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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panic_95468
    작성자 : 이야기한국사
    추천 : 16
    조회수 : 1217
    IP : 125.140.***.115
    댓글 : 1개
    등록시간 : 2017/09/14 01:55:50
    http://todayhumor.com/?panic_95468 모바일
    [단편] 대답
    어렷을 적 일이다. 




    아직 많은 학교들에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교문앞 동판으로 남아있을 당시였다. 그때 나는 몸이 그리 건강하지 못해서 매일 기침과 콧물을 달고 살아야 했다. 




    국민학교의 절반을 지났을 무렵 부모님은 내가 시골로 가기를 원하셨고, 당시 외환위기로 힘들었기에 더더욱 그러한 마음을 단단히 굳혔더랬다. 친구들과 떨어지기 싫었지만, 부모님이 워낙 완강하셨고 나 역시도 학교를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군소리 없이 시골로 내려갔다.




    부모님은 매우 바쁘신지라, 어린나이임에도 나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가야했는데 시골에 도착할 즈음 어두침침했다. 




    당시 우리 시골은 아직도 개발이 제대로 되지않아 시골집까지 가는 몇킬로미터나 되는 길에 빛 한줌 들어오지 않아 매우 무서웠다. 더군다나 저녁 8시가 지나면 그나마 작은 버스조차 돌아다니지 않아서 시골집에 사시는 큰아버지가 오시지 않으면 도저히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아버지께 연락을 받고 8시 즈음 오시기로 약속이 되어있었고 다행히도 제 시간에 맞춰 오셨다.




    내가 큰아버지를 기다리던 곳은 '미당'이라는 지명을 가진 마을이었는데 그나마 이 지역에서는 번화가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일제 강점기 혹은 한국전쟁 당시에나 만들어졌을 법 한 1층짜리 시멘트 블록 건물들이 스무체 정도 들어서 있고 가장 근래에 만들어진 건물은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면사무소 정도였는데 번화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유리가 덜그럭 거리는 나무 미닫이 문이 전면을 막고 있는 허름한 건물들이 늘어선 오래된 세트장 같았다. 




    이 마을도 8시가되자 작은 구멍가게를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이 꺼져있었고 구멍가게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빛 만이 내 주변으로 몰려드는 어둠을 힘겹게 밀어내고 있을 따름이었다. 한창 여름이 다가와 날벌레들이 잔뜩 주변을 어지럽혔고 나는 내 몸보다 더 큰 가방들을 들고 가만히 서 있을 때 멀리서 낡은 트럭 한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고, 직감적으로 그것이 큰아버지의 차임을 안 나는 벌떡 일어나 세개나 되는 가방들을 주섬주섬 들어올렸다.



    "어이쿠! 민수야 미안하다. 큰아버지가 많이 늦었지? 갑자기 개 한마리가 개장을 뚫고 도망나가서는 닭을 물어죽여서 그거 잡느라고 좀 늦었다. 아니었으면 네가 기다릴 이유가 없었는데 말야."

    "아뇨 큰아버지, 오래기다리지 않았어요."



    당시 아버지의 예절교육은 매우 매서웠는데 덕분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어른스럽다는 소리를 듣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어른스럽다는 소리를 들을만한 대답을 하고는 짐들을 트럭에 실었다. 짐칸에 짐을 올리려던 나는 큰아버지께서 "거기 지저분하니까 그냥 차에 같이 가지고 타자." 라는 말씀에 보조석에 짐을 올려놓고 나머지 하나는 껴안고 차를 출발시켰다.



    시골길은 아직 비포장이었다.



    덜컹덜컹 허리가 아플정도였고, 가로등 하나 없어서 드문드문 떨어진 작은 집들만이 간간히 별처럼 빛날 뿐이었다. 차 안은 시원한 편이었다. 차창은 수동식 크랭크 따위로 되어있는 손잡이를 돌려야 열리는 매우 조잡한 것이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차들이 매우 많았다. 이른바 파워윈도우라는게 트럭이나 짐을 싣고 다니는 승합차에는 옵션처럼 달려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나 역시도 당연하다는 듯 이를 돌려 창문을 열어야 했다.




    창문을 열자 시골의 이산화탄소 한 줌 없는 시원한 공기가 땀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날렸고 난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창 밖을 마냥 바라보았다.



    그 즈음 멀리서 마치 오징어잡이 배 라도 되는 양 밝게 빛나는 빛 무리가 보였는데, 딸랑딸랑하는 종 소리도 들리고 사람들도 많아보였다. 아마도 상여인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실 무렵 나 역시도 한번 봤기 때문에 어색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할머니 돌아가실적에는 분명 낮에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밤에 상여를 이고 가다니? 거기에, 상여를 이끄는 사람의 "어이야 어이야~" 하는 노랫가락도 들리지 않아 매우 이상했다. 마치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미 죽어서 모두 저승으로 걸어가는 것 처럼 보일 정도였다. 



    난 무서운 마음이 들어 슬금슬금 차창을 닫았는데, 그 모습을 보신 큰아버지가 내게 넌지시 말을 거셨다. 하지만 비포장도로와 트럭의 소음이 큰아버지의 목소리를 잡아먹어 버렸고, 난 그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즈음 큰아버지는 차를 갓길에 세워 상여가 지나갈 길을 만들어 주셨다.



    상여 주변에는 그리 사람들도 많지 않았고 상여 자체도 그리 크지 않고 솔직히 말하자면 상여 특유의 화려함도 없었다. 그 즈음 상여 옆을 아무말 없이 걷던 늙은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 할아버지에게 큰아버지가 다가가 뭐라뭐라 얘기하시는 것 같더니 두 분은 손을 마주잡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내 쪽으로 걸어오셨다. 그때 상여 행렬에서 떨어저 천천히 걸어오시던 할아버지는 차 안에서 상여를 구경하던 나를 보시더니 버럭 화를 내시며 뛰어왔다.



    "아이고! 최서방! 아니 지금 아들(애들)상여가 지나가는구만 어째 쟈가 이걸 보는거여! 어서 뭘로 애 덮어!"



    할아버지는 후다닥 뛰어오시더니 자신이 입고있던 삼베저고리를 들어 차 문을 열자마자 내 위에 덮었는데 당황스러웠지만 그런갑다 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러자 큰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아저씨, 애 놀라것습니다. 왜 그러세요."

    "이사람 큰일날 사람이네. 이보게! 왜 애가 죽으면 상여를 밤에 끌고가는지는 아는가? 그리고 애들 죽으면 주변에 다른 애들은 접근도 못하게 하는겨! 왜냐믄 애기 귀신이 지 또래 애들을 잡아갈라 한단 말여. 알것나?"

    "그런 미신을..."

    "이사람! 어른이 말하는거에는 경험이 있으니 그러는거여! 아 지금 뭐하는가! 어서 애 숨기지 않고! 어허!"

    "아저씨! 아저씨 손녀가 죽은긴데 왜 그럽니까! 애 놀랍니다!"




    큰아버지는 그 할아버지와 잠시 실갱이를 하시고는 상여가 지나가자마자 차를 몰아 다시 길을 달렸다. 워낙 풍채도 좋고 젊은시절 동내 장사로 불리시던 분이라서 그런지 마치 황소처럼 콧김을 뿜으시며 "손녀가 죽으니까 노인네가 정신을 놔버린겨! 응? 놨어 논겨!" 하면서 언성을 높이셨다.



    그때, 길가에 한 아이가 멍하니 차 앞에 서서 차가 오는것을 처다보는 것이 보였다. 비포장도로여서 늦게 발견해도 차를 세우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큰아버지는 아이를 보지 못했는지 여전히 달리고 계셨고 아이도 피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크, 큰아버지! 앞에 애가!"

    "응? 뭐야?"



    큰아버지는 내 말에 깜짝 놀라며 차를 세웠는데 그래도 달리던 속력이 있기는 했던 모양인지 벨트를 매지않고있던 나와 큰아버지는 앞으로 잔뜩 몸이 쏠렸다. 거기에 나는 몸이 가벼워 그런지 차창에 머리를 들이받을 정도였는데 피가 날 정도로 받은것은 아니나 혹 정도는 나올 법 한 느낌이었다.



    "으으..."

    "애, 애가 있었어?"

    "네. 아! 아이는 어떻게?"



    먼지 자욱한 땅 위에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며 창 앞을 바라보자 창 앞에는 아까 서 있던 여자아이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지, 진짜 뭘 보긴 한거니?"

    "네, 분명 있었는데? 흘깃 본것도 아니고 계속 있었는데!"

    "하아... 아까 할아버지 말 듣고 네가 좀 놀란 모양이다."



    그다지 놀라지 않았었음에도 큰아버지는 대충 내 말을 얼버부리고 다시 시골집으로 차를 몰았다. 집에 가는동안 나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최대한 차 밖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들지 않았다. 왠지... 자꾸만 그 할아버지의 말이 귀에 메아리 치는 것 같았다. 아이가 날 데리러 온다고? 친구 데리러 온다고? 신경쓰고싶지 않았지만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이윽고 차가 마을의 가장 위쪽에 자리한 집에 도착했다.



    시골집에는 이상하게도 아무도 없는지 불이 전부 꺼져있었는데 큰아버지께 여쭤보자 형들은 모두 밖으로 놀러나갔고, 큰어머니는 친가쪽에 볼일이 있으시다며 나가신 상황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큰아버지 혼자만 계셨는데, 집에 오시자마자 개장을 수리하셔야 한다며 날 내려놓고는 바로 산 중턱에 위치한 개 사육장으로 가버리셨다.



    분위기도 이상하고 무서운데 가전제품이라고는 텔레비젼이 전부인 시골집에 혼자 앉아있자 아까의 두려움이 천천히 그 범위를 확장해가며 내 머리속에 잔뜩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켰다. 이에 나는 공포를 잊기 위해서라도 텔레비젼이라도 켜볼까했는데 티비 전원은 들어오지 않았다.



    심드렁하게 앉아 창호지가 발라진 오래된 문을 바라보다가 이내 아무래도 무섭다 싶어 문을 닫았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더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두기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세 그렇게 잠이 들어버렸던 것 같다.



    다음날이 되자 전날의 공포는 씻은 듯 사라졌다. 



    오랜만의 시골이다. 



    즐겁게 놀자는 생각에 형들이 과거에 가지고 놀던 비비탄 총이라든가 조악한 솜씨로 만든 석궁 따위를 들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다. 혹시 새라도 한마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토끼라도 한마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 뛰어다녔다.



    그러다 심심하여 길을 걸어 미당까지 가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적 형들 따라서 폭죽을 사러 많이 돌아다녔었다. 어둡긴 하지만 달빛이 내리면 의외로 밝았기 때문에 어디 발을 헛디뎌 구를일도 없었다. 거기에 아직 해가 질 시간도 많이 남아있었기에 후다닥 시골 내려오며 부모님께 몇장 받은 지폐를 들고 미당으로 걸어갔다. 날씨가 덥기는 했지만 못걸을 것도 아니었다.



    차를 타면 십몇분 걸릴 거리이지만 걸어서는 한참이다. 더군다나 아직 국민학교도 나오지 않은 아이의 짧은 걸음으로는 한나절이다. 그렇지만 발걸음도 가볍게 미당까지 걸어갔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길 바닥 한가운데에 마치 피라도 흐른 것 처럼 붉게 파해쳐진 자국이 보였다. 본래같으면 더욱 붉어보였어야 할 터지만. 햇빛에 말라 점점 그 붉은기가 사라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해가 정오를 가리키면 순식간에 말라버릴게 분명했다. 하지만 난 별 고민없이 그 위를 지나쳐 미당으로 걸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미당에 도착하여 폭죽 몇개와 비비탄 총 몇개를 구입했다. 과거 어린아이 하나가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다가 실명하는 사건이 있어 모형총기들이 대거 압수되었던 사건이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이 동내는 그런 여파를 전혀 받지 않았는지 먼지가 수북히 쌓인 오래된 모형총기들이 가득했다.
    그 중에서 좀 싸다싶은 장난감 총 하나와 비비탄을 구입해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형들이 돌아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슬슬 해가 질 것 같은 모습이다. 집에 늦게까지 돌아가지 않으면 큰아버지가 걱정하실테니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렇게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흙길과 그 옆에 길게 흐르는 작은 하천의 모습이 정겹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없었고 간간히 노인 몇명이 돌아다니며 내게 "뉘집 자식인가?" 하면서 말을 붙여올 뿐이었다.



    언제 그렇게 늦어버렸는지 아직 길을 반도 걷지 않았는데 이미 세상이 군청색으로 물들어가고 푸르른 산도 검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길이 무섭다기 보다는 큰아버지가 걱정하실 생각에 발걸음을 더 빨리했다. 더더욱이 손에 들린 비비탄총과 탄창 가득한 비비탄을 생각하니 뭔가 좀 든든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멀리서 갑자기 익히 들었던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너는 최서방네?!"

    "에?"

    "이, 이놈이! 지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돌아다녀! 이놈 이리와!"


    서슬퍼런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살폈다. 그러자 아까 그 바닥의 붉은 흙이 말라가던 자리 부근에 저번 그 이상한 할아버지가 삼베옷을 입고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 다행히 길이 좀 넓었던지라 난 그 할아버지가 오라는 소리에 순응하기 보다는 할아버지를 피해 집으로 가는편을 택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큰아버지가 저번에 노인네가 미쳤다는 소리를 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동이 불편하여 제대로 날 막아서기 어려운 노인의 옆을 빠르게 지나쳐 집으로 달렸다. 할아버지는 이내 뭐라뭐라 꽥꽥 소리를 치며 날 잡으려 했지만, 난 어린아이 특유의 치기섞인 우월감을 느끼며 할아버지를 따돌릴 수 있었다.



    금세 노인은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고 해가 완전히 저물 즈음 멀리 시골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휴우! 집에 다 왔네."

    "저기 사는거야?"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섬뜩하게 뒷목을 간질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려 할 즈음 갑자기 이미 따돌렸을 것이라 생각했던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지말어! 걍 집으로 걸어가!"


    난 뻣뻣해진 목을 억지로 다시 돌려놓으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방금 들린 여자아이의 목소리나 할아버지의 목소리나 둘 다 이 세상것이 아닌 것 처럼 느껴졌다.



    "너 처음보는 것 같은데. 원래 여기 살았어?"


    "그, 그게..."



    내가 침을 삼키며 나도 모르게 대답하려 하자 다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놈아! 대답도 하지 말어! 그년은 없는년이여! 그러니까 똑바로 집으로만 걸어가!"

    "흥흥~ 할아버지는 참 이상하다니까? 그렇지 않니? 난 미란이라고 해. 넌 이름이 뭐야?"



    난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전부 무시하기로 하고는 앞만보고 걸었다. 아니 어느세 달리고 있었다. 허파가 터질듯 아파오고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잡다한 장난감들이 길바닥에 뿌려지고 어께에 걸고있던 비비탄총이 온몸을 때려댔지만 그래도 미친 듯 달렸다. 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내 바로 옆에 있는 것 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너 진짜 나하고 말 한마디 안할거야?"



    여전히 입은 앙 다물고 결국 집에 도달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 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린다. 창호지를 바른 문은 쉽게 잘 닫히지 않아서 문고리를 잡고 강하게 당겨야 제대로 닫혔다. 



    문을 닫고 방 구석에 앉아 그나마 내 무기라고 부를 수 있는 비비탄 총을 들어 앞을 겨눴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있었을까? 밖에서 문을 콩콩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파리 따위가 부딛히는 것 같은 소리였다가 어느새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안녕? 난 미란이라고 해. 우리 같이 놀자. 문 좀 열어줄래?"

    "......."



    난 여전히 입을 꽉 다물고 그저 창호지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목소리는 끊임없이 날 불렀다.



    "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문 열어줄래?"



    목소리는 점차 빨라지더니 이내 기계음처럼 빠르게 내 귀를 혹은 내 머릿속을 마구 흐트러뜨리듯 울렸다. 



    "깔깔깔! 문 좀 열어! 어서!"



    여전히 난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주변 창문이나 집기류들이 흔들리는 것 처럼 보였다. 화장실도 가고싶고 도저히 참을수가 없었다.


    "어서 열어! 열라구!"



    목소리는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아까의 어린아이같던 목소리가 아닌 성인 여자의 목소리 처럼 들려왔다. 



    "젠장 꺼져! 꺼지란 말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치자 집 전체를 흔들던 진동과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온화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큰일날 뻔 했구만. 얘야 무서웠지? 이제 나와도 괜찮다."



    아까 그 할아버지인 듯 싶었다. 문을 열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켜보았지만 여전히 내 다리는 힘이 완전히 풀려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얘야 너 안에 있니?"

    "네. 근데 몸이 안움직여요."



    내 대답에 노인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팔을 쓰면 되지않니."

    "예?"



    이 사람도 뭔가 이치에 어긋난 것 같은 말을 한다. 나가지 않기로 했다. 솔직히 뭔가를 곰곰히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냥... 뭔가 나가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었고 나가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이번에는 계속 내게 말을 거는 노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벽 구석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뭔가 내 반대편 구석에 나 처럼 쪼그리고 앉아있는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것에서 뭔가 까드득 까드득 씹어먹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소리가 신경을 자극했다. 그 작은 형체는 손톱을 씹는 것인지 뭔가를 씹는 것인지 계속 까드득 소리를 내다가 이내 내 쪽을 눈을 치켜들며 바라보았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그것의 푸르스름한 눈이 날 바라보았다.


    "이놈아! 어서 나와! 빨리!"



    노인의 목소리가 공허하게 울린다. 하지만 다리가 움직여도 이제는 나갈수가 없었다. 그것의 위치가 나보다 문에 더 가까워 그 쪽으로 갈 수가 없었다.



    "아까 대답했지? 너 어디야?"



    그 형체가 다시 말을 걸었다. 날 처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사실 내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 제발 나가줘..."



    녀석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중얼거린 목소리... 이에 그 형체는 몸을 천천히... 마치 오래된 마리오네트처럼 삐걱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하지만 이내 마치 무슨 벽이라도 있는 것 처럼 딱 멈추고는 다시 말을 걸었다.



    "거의 다 찾은거 같아. 어디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 녀석은 내 대답이 없으면 날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그때 밖에서 또 다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녀석 말에 대답하지 말고 어여 밖으로 나와!"



    녀석은 날 찾을 수 없다. 대답하지 않으면 내게 다가올 수 없는 것인가?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며 몸을 짓누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생긴 용기인지 모르지만 몸을 천천히 움직여 바닥을 천천히 기었다.



    "내 말에 대답해! 너 미란이랑 얘기한겨?"

    "네...에..."

    "그랴! 그년 말에 대답만 안하면 너를 못찾을거여! 걱정말고 빨리 나와!"



    난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따라 여전히 이상한 각도로 목을 꺽으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녀석의 주위를 빙 돌아 방 밖으로 기어나갔다. 내가 방 밖으로 기어나가자 그 이상한 형체도 내 뒤를 따라 걸어나왔다.

    난 깜짝 놀라 후다닥 마루를 구르듯 뛰어 마당으로 나왔는데 금세라도 쓰러질 것 처럼 괴상하게 걷는 녀석은 여전히 아까 나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내 옆에 섰다.


    "으으으!"

    "이놈아 어디여! 어디있는겨! 빨리 이짝으로 와!"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까 그 삼베를 입은 노인이 내 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기에요! 할아버지 살려주세요!"



    내가 노인의 말에 대답하자 노인은 그제야 내 위치를 알았다는 듯...





















    삐걱거리는 움직임으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





















    벌써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날 더 이상 압박감을 참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버린 나는 큰아버지에게 들려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더 이상 그 귀신들을 보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 큰아버지는 용한 점쟁이에게 부적을 하나 써서 목걸이처럼 만들어 내게 주시고는 난 대천에 위치한 둘째 큰집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그 이후로 더 이상 귀신을 보지 않았다.



    어렷을 적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공포이리라 생각하지만 너무 실감나서 아직도 가끔 그 악몽을 꾸곤 했다.



    오늘도 그 꿈을 꿔 기억나서 적어본다. 그나저나 부적 어디갔지? 몸에서 떨어뜨리면 아무래도 불안하다. 샤워를 하고 아까 어디에 둔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네? 나 샤워하는 동안 여자친구가 들어왔었나? 이녀석 내 부적을 마음에 들어해서 계속 달라고 보채곤 한다. 때문에 간혹 내가 몸에서 부적을 떨어뜨려 놓으면 자기가 목에 걸고있기도 했다. 



    "오빠! 오빠 어디야?"



    역시 이녀석이 범인인 모양이다.



    "어디긴 이 좁은 원룸에 내가 어디있겠냐? 컴퓨터 앞에 있지."



    나의 대답에 녀석이 살며시 다가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읊조린다.



    "오랜만이야."



    출처 옛날에 웃대 공게에 올렸었던 글임다.

    그나저나 누가 올렸었나 해서 제목 검색해봐도 안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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