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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military_9632
    작성자 : 내가그린하마
    추천 : 25
    조회수 : 994
    IP : 175.115.***.111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2/10/31 01:42:37
    http://todayhumor.com/?military_9632 모바일
    사람 인연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죠

    저는 군대에서 정말 평생을 함께 살아갈 형님을 만났습니다.

    그 형님과의 첫만남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죠. 갓 소대에 배치 받았을 때 나보다 4달 선임이었던 형님은 지독히도 나를 갈궜습니다.

    186cm의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몸, 날카로운 눈매... 어리버리까던 신병이 쫄 법도 하죠.

    교대를 나와 임용 합격 후 교사 6개월 하다 들어왔다는 사람이...

    모포 각부터 시작해서 관물대 정리, 삼선일치, 각종 장구류 정비와 전투화 손질 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며 조금이라도 잘못한 일이 있으면 불같이 화를 내고는 했죠.. 욕은 보너스구요

    이런 새끼한테 가르침 받았던 초딩들이 불쌍하다.. 정말 잘 때 야삽으로 이 새끼 머리를 깨버릴까 고민도 했을만큼 싫어했습니다

    그렇게 짬을 먹고 제가 일병이고 형님이 상병이 되었을 때, 저의 친형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경찰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형은 노량진에서 밤에 담배를 사러 잠깐 나왔다가 음주운전 뺑소니에 당해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즉사했습니다. 그 후에 다행히 범인은 잡았지만... 그 소식을 그 날 밤에 듣게 되었고 다음 날 아침 바로 청원휴가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소대원들 모두 상심하지 말고 일 잘 치르고 오라고 격려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그 형님이 제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 저 새끼도 오늘 휴가였지... 저 인간 또 뭐 한소리 할려고 하나... 진짜 죽여버릴라...' 이런 생각에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형님이 내게 다가와서 같이 가자고 합니다. 슬퍼서 미칠 것 같은데 이런 인간이랑 동서울 까지 같이 가야 한다니... 정말 죽을만큼 싫었지만 동서울까지 가는 버스 내내 형님은 말한마디 없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각자 길을 가려는 찰나 형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야, 장례식 어디서 한다고 하냐?"

    "...XX 동산병원에서 한다고 합니다"

    "그래 알았다. 잘 보내드리고 와라"

    저 인간이 저런 말도 할 줄 아네... 놀라며 귀향길에 올라 장레식에 참여하게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부모님과 누나는 나를 부둥켜 안고 울고, 형의 영정 사진을 보고서야 실감이 나더군요.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은 그럴 때 쓰는 말임을 깨달았습니다.

    울다 지쳐 빈소에서 멍하니 앉아있는데 저기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이더군요. 까맣게 탔지만 또렷하고 잘생긴 이목구비에 훨친한 키..

    형님이었습니다.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경례를 했습니다

    "도....돌격!!"

    "야... 뭔 돌격이야.. 인사나 드리자"

    형에게 절 하고 나에게 절하고... 가족들에게 인사드리고... 형님은 정말 놀란 나를 데리고 담배나 한대 피자고 나가자 합디다. 형님 집이 인천이고 저는 마산이었는데 그 먼길을 왔더군요. 정말이지 금같은 휴가의 하루를 쪼개서 말이죠... 

    몇 푼 되지 않아 미안하다고 형님이 내민 봉투를 받고는 눈물이 멈추질 않더군요

    "야이 씨바 새꺄 왜 처울어... 사내 새끼가 쪽팔리게..."

    입엔 늘 담던 욕이었지만 따뜻하게 안아주는 형님에게 고맙다고 고맙다고 말하니 "뭐가 고마워.. 이런게 전우 아니냐 허허허" 하고 웃으시더군요. "뭐... 너희 형이 참 좋은 사람이었겠지만... 나도 너한테 좋은 형 될 수 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만 말고.. 휴가 동안 될 수 있는 만큼

    마음 추스리고 부대로 돌아와라. 이런 일 있었다고 내가 니 군생활 족같이 해도 호락호락 넘어갈거란 생각 말고 새끼야"

    흐르는 눈물을 멈추고 그러리라 형님과 약속했습니다. 그제서야 이 사람이 천성이 나빠서 나에게 그런건 아니구나...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저런 이야기로 울고 웃다 형님이 머뭇거리며 말했습니다.

    "야... 근데 너희 누나 이쁘다? 넌 이렇게 생기다 말았는데...?"

    "저희 누나는 안되지 말입니다."

    "야이 썅... 누가 뭐 한대? 그냥 이쁘다고 새끼야"

    그때는 그렇게 웃고 넘겼었던 일이, 5년이 지난 지금은 정말 끈적한 인연이 되어...


    다음 주에 저희 누나와 형님이 결혼식을 올립니다. 사람 인연이란 것은 참 놀랍고 신기한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도 계속 연락하며 절친한 형 동생으로 지내다가 저희 누나와 형님의 인연까지 닿은 것이죠

    제가 제일 좋아하고 믿어왔던 형님이 매형이 된다니요 ㅎㅎㅎㅎ 놀랍기도 하고 좋기도 하구요.... 이상한 기분이네요

    참. 나중에 물어본건데 저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던 이유는 자기 욕심반, 내가 잘되라는 마음 반이었다고 하더군요.

    자신의 분대 맡후임이니 A급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욕심과, 어리버리하게 군생활 말아먹고 여기저기서 욕 들을 것 같은 내가 안쓰러워

    도와주자는 생각으로 그랬다고는 하는데... 뭐 믿을 수 있어야 말이죠 ㅋㅋㅋ


    술 한잔하고 새벽이 되니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라 써봅니다.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될까....

    형님이나 누나나 오유 안하지만 평생동안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ㅎㅎㅎㅎ

    참고로 결혼식은 대구 프린스 호텔에서 한답니당.. 오유분들 오시면... 사촌 누나나 동생을 소개시켜 줄 수도 있지만...

    그래봤자 안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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