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향은 제주 수산리입니다.<br><br>수산리에는 수산진성이라는 성이 있는데, 어릴 적 아버지께서는 그 곳에서 자주 놀다가 기이한 일을 겪으셨다고 합니다.<br><br>수산진성은 조선 시대 때 현무암으로 쌓은 성으로, 관방시설(험준한 곳에 시설을 만들어 방어를 위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수산진성이 있는 곳은 아버지가 다니셨던 초등학교가 근처에 있어서 아버지를 포함한 동네 아이들은 그 곳에서 자주 놀았다고 하네요.<br><br>그날도 아버지는 친구들과 함께 수산진성에 가다가 돌을 높게 쌓아 올린 곳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br><br> "야, 저기 뭐하는 곳이냐?"<br> "소원 비는 곳 같은데? 우리도 한번 빌어볼까?"<br><br>아버지 친구는 소원 비는 곳이라고 말하곤 가자고 했습니다.<br><br> "그래도 혹시 들어줄지 모르잖아. 어서 빌자."<br><br>두 분은 그곳에서 원하는 소원을 빌고 돌아가려는데, 등 뒤에서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br><br> "여기가 소원 비는 곳 맞아?"<br><br>아버지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가 어느 새인가 아버지 뒤에 있었습니다. 소원에 비는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누가 오는 줄도 몰랐던 것입니다.<br><br> "나도 여기에 소원을 비려고 왔어."<br><br>아버지가 기억나는 대로 말씀하셨는데, 그 소녀의 차림새는 단발머리와 고무신, 치마와 반팔티를 입었고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는데, 아버지 눈앞이 흐려지더니 여자아이가 사라졌다고 하네요.<br><br>아버지와 친구는 그 광경에 너무 놀라, 몇 번을 넘어지면서까지 집까지 계속 달리셨다고 합니다. 집에 와서 어른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했지만, 너무 황당한 일이어서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고, 결국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br><br>그런데 얼마 후에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수산진성에 어린 여자아이가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는 사라진다고 하는 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도 어르신들 이야기를 들으시고 기억을 되짚어가며 소원 비는 곳에서 만난 소녀를 떠올렸습니다. <br><br> "저희도 소원 비는 곳에 다녀왔는데 혹시 거기가 어디에요?"<br><br>아버지께서 마을 어르신들 중 한 명에게 묻자 마을 어르신은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br><br>수산진성을 지을 때 자꾸만 무너져 내려서 축성하던 사람들 중 하나가 스님께 물었더니 "열 살 되는 어린 여자애를 공양해 성을 쌓으면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열세 살쯤 되는 어린 소녀를 공양해 바치니 성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지만, 그 소녀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진앙할망당이란 당을 세웠습니다.<br><br>그 후로 가끔씩 그곳에 여자아이가 나타나서는 그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원을 비는 곳이냐고 물어본다고 하네요. 아버지에게 수십 년도 지난 일이지만, 문득 그 아이가 빌었던 소원이 뭐였는지 가끔 궁금하다고 하네요...<br><br> [투고] 성주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