니 사진이었는데, <span class="q1">꿈에서 할머니인줄알고 따라갔다가 본 그 할머니가 바로 증조할머니였던 것입니다.</span><br><br>손자(그러니까 저희 아버지)를 데리러 와서 손잡고 함께 선산으로 가는 걸 누나가 말린 것입니다.<br><br>7년 전 이야기이지만, 부모님 일손 도우러 그곳을 지날 때면 아직도 소름이 끼칩니다.<br><br> [투고] 소똥벌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