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적 살던 동네에는 근처에 큰 공터가 있었습니다. 큰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었는지, 그 공터에는 많은 건축 부자재들이 쌓여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어째서인지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br><br>그렇게 방치된 공터는 어느덧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어있었습니다. 물론 소문난 말괄량이이자 장난꾸러기였던 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br><br>공터의 중간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흉가가 있었습니다. 사실 공사가 진행되지 전에는 가까이 하지 않던 곳이라 그 집에 사람이 언제부터 살지 않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공사가 진행될 즈음에는 이미 빈 집이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사는 채로 공사가 진행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죠. <br><br>그렇지만 작은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그 집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이 아직도 의문입니다. 더욱 의문인 것은, 그 공터에 존재하는 집은 그 집 하나 뿐이었습니다. 그 주위에는 아무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br><br>어느 날은 저와 오빠와 동네 남자아이, 그렇게 셋이서 흉가를 탐험하기로 했습니다. 공사가 진행된 흔적인지, 흉가는 사방이 흙으로 둘러싸여있는 모양새였습니다. 집 안에도 흙이 가득했지요. <br><br>다 무너져가는 흉가인탓인지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집을 탐험하던 저의 눈에, 너무도 예쁜 바비인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br>어째서 이런 흉가에 이렇게 예쁜 바비인형이 있었을까요? 아마도 이 집에는 제 또래의 여자아이가 살았나봅니다. <br>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는 바비인형. 너무도 예쁜 얼굴을 하고 있는 바비인형이 마음에 든 저는, 바비인형을 품에 안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br><br>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뒤, 우리 세 사람은 다시 그 흉가로 향했습니다. <br><br>한 겨울, 저는 아이들과 종종 불장난을 즐기곤 했습니다. 집에서 각각 감자나 고구마, 밤 등을 가져와 구워먹고는 했지요. 어릴 적에는 왜 그렇게 불장난을 좋아 했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흉가로 향한 이유도, 역시 불장난을 즐기기 위해서 이었습니다. 무너져가는 흉가 안에서 불장난을 하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어른들에게 혼나는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br><br>흙먼지가 가득한 바닥에서 우리는 나뭇가지와 신문지를 모아 불을 지폈습니다. 따뜻한 불이 피어오르자 저희는 신나서 지켜보았습니다. <br><br>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 방에서 붙인 불이 갑자기 활활 타오르며 크게 번지더니 벽지로 옮겨 붙기 시작했습니다. <br><br>분명 가구도 없는 빈 방인데, 다른 곳으로 불이 옮겨 붙다니… 상식 밖의 일이었지만, 그것은 현실로 일어났습니다. <br>아직 초등학생인 우리들은 너무도 놀라서 흙을 가득 집어던져 불을 끄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하지만 불은 꺼질 기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크게 타올랐습니다. <br><br>온 집안이 활활 타오르자, 저희는 두려운 마음에 흉가를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서 언덕 위까지 달렸습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흉가는 마치 지옥불에 빠진 듯,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br><br>몇 분 뒤, 신고를 받았는지 몇 대의 소방차가 도착했고, 불은 이내 꺼졌습니다. <br><br>그 일이 있은 후, 며칠간 우리는 밖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이 샘솟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어느 샌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가기 시작했습니다. <br><br>그렇게 흉가에 대한 일을 잊어갈 즈음, 어느 날은 낮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어났고, 눈을 뜬 저는 몸을 일으키려했습니다. <br><br>그러나 눈꺼풀을 제외한 모든 곳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내 몸이 마치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묘한 기분. 저는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던 '가위'라는 것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습니다. <br><br>가위에서 깨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머리맡에서부터 뻗어오는 하얀 손이었습니다. 너무 무서웠던 저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br>식은땀을 흘리며 악몽을 꾸던 저는 어머니에게 발견되어 깨어났지만, 그 이후로도 악몽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br>꿈의 내용 중 기억나는 것은, 여자아이의 미소와 빨간 원피스, 그리고 하얀 손뿐.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얀 손은 언제나 저를 어딘가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br><br>어느 날, 방 청소를 하시던 어머니가 저를 불렀습니다. <br> <br>"침대 머리랑 벽 사이에 이런 게 끼어있더라. 그런데 우리 집에 이런 게 있던가?" <br><br>어머니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흉가에서 가져온 바비인형이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던 그 인형. 아마도 침대 사이에 떨어져 끼어있던 모양입니다. <br><br>"아, 그거……." <br><br>인형을 바라본 순간 제 머리에서 강렬한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꿈 속에서 나타나던 여자아이, 그리고 빨간 원피스, 무엇보다도 언제나 머리맡에서 뻗어져오던 하얀 손……. <br><br>저는 갑자기 무서워져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어머니를 뒤로 하고 인형을 손에 든 채, 저는 흉가… 아니, 이미 잿더미가 되어버린 그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br>그리고 잿더미위에 인형을 올려두고는, <br><br>"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돌아가 주세요. 저한테 오지 말아주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br><br>하고 울면서 빌었습니다. <br><br>다행히 그 뒤로는 가위에 눌리는 일도, 악몽을 꾸는 일도, 빨간 원피스의 여자아이가 찾아오는 일도 없었습니다. 저의 진심어린 사과에 마음이 동한 것인지, 아니면 제가 아닌 다른 아이에게로 가버렸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br><br>[투고] 익명희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